지소미아 종료는 안보재앙이다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데스크칼럼

지소미아 종료는 안보재앙이다

스카이데일리 칼럼

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19-11-22 00:02:32

한국 정부가 결정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종료 시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8월 23일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담은 공문을 일본에 전달했다. 지소미아는 연장 여부가 결정되면 이로부터 90일 후에 종료된다. 따라서 90일 되는 이달 23일 0시를 기해 지소미아가 공식 종료된다. 이를 되돌릴 기회는 이제 24시간도 남지 않았다.

요즘 뉴스에 오르내리는 ‘지소미아(GSOMIA)’란 통상 한국과 일본 간의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의미하지만 사실상 말 그대로 ‘군사정보 보호를 위한 일반 협정(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으로서 동맹국가 간 군사 기밀을 공유하기 위해 맺은 협정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일본 뿐 아니라 다른 동맹국과 총 35개의 지소미아를 맺고 있다.

한·일 양국이 지소미아를 맺은 것은 2016년으로 이는 한국의 제의로 이뤄졌다. 한국이 일본에 지소미아를 제의한 배경에는 당연히 북한 미사일의 위협이 있다. 한·일 양국은 북한과 나아가서는 중국·러시아에 대한 군사 정보를 공유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난 3년간 군사기밀을 주고받았다. 예컨대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한·일 양국은 발사정보와 낙하정보 등 지역적으로 수집이 유리한 정보를 확보해 교환했다. 그동안 북한 미사일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이 주고받은 정보는 5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정부가 한·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발표하자 이에 대한 민감한 반응은 미국에서 나왔다. 한·일 지소미아가 단지 한국과 일본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상 동북아 안정을 위해 한·미·일 공조와 협력을 강조해온 미국은 즉각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의 입을 통해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도 지소미아를 결정한 한국 정부에 “깊이 실망하고 우려스럽다”는 논평을 냈다.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가 일본과의 문제일 뿐 한·미동맹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한·일 지소미아 체결 당시부터 배경에는 미국의 의중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과 일본의 지정학적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7월 미 국방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미국은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최우선 가치로 강조했다. 특히 미·일동맹을 코너스톤(cornerstone, 주춧돌)이라 부르면서 미국의 역내 제 1 파트너로서 일본의 위상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한국 역시 안보협력의 파트너로서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한·미동맹을 린치핀(linchpin, 핵심)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미국으로서는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주요 동맹국으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그렇기에 역사적으로 한·일 양국이 얽혀있는 문제를 수출규제라는 경제보복으로 대응한 일본과 이에 다시 안보문제로 대응하는 한국 사이에서 미국이 어느 편을 들어주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미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대외적으로 발표한 한국 정부로서는 그동안 결정 철회를 촉구하는 미국의 만류를 거듭 뿌리쳐왔다.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정부가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이를 번복하기 위해서는 크나큰 명분이 필요하다. 완전한 번복 대신에 유예 등 부분적인 수정 노선을 취하더라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미국의 중재인데, 미국으로서는 두 동맹국이 알아서 잘 해결해주길 바란다는 원론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MBC가 방송한 ‘국민과의 대화’에 나와서 “지소미아 종료 문제는 일본이 원인을 제공했다”며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는 한국이 제기한 징용과 관련된 역사적 문제를 이와 관계없는 경제 영역에서 보복하는 일본의 ‘비겁한 갑질’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이를 계기로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것 역시 경제적으로 받은 타격을 안보 영역에서 분풀이를 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이 한국을 안보상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하면서 군사 정보를 공유하려는 것은 “모순된 태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소미아는 상호 안보를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이지 상대방에 주는 일방적 혜택은 아니다. 지소미아는 한국이 필요에 의해 먼저 일본에 프로포즈한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모순적 태도를 벌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이점까지도 포기하는 것은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말대로 “제 발등을 찍는 일”이 될 수 있다.

이제 지소미아 종료시한이 24시간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극적인 타결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다만 “지소미아가 종료되는 한이 있더라도 일본과 안보상 협력을 할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다른 형식의 안보협력 관계의 모색을 통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는 탈출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