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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37>

우리의 뿌리를 모르고서는 역사를 논할 수 없다

자기 조상,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자는 금수(禽獸)와도 같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19-11-23 16:22:27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지금 우리의 사회의 정신상황을 보면 정상이 아니다
. 가치관 변질로 불신감이 팽배한 사회임을 바로 알 수 있다. 어느 만큼이나 불신하게 되었느냐! 법까지 불신하게 되었다. 이는 무서운 일이다. 외국에서는 무법·파법(破法), ‘떼법으로 산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이 된 것은 우리가 올바른 가치관을 갖지 못하고 정체성(正體性)을 잃은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법은 100년 이상이나 뒤진 일제(日帝) 명치체제 법으로 역대정권이 제멋대로 운영하며 현대의 법 원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법 개정도, 판결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제 명치헌법체제의 법에 한술 더 떠 국회는 엉망인 법을 제정도 마다 않고 현재의 법으로도 다를 수 있는 것을 새 법을 제정하려고 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법인지, 우리의 법 수준을 타국과 비교해 논하기를 바라진다.
 
우리 사회는 열려져야 하는데 이게 없으니 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에 매달리는 현상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어떠한가, 법도 원칙도 상식도 없다.
 
이런 자들의 독선적, 시대착오적, 정책이 만용적 사고의 경직성은 경계의 대상이 됨을 모르고 있다. 이들은 개혁(改革)을 한다며 나라 망치는 정치를 하고 있음도 모르고 있다.
 
지금 세상은 지식기반사회로 열려져야 한다. 허나 이게 없다. 사대주의적 사고로 양심의 자유 독립이 없고 사회의식이 전혀 없는 것 같이 느끼게 하고 있다. 지금 사회는 열려져야 하는데도 오히려 통제, 규제일색으로 후퇴하는 정책과 법은 잘못된 것이다.
 
여기서 생각나는 것은 삼우엘 존슨이 말한 ()은 대중의 이익을 위해 인류의 경험(經驗) 위에서 행동하는 인간 지혜의 최종(最終) 결과이다고 한 말을 상기시켜 준다.
 
지금 우리는 일제가 만든 통제규제의 법과 왜곡된 역사로 자기의 뿌리도 모르는 데서 기인하고 있음을 본다. 자기의 조상이 누구이며 자기가 누구인가를 모르는데서 우리 국조(國祖)를 단군으로 하고 아직도 우리 역사가 5천년 역사라 하며 12000년의 역사도 모른 채, 국가 장래를 생각하지 않은 제 멋대로 나가고 있는 무지함을 볼 수 있다.
 
우리는 환국(桓國) 때부터 배달국(倍達國), 고조선(古朝鮮)으로 이어진 것을 망각하고 일제가 심어준 역사를 가르치고 있음에서 총독부 마지막 총통인 아배 노브유키(安倍信行)조선은 위대하고 찬란한 문화를 가졌으나 우리는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사관을 심었기 때문에 앞으로 100년을 헤맬 것이다. 우리는 다시 온다고 한 것처럼 이를 추종하는 자들이 바로 우리역사가 반도 안에 있었다는 식민사관자들과 아베노무유키에 말과 상통하는것이다.
 
오늘은 우리 역사의 뿌리와 우리조상이 누구인가를 바로 알았으면 하는 데서 수제의 제목을 삼았고 우리가 대륙의 주인이고 대륙을 지배한 것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 일은 상고사와 고대사도 왜곡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中國)과 일본(日本)은 고대부터 중세(中世)까지 우리지도(指導)를 받았다. 이를 숨기기 위해 기자조선(箕子朝鮮), 위만조선(衛滿朝鮮), 한사군(漢四郡)을 한반도로 옮기며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나 이 집단들은 반도에 없다.
 
기자조선(箕子朝鮮)도 반도식민사관자들은 한반도(韓半島)에 있었다고 하나 그 실체(實體)가 없다. 기자(箕子)가 나서 자란 곳은 중국 하남성(河南省)의 서화(西華)이고 그 묘()는 안휘성(安徽省) 몽성(蒙城) 임을 이미 밝혔다. 이곳은 한반도가 아니다.
 
이곳은 중국대륙이고 또한 기자조선(箕子朝鮮)이 있었다고 하면 대륙에 있는 것이다. 이 왕조(王朝)는 서기전 11027년경이라고 하는데 이는 전설상(傳說上)의 국가로 보는 사가(史家)도 있다. 한서(漢書)는 기자(箕子)와 그 무리가 나라를 세웠다고 하고 있다.
이 왕조(王朝)는 서기전 190년에 위만(衛滿)에게 멸망되기까지 800년 이상 지속되었다 하나 그 진위(眞僞)를 가릴 만한 제대로 된 사서(史書)가 없기에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우리는 서화(西華) 동쪽의 동이사(東夷史)를 숨겨서 지금 가르치는 우리나라 역사는 대륙역사를 모름으로 우리가 언제부터 대륙에 있었고 환국시대·배달국시대·기자시대·삼국시대 모두 서화(西華), 항성(項城) 동쪽에서 활동한 기록이 삼국사(三國史)’, ‘삼국유사’, ‘중국25사동이모두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데도 이를 모르고들 있다.
 
서기전 11세기~1세기까지 우리 동이족은 서화 동쪽에 있었고 동이족이 사회경제, 문화면에서 중심적 위치를 점할 정도로 중요성을 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516국의 흥망이 각지에서 있으면서 대륙문화는 계속 발전하였음을 볼 수 있다.
 
당시 주()된 기마민족(騎馬民族)은 예맥·선비(鮮卑말갈(靺鞨), () 등의 제() 민족(民族)으로서 이들은 결코 미개(未開)한 민족이 아니었다. 미개한 족속들은 동이(東夷)가 아닌 화족들이었다. 이는 중국 역사의 어두운 면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 반도식민사관자들은 우리 민족의 국가기원을 고조선(古朝鮮)으로 하고 이를 기록한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효시(嚆矢)라 해 받들고 있다.
 
그런데 주(((()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한족(漢族)25()에서 우리 역사가 고조선 이전의 구리(九黎), 조선(朝鮮), 삼국시대(三國時代)가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사기(史記 40 1) 여기서 보듯, 우리나라 역사는 상고역사(上古歷史)부터 고대사(古代史)까지 왜곡(歪曲)하고 있는데 제대로 연구하고 말해야 한다.
 
진왕의 중국 통일도 우리의 철기를 사용해서 가능했다
 
예맥(匈奴)과 몽골은 무력으로 유럽까지 진출해 정복하였고 우리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 거란(契丹)과 여진(女眞)은 무력으로 중원(中原)을 제패(制覇)한 것은 중국의 25()와 우리 삼국사(三國史)’에 분명히 명기하고 있다.
 
이렇게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해 지배하게 된 것은 기마민족의 앞선 기마전술과 철기(鐵器)의 사용에 있었다. 중국에서는 춘추시대부터 철기(鐵器)를 사용하고 철기(鐵騎)도 이용해 진왕;(秦始皇-서기전259~서기전 210)이 중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즉 북방의 유목민(遊牧民)인 기마민족(騎馬民族)으로부터 기마전술(騎馬戰術)을 익혀 기마전술(騎馬戰術)을 유목민(遊牧民)으로부터 배운 군사대국 조()와 라이벌적인 존재가 되고 이 전술로 진()이 조()를 격파하자 화북지방(華北地方)의 군사균형(軍事均衡)이 일거(一擧)에 붕괴(崩壞)되어 진()은 바로 중국통일을 달성하기에 이른다.
 
당시 진()이 달성한 통일지역은 현재의 중국 본토(正州)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고 하며 이곳을 중국정주(中國正州)라 했다. 이것은 거의 한족(漢族)만이 점하고 있는 지역(地域)을 말한 것인데 이도 과장(誇張)된 말로서 중국이 현 중국 지역은 아니었다.
 
진왕(秦王)은 서기전 221년에 제()를 멸망시키고 춘추이래(春秋以來)의 난세(亂世)를 통일한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진왕(秦王)이 바로 왕의 칭호(稱號)를 버리고 황제(皇帝)라고 칭()하였다고 모두 기록하고 있으나 황제(皇帝)의 칭호도 진왕(秦王)이 사후(死後) 진시황(秦始皇)이라고 추서(追敍)한 것인데 이도 왜곡(歪曲)하고 있음을 본다.
 
황제의 제()는 예로부터 신()을 의미하는 말로서 정();진왕(秦王)은 통일되자마자 시황제(始皇帝)라고 하였다고 하였으나 이는 조작(造作)일 뿐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는 봉건제도를 폐해서 새로운 관료제도(官僚制度)를 채용해서 군현제(郡縣制)를 두고 중앙으로부터 관리를 임명해서 파견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도 고조선의 단군시대부터 100이 넘는 제후국을 다스린 기미정책(羈糜政策)을 모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그가 취한정책 중에서 특필(特筆)할 것은 지금까지 나라마다 다른 문자(文字)의 자체(字體), 차륜(車輪)의 폭(), 도량형(度量衡), 화폐(貨幣) 등의 제도를 통일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진이 지배하는 나라마다 있는 성벽(城壁)을 파괴하고 병기(兵器)를 몰수할 뿐만 아니라 전국(全國)의 부호(富豪) 12만호(萬戶)를 진()의 수도(首都)에 옮기게 하고 장려(壯麗)한 궁전(宮殿)과 기타 토목공사(土木工事)를 일으킨 왕인 것이다.
 
그는 또한 서체(書體)나 읽는 것을 통일(統一)하면 좋겠다고 해 한자(漢字)의 수를 3300()로 정하고 지금까지 만들어진 한자(漢字)를 사용해서 각종의 서적(書籍)을 일거(一擧)에 파기하고 말았다. 이것을 세상에서는 분서(焚書)’라고 하고 있다.
 
시황제(始皇帝)는 진왕(秦王)으로서 13세에 즉위하자마자 바로 여산(驪山)기슭에 자신을 위한 지하궁전(地下宮殿) 같은 능묘(陵墓)의 조영(造營)을 시작해 전국으로부터 매년 70만명을 징용해 죽을 때까지 조영(造營)을 계속하게 하고 공사가 끝나자 비밀방지를 위해 공장(工匠) 전원을 능묘(陵墓) ()에 폐쇄해 죽게 한 흉악한 왕이었다.
 
, 일은 고대~중세까지 우리의 지도를 받아 황하유역에서 발전했다
 
중국은 춘추시대(서기전 770~서기전 403년까지 367년간)부터 철기사용(鐵器使用)이 시작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 때 진()은 주변 6국보다도 문명(文明)이 가장 뒤쳐지고 있었다.
 
또한 전국시대(서기전 403~서기전 221년까지 200년간) 중국 국내(國內)는 구래(舊來)의 진(), (), ()과 신흥(新興)의 전제(田齊), (), (), ()7개국(個國)이 나란히 병립(竝立)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는 진()이 가장 약()한 나라였다.
 
그런데 이 약()한 진()이 초(), ()과 신흥(新興)의 전제(田齊), (), (), ()를 제치고 6(六國)을 통일하게 된 것은 부국강병정책(富國强兵政策)에 모든 역량을 기우리고 농경지(農耕地)를 넓히고 곡물(穀物)의 생산을 높임과 동시에 인구중대(人口增大)에 의한 병력증가(兵力增加)와 뛰어난 지휘관(指揮官)의 획득(獲得)이었다. 당시 모든 나라들은 당시 모든 나라가 부국강병정책을 취하며 경쟁하게 되었다.
 
때문에 각국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국 영토의 확대가 필요하게 돼 동이(東夷)를 토벌(討伐)해서 영토(領土)를 확보할 방법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해서 제후(諸侯)들의 항쟁(抗爭)에 의해서 자국의 영토를 확대해 요동반도에서 서(西)는 황하의 중류로 부터 하류를 중심으로 한 지방과 양자강 중류 하류 전체를 확대해 갔음을 볼 수 있다.
 
영토를 확대하면서 중국은 전 왕조(前王朝)를 넘어뜨린 신왕조의 왕은 전 왕조에 소속하는 인간을 철저하게 살육했을 뿐 아니라 건물이나 비품(備品), 미술품, 분묘(墳墓)에 이르기까지 전 왕조의 영향이나 보호를 받은 모든 것을 파괴의 대상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전 왕조(前王朝)의 사람이나 물건을 완전부정(完全否定)함에 의해서 신왕조(新王朝)와 구왕조(舊王朝)와의 다름을 백성에게 알리게 하는 것이 지배(支配) 상의 필수조건(必須條件)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사원(寺院)이나 역사적(歷史的) 건물(建物)도 파괴되어 남은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이를 말해준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을 비롯해서 돌의 석조물(石造物)이 겨우 파괴를 면()할 정도이다. 그가 만든 아방궁도 사후 파괴된 것이 이를 말해준다.
 
이에 반해 우리는 고조선시대(古朝鮮時代)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理念)에서 보듯 우리는 다른 국가나 민족과는 완연히 다른 군자대국(君子大國)이었다. 그것은 사상(思想)과 철학 모든 제도(制度)가 우리 동이(東夷)에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은()을 이어받은 주()는 서기전 770년 예맥 등 기마족의 압박을 받아 수도(首都)를 호경(鎬京)으로부터 낙읍(洛邑;(洛陽)으로 옮긴다. 여기서 부터 동주시대(東周時代)’라고 하는데 이후 1000년 이상 예맥은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하며 지배했다.
 
특히 서기전 403년까지를 춘추시대(春秋時代)’라 하고 그 이후를 전국시대(戰國時代)’로 부르는 이 시대는 동이(東夷)와 화하족(華夏族)을 불문(不問)하고 나라의 존립을 위해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대로 중요도시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었다.
 
이때 동주(東周)의 도시(都市) 낙읍(洛邑)-현재의 낙양부근(洛陽付近)은 소위 대륙문화(大陸文化)의 발상지(發祥地)로 이를 중심으로 치열해 쟁탈전도 치열했다. 이곳은 산물(産物)도 풍부한 하남성(河南省) 황하유역(黃河流域)의 지역(地域)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고도(高度)의 문화(文化)가 유포(流布)하고 있어서 이곳을 별명(別名)이 중원(中原)이라고 불리는 지역(地域)으로서 고대 특히 주나라 시대(時代)는 수많은 제후(諸侯)들이 이곳 중원(中原)의 주위에 나라를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주역들은 바로 우리 동이(東夷)이었음을 역사는 말하고 있는데 이를 바로 알고 역사를 말해야 한다.
 
(다음에 계속)   
(以上은 최태영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東夷歷史 ’. (右犂)歷史 校勘十八史’, 百濟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황순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歷史’]. 杉山徹宗, 眞實中國四千年史多數의 서책(書冊)參照하고, 本文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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