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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있는 그대로 배워야
[스카이 View] 홍범도가 빨갱이라고?
이상준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7-11 00:02:40
 
 
항일 독립투사였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곱씹었다. 고향은 평안도지만 두만강을 넘나들었다. 독립군으로서 일본군을 괴롭혔다. 공산당에 가입해서 중국과 소련에서도 평가가 좋았다. 연해주에서 활동했기에 소련과도 밀접했다.
 
이 사람은 누굴까? 북한 지도자 김일성(1912~1994)이 아니다.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범도(1868~1943)다. 홍범도가 러시아공산당에 들어가서 일본군과 싸웠다면 김일성은 중국공산당 소속으로 항일 유격대를 이끌었다. 이들의 운명은 소련에 의해 갈렸다. 김일성은 소련군 도움으로 북한 권력을 잡았지만 홍범도는 스탈린 정책으로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으로 끌려갔다.
 
신원식 전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2022년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범도 장군은 소련 군인이었다”던 신원식은 조선일보 유튜브에서 “국군의 뿌리까지 빨갛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과 공산당이란 주적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육군사관학교의 근본 특성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독립군 영웅이더라도 공산당원이므로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 두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육사 37기인 신원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과 동기다. 신원식은 2023년 “소련 군인으로서 소련 군복을 착용하고 군모까지 쓴 홍범도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하는 게 말이 되냐”고 말했다. 육사 생도들에게 공산주의자를 롤모델로 삼으란 소리냐고 물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던 신원식의 언행은 육사와 국방부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이 1919~22년 빨치산으로 활동했다며 흉상을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범도 장군은 김일성처럼 증오의 대상이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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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빨치산(partizan)은 비정규군을 가리키는 러시아어다. 나라를 뺏긴 조선사람 홍범도는 일본군과 싸운 빨치산이었다. 당시 빨치산은 독립군이자 의용군이었다. 게다가 홍범도 장군이 연해주에서 활동했던 시절 소련은 일본과 싸웠던 우방국이었다. 홍범도 장군은 1950년대 한국전쟁 시절 지리산에서 저항하던 빨치산과 다르다. 홍범도 장군이 독립군 빨치산이라면 이현상은 북한을 위해 싸운 빨치산이었다. 
 
태극기 부대를 이끄는 전광훈의 그늘이 우리 사회를 덮었다. 전광훈 목사와 태극기 부대는 5∙18 민주항쟁처럼 홍범도 장군도 깎아내렸다. 홍범도 장군 유해가 2021년 카자흐스탄에서 돌아오자 전광훈은 “애국지사들을 죽인 공산주의자다”고 말했다. 전광훈과 가까웠던 김문수도 “독립군들을 몰살시킨”이란 표현으로 홍범도 장군을 폄훼했다. 사학계 상식과 달랐지만 독립군 영웅은 아스팔트에서 빨갱이로 손가락질을 당했다. 역사에 무지한 전광훈의 거짓말이 돌고 돌아서 국방부에도 퍼졌다.
 
여천 홍범도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고작 9살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작은 아버지 집에서 농사를 짓던 홍범도는 열다섯 살이었던 1883년 나이를 열일곱 살이라고 속여서 평안 감영 나팔수가 됐다. 총을 잘 쏘기로 유명했던 홍범도는 1895년 의병부대를 조직해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백두산과 만주 벌판을 누비며 백두산 호랑이로 불렸다. 홍범도에게 습격을 당했던 일본군 사이에선 ‘날으는 장군’이라고 불렸다. 
 
평민 출신 의병장으로 독립군을 이끌었던 홍범도. 그는 항일무장투쟁 역사에서 가장 눈부셨다. 그러나 중국과 소련의 눈밖에 났다. 공산당 정부 수립이 아닌 민족 독립을 바란다는 이유에서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비교된다는 이유로, 한국에선 빨치산이라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정부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2년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인 2021년 광복절에는 건국훈장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홍범도 장군은 명사수였다. 이런 까닭에 홍 장군 유해 봉환을 계기로 2021년부터 홍범도 장군배 사격대회가 열렸다. 홍범도 사격대회는 2024년부터 국가대표 선발전으로 승격됐다. 하지만 국가보훈부가 올해 사업비를 없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리지 못하게 되자 대한사격연맹은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홍범도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학술대회 예산도 사라졌다. 국가보훈부는 한술 더 떠서 훈장을 취소하려고 검토까지 했다고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현충일에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보훈부는 10일 추가경정예산으로 확보한 예산을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에 지원한다고 밝혔다. 빨갱이로 몰려 손가락질 받던 홍범도 장군은 불과 몇 달 만에 독립군 영웅으로 부활했다. 
 
대통령이 바뀌면 또다시 빨갱이로 손가락질을 받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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