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식당 내 남·녀 격리 규제 철폐…동석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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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살만 왕세자, 극단적 보수사회에 개혁 추진 중

박선옥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9-12-09 18:14:08

▲지난 6월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왕세자가 청와대 본관 앞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정의용 안보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들이 식당에 갈 때 더 이상 남성과 다른 별도의 출입구를 이용하거나 남·녀를 분리하는 벽 뒤에 따로 마련된 공간에 착석하지 않아도 된다.

8일(현지시간) BBC·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는 이날 사우디에서 가장 엄격한 규제의 하나로 꼽혀 왔던 식당에서의 남·녀 격리 원칙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사우디 식당에는 여성만을 위한 출입구와 남성만을 위한 출입구가 따로 분리돼 있었다. 단, 남성 가족을 동반한 여성들은 가족과 함께 여성 전용 출입구를 이용했으며, 모르는 남성과 여성이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건 금지됐다.

이번에 철폐되는 식당에서의 남녀분리규제 뿐 아니라 사우디는 최근 수 십년 간 계속돼온 보수적인 규제들을 없애고 있는 추세다. 특히 여성을 사회적으로 억압하는 규제들이 포함됐다.

올해 초 사우디 정부는 여성들이 남성 보호자의 허락 없이 독립적으로 해외여행을 갈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지난해에는 여성들에게 수 십년 동안 허용되지 않았던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사회운동가들은 여성을 차별하는 규제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면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더욱이 사우디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는 와중에도 몇몇 핵심 여권운동가들이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8일(현지시간) 사우디 정부가 식당에서의 남녀분리규제 철폐를 발표했지만 실제로 얼마나 적용될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여성 전용 출입구 폐지 여부는 각 식당이 결정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일부 사우디 고급 호텔에 있는 식당에서는 남·녀 좌석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동석이 허용되는 곳도 이미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남성 고객 좌석과 여성 및 가족동반 여성을 위한 공간을 가림막 형태로 분리해왔다.

대부분의 사우디 식당과 카페들은 현재 남성들만 앉을 수 있는 독신자(single)실과 여성들끼리 온 고객이나 남성 친척과 동행한 여성이 앉을 수 있는 가족(family)실로 구분돼 있다. 스타벅스와 같은 서구식 커피숍 체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들은 별도의 여성전용 출입구를 이용하고 낯선 남성의 눈에 뜨이지 않도록 분리된 공간을 사용해야 한다. 만일 분리된 공간이 없는 소규모 식당이나 카페에는 여성들의 입장이 허용되지 않았다.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 남녀 동석을 허용하는 문제는 기존의 굳은 관행에 의한 거부감 때문에 국영 SPA 통신에 정부 성명을 통해 발표됐다. 성명에서 정부는 식당과 카페를 포함해 새로 남녀 동석이 허용되는 건물과 학교, 스포츠 센터 등의 목록을 발표했다.

사우디 정부는 성명에서 이번에 실시하는 남녀 동석 규제 철폐가 투자를 유치하고 사업 기회를 더 늘리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사우디의 극단적인 보수 사회에 개혁의 움직임이 일어난 것은 2017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등극과 함께 시작됐다. 빈 살만 왕세자가 대대적인 사회 개혁에 나서면서 남녀가 콘서트에 함께 갈 수 있게 됐고, 여성들이 처음으로 경기장에서 스포츠를 관람할 수 있게 됐다. 또 남학생들에게만 실시하던 체육 수업을 여학생들도 받을 수 있게 되는 등 여성 차별 관행에 많은 개혁이 추진됐다.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 추진은 국제 사회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으나, 그에 대한 평가에는 늘 2018년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된 사우디 반체제 저널리스트 자말 카슈끄지 죽음의 배후라는 그림자가 뒤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살만 왕세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주요 지도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박선옥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박선옥 기자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