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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뇌사상태에 빠진 그리스가 사실상 디폴트 초읽기 수순에 들어갔다. 주식과 환율에서 외부 위기에 변동성이 유독 심한 우리나라는 그리스 이슈가 나올 때마다 금융부문이 널뛰기 하듯 크게 출렁거리고 있다. 그리스 사태는 유로존 역내의 사태이지만 우리 경제와 너무 가깝게 직결된 사안이 됐다.
이 같은 그리스 경제를 유로존 동일통화 이웃국가들이 끝내 버리는 카드로 사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어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지금까지 유로존 국가들은 그리스 문제가 같은 배를 탄 하나의 위기라는 인식에서 해결방안을 고민하고 접근해 온 측면이 있었으나 언제부터인지 그 논의의 물줄기가 확 바뀌었다.
유로존의 채권국가들이 이른바 ‘질서 있는 디폴트’를 위한 ‘헤어컷’(그리스 채권가치 평가절하)에 대한 실행방안을 놓고 막판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이른바 도마뱀 꼬리 자르기 식의 해결방안에 의견접근을 본 상태에서 이제는 언제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를 실행할 것이냐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하게 오가고 있다.
독일, 네덜란드 등 7개 국가는 민간부문의 채권 상각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프랑스와 유럽중앙은행(ECB) 등은 이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상각의 규모와 비율은 직접적 손실을 떠 앉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첨예한 논쟁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각은 궁극적인 해결방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리스 경제를 결국 더 망가지게 하는 악수라는 것이다. 나아가 그리스를 안락사 시켜 제물로 삼는 것이라는 비난까지 있다.
정치적 이유 결부돼 해결 불가능
유로존 위기를 지킬 배수진의 두 나라로 거론돼 온 독일과 프랑스의 입장 차이는 그리스 경제를 어떻게든 살려낼 방안을 강구하는 로드맵을 사실상 포기한 하나의 단면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리스 구제금융을 포기하는 수순은 표면적으로 이처럼 경제적인 이유가 있지만 또 다른 측면을 배제하기 어려운 것이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상각에 대한 입장 차이는 대외적으로 경제이슈가 분명하지만 내재적으로는 정치적인 이유가 매우 중요하게 복합적으로 깔려 있어 완전한 합의에 이르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유로존 각 나라마다 처한 정치적 입장 차이와 변수가 너무 많은 상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치적 배경을 감안할 경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리스를 구할 정치지도자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헤어컷, 부실 씨앗 유로존 전체로 확산
국제사회의 일부 양식 있는 전문가들은 쓴 소리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리스를 희생물로 삼은 이유에 대해 정치인들의 야심과 탐욕을 꼽고 있다. 그리스 문제는 정치적 사건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정치인들이 그리스 사태를 잘못 핸들링 할 경우 자국 내 지도력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아 정치기반이 흔들릴 수 있는 배경을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디폴트 수순에서 유력한 방안이 된 헤어컷이 대외적으로는 그리스를 그나마 연명하기 위한 혜택이라고 하지만 부실의 씨앗을 유로존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스 부채를 일정규모 상각한다고 해도 그리스 경제는 결국 유로존 역내에서 노예경제에 허덕이게 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는 동반 위기에 빠져 있는 스페인·이탈리아·포루투칼 등을 구명하고, 이를 통해 유로존 전체가 일시적 안전망을 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근본원인이자 해결책을 덮는다는 점에서 땜질 처방이다.
채권국들이 그리스를 제물로 삼는 것이지만 그 치명적 부메랑을 또한 채권국들이 맞을 무리수라는 것이다.
헤어컷은 앞으로 그 비율이 어느 정도 증가할지,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한 유로존 국가들의 지속적인 채권가치 하락은 정해진 수순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질서 있는 디폴트는 말만 화려할 뿐 실제로는 유로존 역내에 중장기적으로 ‘악성종양의 전이’를 촉발시키는 위험한 수단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리스 재정긴축 자구노력 한계 닥쳐
그리스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정부는 4일 당초의 재정적자 목표치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섰다. 이날 그리스 내각은 66억 유로의 추가 재정긴축안이 포함된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기는 했지만 유로존이 원하는 규모와 많은 차이가 난다.
그리스 정부는 GDP 대비 올해와 내년의 재정적자 목표를 당초 약속했던 7.6%와 6.5%를 지키지 못하고, 8.5%와 6.8%로 최근 수정·발표하기도 했다. 이유는 마이너스 3.8%로 예상됐던 올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5.5%로 크게 악화될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유로존 채권 국가들은 결국 그리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쏟아 붇는 구제금융이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도 그리스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유로존 경제의 ‘앞날’ 때문이다.
유로존은 그리스 문제를 잠복시키는 한 이번 상각건과 같이 사사건건 이해관계에 얽혀 대립될 소지가 많다. 그리스 이슈는 이처럼 단일통화권 유지를 어렵게 해 극단적으로는 유로존 해체의 수순을 밟게 할 단초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단일통화를 넘어 통화정책까지 하나의 유럽을 외쳐온 유로존이 과거로 회귀하는 해체수순을 밟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길고 오래간다. 힘들지만 그리스 경제를 끝까지 부여잡아 근본적인 경제회생을 고민해 할 이유는 유로존과 글로벌 경제의 비전을 놓지 않는 일이기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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