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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초가 되면 세계의 시선이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로 집중된다. 미래를 예측하는 지구촌 최대 이벤트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열리기 때문이다. 혹시나 시대 흐름에 뒤질까 봐 한국인 방문자 수도 올 해엔 1만 명을 넘어섰다. 중국인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그만큼 미래와 혁신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대변한다. 이런 열정이 우리의 현장과 정책에 제대로 접목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CES 현장에 가면 이벤트에 규모와 내용에 압도당한다. 라스베이거스가 단순한 도박의 도시가 아니라 마이스(MICE·Meeting 회의, Incentive 포상관광, Convention 컨벤션, Exhibition 전시회) 산업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놀란다. 이 도시는 마이스를 통해 연간 98억달러(11조 3000억원)를 벌어들이고 6만 5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더 아연실색케 하는 것은 라스베이거스가 황량한 사막에서 생겨난 도시이고, 미국의 중심지에서 접근마저 그리 쉽지 않은 곳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사막의 기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CES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느끼는 또 하나의 감정은 자부심이다. 최근 한국 경제가 좋지 않아도 거기서는 나름대로 기를 편다. 국내에서는 죽을 쑤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그래도 인정받는 우리 대기업의 위상이 아직은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이로 인해 참가한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들이 같이 활개를 친다. 기(氣)가 살아나고 뭔가 해낼 것 같은 용기백배를 얻기도 한다. 좁은 국내에서 세상 물정 모른 채 진영으로 나뉘어 이전투구(泥田鬪狗)를 하지만 최소한 여기선 그렇지 않다.
우리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국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미국의 중국 기업에 대한 기술 유출 압박이 거세지면서 이들이 몸을 낮추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실력과 잠재력 그리고 외부의 평가가 아직은 호의적이지만 언제까지 이런 무드가 계속될 것인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란 점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처절한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살아남고 이길 수 있을 것인지를 알고 돌아온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밖에 나가 봐야 숨이 트이고 실날같은 희망이 보이는 것도 이런 데서 연유한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CES에서 우리가 이만한 대접을 받기까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괄시와 천대를 받고나서 마침내 현재의 위치까지 올라온 것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간판 기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운지는 현장을 보지 않으면 실감할 수 없다. 이 위치를 언제까지 보전할 수 있는가가 문제다. 일부 대기업 혹은 제조업에만 의존하는 구조로는 이 냉엄한 경쟁에서 영원한 승자로 남기 어렵다.
CES도 가전(家電) 전문 박람회로 출발하였지만 지금은 IT·자동차 관련 기업은 물론이고 AI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과 연관된 기술이 총망라되어 미래 시장 선점 경쟁의 장(場)으로 변모하고 있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이 대거 참여하고 있고, 업종 간의 경계 또한 사라지고 있는 것이 눈앞의 현실이다. 무늬만 신(新)산업이 아닌 기존의 상상을 뛰어 넘으면서 고객을 감동시키는 ‘디커플링(탈 동조화)’으로 무장된 혁신 기술이나 서비스가 대세를 잡아가는 분위기다.
기존의 사고와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파괴의 혁신의 알고리즘이 만들어져야
글로벌 경쟁 현장에서 또 다시 확인되고 있는 명백한 팩트는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기업이 생존을 넘어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기존 기업보다 혁신 기업 혹은 신생 기업에 초점에 모아진다.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는 강자들 간의 합종연횡이나 산업의 경계를 초월하는 이합집산이 생겨난다. 이 거대한 트렌드를 파악하고 있는 국가들은 기업이 제대로 경쟁할 수 있도록 사기를 북돋운다. 인재들이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쪽으로 모이도록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어 규제를 풀고 체계적인 지원을 한다.
인구 860만의 이스라엘이 왜 ‘AI 창업 천국’이 되고 있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청년들에게 장래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선험자의 도리이다. 공짜 돈이 당장에는 달콤하지만 결국은 그들을 망치게 한다. 공무원 시험 준비 청년이 10명 중 3명이고, 합격률이 하버드대입학보다 더 어렵다고 하니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이들을 살 맛 나게 하는 것은 세계와 겨루며 당당하게 일어설 수 있는 기업가 정신의 함양과 획기적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이다.
우리 기업에 대한 평가가 내부에서는 인색하지만 외부에서는 아직도 평균 이상은 된다. 미래 기술에 대한 각종 글로벌 평가에서 게속 하위로 추락하고 있기는 하지만 잠재 능력 측면에서는 고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번 CES에서도 한국관 참가 기업이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어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상당수의 K스타트업들이 괄목할만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런 박토에서 우수한 스타트업 혹은 중소기업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고무적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DNA가 발휘될 수 있는 분위기만 만들어지면 날개를 달 수 있다. 시대정신에 떨어지는 소수 기업에는 채찍이 가해져야 되지만 대다수의 기업에 필요한 것은 당근이고, 그것이 우선이다. 꺼져가는 한국 경제의 성장 불씨를 살리기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대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계속 우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기존 중소기업이나 새로 생겨나는 스타트업들이 이에 편승해 동반 질주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한 사생결단의 각오가 요구된다.
청년과 기업에 이어 또 기를 살려주어야 할 곳은 지방이다. 지방 경제의 황폐화를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지방에도 명암이 있다. 미래를 착실하게 준비하는 지방일수록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지방은 갈수록 절망적이다. 인구는 줄고, 산업까지 빠져나가면서 설상가상이다. 지방이 살아나려면 공공보다 민간 부문이 주도해 혁신의 물꼬를 터야 한다.
요즘 회자되는 화두 중에 ‘스마트 시티(Smart City)’라는 것이 있다.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는 본거지인 후지산 주변에 모빌리티 서비스를 특징으로 하는 ‘우븐 시티(Woven City)’를 내년에 착공한다고 한다. 은 지구상의 많은 도시들이 같은 고민과 위기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이지만 그 와중에도 거듭 태어나는 도시들이 꽤 많다. 기존의 사고와 매너리즘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파괴와 혁신의 알고리즘이 만들어져야 한다. 각각의 지방이 현재의 고객가치사슬(Customer Value Chain)을 다각적으로 분석해 고객을 유지하고 끌어들일 수 있는 고유한 혁신 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 기가 팍팍 살아야 이런 구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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