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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시작하는 거야!” 영화에 나오는 주요 핵심 대사다. 미국에 이민 가서 대도시 LA에 살다가 어느날 남부 지역 ‘아칸소’의 폐농으로 이사 간 한 한국인 가족의 미국이민사를 그린 영화 미나리를 봤다. 인터넷에서 무려 77개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고 24개 영화제에서 윤여정이 연기상 수상을 했다는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할리우드 키드’이며 영화광인 필자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3월3일 개봉 첫날 뛰어가 관람했다.
영화를 보는 재미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른바 ‘100분짜리 꿈’이라 칭해지는 영화에 여러 장르가 있듯, 일반적인 관객의 경우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세상을 잊고 몽상에 빠지거나 경험해 보지 않은 세상의 놀랍고 감동적인 환상의 세계에 빠져보고 싶은 것이 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한마디로 긴장과 흥분, 화려함이 마구 널려 있는 그런 장면이 그리울 것 같은데, 이 영화는 정확하게 말하면 ‘지루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메마른 땅에 뿌리를 내리려는...” 이 말은 그 옛날 서울시내버스 안에서 구걸을 하거나 작은 생활품을 파는 고학생들이 주로 하던 말이다. 그야 말로 미국 농촌 그것도 “먼저 번 농장주가 홀랑 말아 먹고 망한 땅”에 뿌리를 내리려는 ‘제이콥’ (‘스티브 연’ 주연)이 가족을 데리고 50에이커의 땅, 그 황량한 풀밭 덩어리 농장에 내려서부터 시작한다.
아내(한예리 주연)의 불안감과 원망, 아들의 심장병, 농장에 물이 안 나오는 척박한 땅, 모든 것이 부족하고 힘든 상황에서 가장인 ‘제이콥’의 인내심과 도전의 고개는 힘겹고 보기에도 정말 안타깝다. 이는 정이석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한다.
흔히들 미국 이민이라고 하면 뉴욕의 마천루와 라스베이거스의 눈부신 쇼 장면 그리고 나이아가라 폭포와 유타주와 오리건주 아리조나의 붉고 환상적인 바위처럼 현란한 장면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의 가족들은 냄새나고 갑갑한 병아리 똥구멍을 바라보는 병아리감별사로 미국 정착을 시작한다.
이를 보고 있자니 1880년대 하와이로 이민을 간, 초기 미국이민사의 증인들 및 조선인들의 사탕수수밭 중노동이 생각난다. 자녀의 교육과 가정 일에 도움이 되려고 한국에서 장모님(윤여정)을 모시게 되는데 윤여정의 역할이 바로 한국 문화와 미국인들의 문화의 차이에서 웃음과 절망이 뒤섞인다. 윤여정은 노련한 연기자답게 정말 대단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 가히 할리우드에서 칭찬과 박수를 받을 만한 한국 베테랑 연기자의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현재 380여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고, 미국 가정의 35%가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대화를 한다고 한다. 이 영화는 미국인 배우 ‘브레드 피트’가 제작하고 한국계 미국인 ‘스티브 연’이 주연했으며 미국에서 촬영한 미국영화다.
그런데 골든 글로브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것에 미국의 주류 언론인들이 이의를 달았다. 작품성을 받아도 충분한 영화인데, 미국적 로컬 정신에 묻혀 어긋난 시상을 했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이 영화는 가슴으로 보는 영화다. 한예리가 연기하는 여성으로서의 감성, 아버지 제이콥의 이민의 힘든 개척과 고통, 할머니의 문화적인 충격, 손녀와 손자의 신세계에 적응하려는 안타까움 등등. 조용히, 그리고 잔잔하게 다가오는 아픔이었다.
이 영화는 불과 몇 초 만에 장면이 뒤바뀌고 현란한 광채와 눈을 깜빡일 수 없을 만큼 오락적인 영화가 아니라 인간소설을 읽어 내려가듯 느낌이 슬그머니 몰려오는 영화다. 이 점이 미국이란 자체가 이민자들의 나라이고 모두가 이민의 혹독한 변화를 겪은 나라라 많은 공감이 됐을 것이다.
그 옛날 60~70년대에도 이와 유사한 미국 이민을 다룬 영화들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서부 개척사’와 ‘셰인’ 등이다. 유럽에서 새로운 세상, 황금이 널려 있는 서부에 뿌리를 내리려는 가난하고 소박한 이민사를 그린 영화들이다. 이런 영화가 미국 이민사를 초기에 그렸다면 미나리는 비교적 최근 80년대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너는 왜 그렇게 넓적하게 생겼어?”라고 교회에서 만난 미국인 노랑머리 소년이 ‘제이콥’의 아들 ‘데이빗’에게 말하는 장면에 모두가 웃는다. 하지만 사실 그것이 최근 유난히 문제되는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이자 이민자의 슬픔인 것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윤여정이 한국에서 올 때 미나리 씨를 가져 온다는 것이다. 미나리는 아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아무 곳에 심어도 생명을 유지하는 끈기와 생명력의 상징이다. 미나리를 중간에 베어 먹어도 다시 줄기가 나고 잎이 살아 나오는 대단한 생명력의 잡풀이자 한국인들의 소중한 반찬이다.
영화에서 미나리는 이민을 이겨내며 정착하려는 주인공을 암묵적으로 그린 소품이다 윤여정이 중풍에 걸려 가족이 외출을 한 사이 쓰레기를 태우다가 농작물창고에 불이 붙는다. 이 과정에서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다 불을 발견한 주인공 부부는 무섭게 타오르는 불과의 사투 끝에 농작물을 꺼내지만 창고는 불이 다 타고 만다. 이에 할머니로서의 죄책감에 윤여정이 자살을 하려 어두운 길을 혼자 더듬거리며 걷는데 손주와 손녀가 와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그야말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마지막 장면은 미나리가 심어져 있는 개울가에서 주인공과 아들이 말한다. “할머니가 미나리를 잘 심어 주셨어, 아주 잘 정착하고 있잖아!” 이 장면은 미국이민을 잘 정착하려는 가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한국 영화는 위대하다.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했을 때, 세계가 놀라고 우리는 감격했었다. 이번 아카데미에서도 미나리는 반드시 커다란 성과가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아카데미상 후보작품은 3월15일에 발표되고 시상은 4월25일에 갖는다. 지난해에 이어 대한민국 국민들, 의지의 한국인들이 만들고 한국인의 이야기가 있는 미나리가 다시 한 번 찬란하게 빛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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