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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한지 전문가 박성만 동양한지 대표

“우수한 전통 한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까 염려돼요”

한지업계서 50년 종사한 산증인…이집트 파피루스 못지 않은 한지 우수성 알리는 게 꿈

오창영기자(cyoh@skyedaily.com)

기사입력 2021-04-13 00: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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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의 인기가 크게 줄어든 요즘 한지 공방과 가게들을 찾기란 매우 힘들어졌다. 일각에선 전통 한지의 명맥을 잇기조차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마냥 방관할 수 없었던 박성만 동양한지 대표(사진)는 위기에 처한 우리의 한지를 지키고 후대에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진=이종원 대기자] ⓒ스카이데일리
 
“지천년 견오백(紙千年 絹五百)이라는 말이 있어요. 종이는 1000년을 가고 비단은 500년을 간다는 뜻이죠. 이 말은 한지를 두고 한 말임에 틀림없어요. 한지를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노력, 그에 수반되는 엄청난 시간 등 이것들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지는 한지는 매우 견고하고도 오래 가는 종이거든요. 이같은 장점처럼 전통 한지가 앞으로 1000년, 2000년 넘게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우리나라의 전통 종이, 한지를 접할 일이 없는 요즘이다. 학창시절엔 미술 수업 재료나 서예에 사용하기 위해 이따금씩 접하기도 했었으나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한지는 일상에서 동떨어진 낯선 종이가 되어버렸다. 이른바 A4 용지로 통칭되는 펄프 종이가 인쇄하기 용이하면서도 가격적으로 경쟁력이 높다는 점을 앞세워 우리 사회에 빠르게 침투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가 종이를 떠올렸을 때 한지가 아닌 펄프지가 먼저 떠오르는 안타까운 상황이 초래되고 말았다.
 
시대가 변하며 한지의 인기는 크게 감소했다. 그리 많던 한지 공방과 가게들도 요즘엔 흔적을 찾아볼 수도 없을 만큼 그 수가 많이 줄었다. 일각에선 전통 한지의 명맥을 잇기조차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마냥 방관할 수 없었던 한 사람은 위기에 처한 우리의 한지를 지키고 후대에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평생 동안 고군분투하고 있다. 스스로를 ‘한지에 미쳤다’고 소개하는 한지 전문가 박성만 동양한지 대표(74)가 그 주인공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시작한 한지업…좋은 한지 만들기 위해 고된 작업도 불사
 
“한지업에 몸담은 지도 벌써 50년이 넘었어요. 전주에서 이름 난 한지 유통상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한지를 접했죠. 한지는 참 매력적인 종이예요. 거친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부터 담백한 향기와 자연을 담은 그 색감까지 한지의 매력은 무궁무진하죠. 그래서일까요. 한순간에 한지에 푹 빠져들었죠.”
 
박 대표는 인사동의 터줏대감이다. 1972년 4월 인사동에 자리한 이래 근 50년을 지켜 왔다. 우리나라의 으뜸가는 전통 문화 거리가 어떻게 변화하고 탈바꿈하는지 직접 보고 느껴 온 산 증인인 박 대표는 한지의 운명도 인사동의 그것과 맥을 같이했다고 회상했다.
 
“1970년대 서울에 갓 올라오자마자 지금은 없어진 옛 서울예식장 뒤쪽에 동양지업사를 열고 한지업을 시작했어요. 지금 동양한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죠. 당시만 해도 종로의 임대료가 훨씬 저렴했던 터라 임대한 공간의 절반은 한지를 직접 만드는 생산 공방으로 쓰고 나머지는 한지를 판매하는 가게로 나누어 운영했죠.”
 
▲ 박 대표는 인사동의 터줏대감이다. 1972년 4월 인사동에 자리한 이래 근 50년을 지켜 왔다. 사람 많은 서울에서 한지를 알리기 위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일해 온 박 대표는 1980년대 서예 붐, 1990년대 한지 공예 붐 등을 거치며 한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스카이데일리
 
“예부터 인사동엔 화랑과 표구사 등이 참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한지 등을 판매하는 지업사들도 모여들 수밖에요. 게다가 당시엔 현대 가옥보다 한옥이 훨씬 많아 한지로 만든 문 창호지와 벽지 등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지방, 사주단자 등을 쓰는 전통이 주류 문화여서 한지의 수요가 매우 높았어요. 한지가 사랑받던 시기였죠.”
 
한지가 선호되던 당시에 대해 얘기하는 박 대표 눈빛이 밝게 빛났다. 그런 그도 한지 만드는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사람 많은 서울에서 한지를 알릴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한지를 만들고 팔았어요. 그러나 몸은 무척이나 고됐어요. 한지 만드는 과정이 꽤나 힘들거든요.”
 
“한지는 닥나무 껍질을 원료로 만들어요. 단단하고 질긴 껍질을 잘 벗기기 위해 솥에서 찌고 분리한 껍질을 햇볕에 말리죠. 건조할 때는 흑피를 벗겨내야만 흔히 볼 수 있는 하얀 한지를 만들 수 있어요. 번거롭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이 과정을 거쳐야 하얗고 맑은 빛깔을 낼 수 있죠.”
 
“이렇게 말린 닥나무 껍질은 천연 잿물에 삶아요. 그래야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거나 망가지지 않고 오래 보존돼요. 이후 불순물과 잡티를 제거한 닥나무 껍질을 방망이로 쉼 없이 두드려 물에 넣고 풀어 준 뒤에 닥풀을 넣고 잘 저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닥원료 물을 잘 뜨고 말리면 비로소 한지가 되는 거죠. 한지 만드는 게 이리도 어려워요.”
 
박 대표의 피나는 노력과 한없는 정성을 알아준 덕분인지 KBS의 ‘한국의 미’라는 프로그램에서 시청자에게 전통 한지를 소개하고 한지의 매력에 대해 알리고 싶다며 박 대표를 찾아오기도 했다. 박 대표는 단순히 돈을 벌 목적이었다면 평생을 바쳐 한지업에 종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의 문화를 지킨다는 자부심과 뚝심으로 버텨왔다고 했다.
 
“1980년대 서예 붐이 일면서 한지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해요. 전국에 서예 학원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서예가 하나의 대중문화로 자리 잡게 됐죠. 이에 한지 수요도 크게 늘었어요. 그런데 복지관과 문화센터 등에서 서예를 저렴한 가격에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시작하면서 서예 학원뿐만 아니라 한지업도 위기를 맞게 돼요. 교육비가 매우 저렴하다 보니 학원 대신 복지관, 문화센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데다 비싼 한지도 쓸 수가 없는 거예요.”
 
“전주에서 생산된 한지의 가격이 장당 500~1000원 정도라 10장만 서예 연습을 하더라도 5000~1만원은 금세 쓰는데 중국 선지는 장당 몇 십원에 불과하니 복지관, 문화센터와 사람들이 저렴한 중국 선지를 먼저 찾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결국 중국 선지가 국내에 대량으로 수입돼 한지의 자리를 모조리 빼앗고 말아요. 참 안타까운 일이죠.”
 
“1990년대엔 한지 인형, 한지 육각함 등 한지 공예 붐으로 한지가 또 한번 높은 인기를 구가하게 돼요. 그러나 공예품 제작에 너무 많은 시간이 투입되고 노력과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탓에 가격대가 높게 형성될 수밖에 없어 오래지 않아 인기가 시들시들해지더라고요. 한지의 인기가 높아질 만하면 기세가 꺾이고 한지 수요가 증가하다가도 가격적인 문제로 판매량이 크게 줄어드니 한지업을 영위하는 게 너무나 힘들더라고요.”
 
민족의 문화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한지 지킴이 자처
 
2000년대 들어 민화가 인기를 끌면서 한지 수요가 꽤나 늘었으나 이같은 민화 붐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모르겠다고 박 대표는 우려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한지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전통 한지의 명맥을 이어 나가기 위해 2018년 한지 소재 연구소를 설립하고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어요. 견고하고 오래 보존되는 한지의 장점을 다양한 분야에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죠.”
 
▲ 박 대표는 우리의 전통 한지가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명맥을 이어 나갈 젊은이들이 없다는 사실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박 대표는 더 이상 젊은 세대들이 한지를 외면하지 말고 전 세계에 한지를 널리 알려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의 문화를 지켜나갔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스카이데일리
 
“최근엔 사진 인화가 가능한 한지를 개발하기 위해 부단히 연구하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사진을 인화하려면 칠흑같이 어두운 암실에서 약품 속에 인화지를 담가야 해요. 그런데 한지를 액체 속에 담구면 대개 물에 풀어지고 곤죽이 되곤 해요. 또 약품에 담갔을 때 한지가 부식되거나 상할 우려도 고려해야 하죠. 그래서 액체에 풀어지지 않고 약품에도 강한 한지를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는 중이에요.”
 
한지업에 평생을 바쳐 온 박 대표는 우리의 전통 한지가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명맥을 이어 나갈 젊은이들이 없다는 사실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한지업에 50년 가량을 종사해 왔지만 업계에서 요즘처럼 젊은이들을 찾아볼 수 없었던 적도 없는 것 같아요. 20~30대 젊은이들이 많아야 기술을 전수할 수 있을텐데 대부분의 한지 공방에는 20·30대는커녕 40대도 없어요. 60·70대만이 한지업계를 지키고 있는 셈이죠.”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한지 공방 등이 전국에 100개가 넘었는데 지금은 20개 정도에 불과해요. 한지 생산·제조 기술을 전수받을 젊은 세대가 없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한지를 구매하지도 않으니 한지업계의 수익성도 날로 악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예요. 젊은 세대에게 외면 받으면서 한지가 잊혀져가고 있는 거죠.”
 
“한지의 명맥이 끊어질 수 있는 상황이 도래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나머지 이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전 제 아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있어요. 아버지와 저의 뒤를 이어 한지업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그것이야말로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의 문화를 지켜나가는 길일테니까요.”
 
박 대표는 한지의 우수성을 앞세워 전 세계에 알리고 다양한 활용도를 연구하는 것만이 우리의 전통 한지가 오래도록 보존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선지나 일본의 화지에 비해 매우 뛰어난데도 불구하고 한지는 다른 나라의 종이보다 인지도가 크게 뒤떨어져요. 낮은 인지도에 한지를 찾는 사람이 계속 줄어들게 되면 종국엔 한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지도 몰라요.”
 
“그래서 우리의 전통 한지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어요. 한지의 우수성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한지를 이용한 다양한 활용처를 발굴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만 한지가 전 세계인의 인식 속에 중국 선지, 일본 화지를 뛰어 넘는 최고의 종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믿어요.”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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