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요, 지금 인사동에서 파는 붓 중에 우리나라 붓을 찾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가격이 있는 우리 붓에 비해 중국에서 들어오는 붓의 가격이 싼 탓에 찾는 사람이 많지도 않고 찾더라도 비싼 가격 때문에 주저하고 말지요. 우리나라 작가가 우리나라 작품을 만드는 데 중국 붓을 사용한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으로 만들어지는 우리 붓이 보편화돼서 우리 붓으로 만드는 작품이 늘었으면 좋겠어요.”
예로부터 문방사우(文房四寶)의 한 축을 담당하며 글과 예술을 위한 필수품이었던 붓은 펜과 연필이 보급화된 지금에 와서도 그 특유의 선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붓은 털이 가지런하고 털 앞단의 길이가 모두 맞으며 눌렀을 때 부드럽게 눌리면서도 곧잘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일품으로 치며 이를 만족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솜씨와 까다로운 제작과정이 요구된다.
화랑, 필방, 재료점, 표구 등 전통공예에 필요한 물품들이 가득한 인사동의 한 거리에서 56년간 염소의 털을 이용해 백모필을 만들어온 장인이 있다. 서울특별시 제5호 무형문화재 백모필장인 백산 전상규 필장(74)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쓰셨다는 백모필인 세종필, 소 귓속털로 만든 우모필, 노루 겨드랑이 털로 만든 장유필 등 온갖 종류의 붓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그의 공방인 백산필방에서 붓 제작에 대한 그의 신념과 전통 붓 보편화에 대한 사명 등을 들어봤다.
어린 시절 기른 동물과 자연을 보는 눈, 붓 재료 엄선에 큰 도움 돼
광주광역시 백운동 출신인 전상규 필장은 할아버지 대부터 대대로 붓을 만들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붓을 만들면서 서당도 겸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붓 제작을 배우게 됐다.
“저는 시골에서 자랐어요. 그래서 동물들을 유의깊게 보고 산에 다니면서 나무를 바라보다 보니 동물의 어느 털을 이용해서 어떤 붓을 만들어야 하는지, 또 좋은 붓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대나무를 사용해야 하는지가 보였어요.”
재료를 엄선하는 눈은 그가 16세 때 당시 지역에서 이름을 떨치던 붓 제작자 밑으로 들어가 백모필 제작법을 배울 때도 한 몫 했다. 전 필장은 7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허드렛일을 해 주면서 백모필 제작법을 배웠다. 전 필장이 본격적으로 붓 장인의 길에 뛰어들고자 한 것은 스승의 명성을 듣고 붓을 사러 찾아온 일본 상인이 그의 작품을 매우 마음에 들어해서였다.
그 길로 전 필장은 광주에 개인 공방을 차렸다. 그러나 그의 공방은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부도로 사라졌다. 붓의 끝단을 맞추는 기술이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스승 밑에서 지도받을 때와 달리 홀로 붓을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고 전 필장은 설명했다.
“부도가 나고 나서 붓 만드는 일을 포기하고 농사일을 했어요. 기술은 있었지만 완벽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엔가 아버지가 당숙께 다녀오시더니 염소털을 가져오시더라고요. 들어보니 붓 만드는 기술이 있는 조카가 농사를 하는 것을 보시던 당숙께서 아까워하시며 시장에서 염소털을 사다가 빗어서 마루에 둔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 털을 이용해서 다시 붓 만들기에 도전했어요. 셋방살이하며 노력한 끝에 끝단을 완벽하게 맞출 수 있게 됐어요.”
광주에 있던 전 필장이 서울로 올라오게 된 것은 30세를 넘어선 때였다. 그가 만든 백모필을 본 서울 인사동의 유명 공방에서 그를 스카우트한 것이다. 인사동 공방에서 붓 제작을 시작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에게는 훌륭한 우리 붓을 알리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그는 역사박물관 등에 작품을 전시하거나 문화재 전시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도 했다. 언젠가 붓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일념으로 붓 장인의 길을 묵묵히 걷던 그가 2018년 서울 무형문화재 백모필장이 된 것은 어려웠지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좋은 재료에 세심하고 정교한 과정을 더해 만들어지는 우리 전통 붓
56년 동안 한 우물을 판 장인으로써 서울시 무형문화재가 된 그의 붓은 재료 선정부터 남다르다. 전 필장에 따르면 백모필에 쓰이는 염소털은 우리나라 순종, 그 중에서도 서해의 해풍을 받고 자란 호남 지역 염소의 털이 가장 품질이 좋다. 거친 비바람을 맞으면서 털에 윤기가 흐르고 곧게 자란다는 것이다. 염소털을 채취하는 날짜도 정해져 있다. 붓에 사용하기 가장 적합한 염소털을 얻을 수 있는 때는 설날로부터 15일 전후다. 추울수록 털에 기름기를 돌게 해 체온을 유지하는 짐승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어릴적 시골에서 살았던 경험이 재료를 선정할 때 큰 도움이 됐어요. 제가 엄선하는 재료들이 훌륭하다 보니 제게 붓 재료를 부탁하시는 분도 많아요. 좋은 붓을 제작하는데 좋은 재료를 쓰는 것은 필수니까요. 특히 좋은 염소털은 아주 고가인 재료 중 하나이고 구하기도 어려워요. 이를 구하기 위해서 장날마다 지방에 내려가서 재료를 찾아보기도 해요. 제가 필요한 순종 염소는 크게 자라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수도 적고 쓸 수 있는 털도 부족한 편이죠.”
전 필장은 붓대를 만드는 데 쓰이는 대나무를 고를 때도 신중을 기한다. 붓대로 쓰기 좋도록 위와 아래의 굵기가 일정한 전라도의 신호대(조릿대) 중 자란 지 2년 혹은 3년된 대나무만 쓴다. 붓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나무에 황토를 발라 3개월 간 건조해야 하는데 너무 어린 대나무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갈라져 버린다. 4년이 넘어 속이 찬 대나무도 안 된다. 속이 찬 대나무로 만든 붓대에는 촉(붓의 털 부분)을 끼우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끼운 후에도 오래 가지 못하고 갈라지고 만다는 것이 전 필장의 설명이다.
“기존 대나무의 푸른 빛에서 노란 빛을 내기 위해서는 황토를 발라 건조하는 과정이 꼭 필요해요. 3년 차 신호대를 사용하는 것도 그런 이유지요. 그런데 간혹 3개월 동안의 건조 과정에도 제대로 물이 들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그 대나무는 창고에 다시 넣어두고 다음 해까지 기다리죠. 4월부터는 재료를 취합해서 본격적으로 붓을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하니까요.”
전 필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처럼 전통적으로 붓을 사용하는 중국과 일본에는 붓 장인이 없다. 재료 엄선부터 마무리작업까지 붓 하나를 제작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복잡한 절차를 한 사람의 장인이 모두 도맡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과 일본은 여러 사람이 각 과정을 분담해 한 자루의 붓을 만들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에 등재된 우리나라 필장의 이름에는 붓 제작의 전 과정을 총괄하며 작품에 책임을 진다는 무게가 실려 있다.
“좋은 붓이 나오려면 모든 것이 정확하고 완벽하게 갖춰져야 해요. 기장, 대, 실 묶기, 촉에 쓰인 털의 비율, 재단, 기름빼기 등이 완벽하고 흠 없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죠. 붓 한자루를 만들기 위한 수십 가지 절차 중에서 단 하나라도 빠지면 붓은 벌어지거나 갈라져서 못 쓰게 돼요. 정교한 절차들이 잘 맞물려 완성된 붓이야말로 쓰는 사람의 뜻을 잘 따라주는 좋은 붓인 것이지요.”
“아름다운 우리 작품이 우리 붓으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힘쓰고 싶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답게 전 필장의 붓은 구당 여원구 서예가, 송정 서진원 서예가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서예가들도 많이 찾는다. 경기대학교에서 서예를 가르치는 하정 전상모 서예가는 전 필장의 필방에 방문해 초장봉을 사간 적도 있다. 그 외에도 원하는 용도의 붓을 맞추기 위해 여러 지역에서 전 필장의 필방을 방문한다. 전 필장은 그때마다 성심과 성의를 다해 붓을 만든다고 말했다. 훌륭한 우리 작품에는 우리 붓을 사용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전 필장은 염소털을 이용한 백모필을 주로 만들지만 그의 공방에는 염소 외에도 청설모, 고라니, 쥐 수염 등 여러 동물의 털로 만든 붓도 많다. 전 필장은 백모필 뿐 아니라 다른 붓도 모두 우리 전통 붓이라며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에 백모필장과 황모필장만 있다는 사실이 아쉽다고 말했다.
“저는 지금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교육전시장에서 붓 만들기 강의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붓 수업을 하는 사람이 저와 황모필장밖에 없어요. 서울에서 백모필과 황모필 강의 자리만 만들어주다 보니 다른 붓을 만드는 수업이 없는 것이죠. 다른 동물의 털로 만든 붓도 우리 전통 붓이니만큼 저는 학생을 가르칠 때 세필 등 다른 붓도 함께 가르치고자 하고 있죠.”
전 필장에게 우리 붓의 명맥을 잇는 법을 물었다. 그는 붓을 한문이나 민화뿐 아니라 더욱 많은 방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통 붓을 알리고 싶은 그는 어린 학생들을 위한 전시장, 체험관 등에 자신이 직접 만든 붓을 들고 나간다. 전 필장은 외국인을 포함한 더욱 다양한 사람의 체험을 위해 영어를 쓰는 붓을 개발하기도 했다. 고가의 붓이지만 전시장에 온 사람들이 붓의 장점과 붓을 쓰는 것에 대한 재미를 느낄 수만 있다면 그는 만족한다고 말했다.
“인사동에서 중국 붓을 많이 찾을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전통 붓의 비싼 가격 때문이에요. 서예가분들 중에 저를 찾아와서도 가격 때문에 구입을 주저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제가 눈치를 봐서 가격을 깎아드리거나 더러는 선물해 드리기도 하지요. 우리 장인이 우리 붓을 써서 작품을 만들어야 전통 붓의 명맥을 이을 수 있고 아울러 붓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우리 것이라고 세계에 당당히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후손들에게 중국 붓으로 만들어진 우리 작품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우리 붓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거예요. 언젠가는 목포에 가서 우리나라 순종 염소를 야산에서 직접 길러내어 최고의 붓털을 만들고 싶어요. 또 습도가 높아 빨리 갈라지고 망가지는 일본과 중국 대나무와 달리 쉽게 망가지지 않는 우리 토종 대나무의 수급에도 힘쓰고 싶죠. 지역에 계신 여러 붓 장인분들과 함께 논의해 인사동에서 우리 붓을 보급화할 수 있는 방법도 연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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