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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데일리 칼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잊어버린 사람들

박선옥기자(sobahk@skyedaily.com)

기사입력 2021-06-25 01: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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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옥 부장 (국제부)
 문재인정부 들어서 우리나라에도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가 생겨 각종 청원이 올라오고 있지만, 세계 최대 청원 사이트 ‘체인지닷오알지(Change.org)’에도 한국인이 올린 청원들이 많이 눈에 띤다. 최근에는 ‘고령자의 지하철 무임승차 반대’ ‘서울 관광가이드북의 오류 수정’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문제’ 등과 관련한 청원들이 올라와 있다.
 
그런데 이 사이트에서 포브스 선정 세계 1위 부호이자 아마존 창립자 겸 CEO 제프 베이조스와 관련된 청원 중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이달 10일 ‘Ric G’라는 이름의 청원자가 올린 제목은 ‘제프 베이조스가 지구로 귀환하지 못하게 해달라 Do not allow Jeff Bezos to return to Earth’이며, 그 내용은 ‘억만장자는 지구에서나 우주에서나 존재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들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곳(우주)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청원은 앞서 베이조스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우주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한 지 3일만에 올라왔다. 우주탐사 기업 블루오리진을 소유한 베이조스는 “7월 20일,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모험을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남동생과 함께 떠날 것이다”고 7일 밝혔다. 이후 12일에는 블루오리진이 경매에서 베이조스와 함께 유인 우주선에 탑승할 수 있는 티켓 1장이 낙찰됐다고 발표했다. 낙찰자의 신원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낙찰가는 2800만달러(약 312억6000만원)로 밝혀졌다. 블루오리진 측에 따르면 티켓 판매 수익은 전액 자사의 교육 관련 비영리단체인 ‘클럽 포 더 퓨처’에 기부된다.
 
그렇다면 체인지닷오알지 청원자는 왜 베이조스가 우주여행에서 지구에 돌아오는 것을 반대할까? 청원에 올린 내용에서 ‘억만장자’란 단어를 단수가 아닌 복수 ‘Billionaires’라고 쓴 것으로 보아 그의 화살이 단지 베이조스 뿐 아니라 부호들을 향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바로 전날 BBC에는 ‘미국 슈퍼리치들, 세금 거의 안 낸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워렌 버핏 등 미국 억만장자들의 세금 납부 실상이 담긴 자료가 언론사에 유출됐다는 소식인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가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BBC에 따르면 ‘프로퍼블리카(ProPublica)’라는 미국의 비영리 언론사가 베이조스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세금 납부 내역을 공개했는데, 베이조스는 2007년과 2011년에, 머스크는 2018년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베이조스와 머스크는 세계 부호 1·2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프로퍼블리카는 미국의 억만장자와 관련된 엄청난 양의 국세청 자료를 확보해서 검토했다면서 앞으로 계속 상세한 자료를 폭로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로퍼블리카의 주장이 과연 사실인지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보도와 체인지닷오알지의 청원 내용은 미국 부자들의 납세와 불평등 문제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보도는 미국의 상위 슈퍼리치 25명이 일반 직장인보다 적은 세금을 낸다고 지적한다. 프로퍼블리카의 에디터는 “슈퍼리치가 되면 세금을 ‘0원’ 수준으로 낼 수 있다는 데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면서 “이들은 조세 체계의 허점을 이용해 완전히 합법적인 방식으로 조세 체계를 피해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베이조스는 특히 이혼한 전 부인 매켄지 스콧의 자선활동과 비교되어 더 비판을 받는다. 2019년 이혼과 함께 이혼합의금으로 세계 22위에 오른 매켄지는 “금고가 텅 빌 때까지 나누고 베풀겠다”고 선언하며 기부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유명인들의 재산 기부 캠페인 ‘기빙플레지’에도 동참하지 않은 베이조스와 대조를 이루며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귀족(사회지도층)의 의무’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하는 매켄지의 행보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형상이 있다. 바로 오귀스트 로댕의 걸작 ‘칼레의 시민’ 조각상이다. 14세기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 당시의 에피소드에 나오는 한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이 정복한 프랑스 칼레의 모든 시민들을 죽이는 대신 칼레시를 위해 처형당할 시민 6명을 뽑아오라고 명을 내렸다. 이에 죽음을 모면한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나 6명을 골라야 하는 난제에 부딪쳤다. 그때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라는 부유한 귀족이 시민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겠다고 나섰고 이어 고위관료와 상류층에서 5명이 영국의 요구대로 목에 밧줄을 매고 죽음을 자청했다. 하지만 이들의 고귀한 정신에 감동한 영국의 선처에 칼레의 의로운 시민 6명은 극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됐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은 12점만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도 그중 하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건희 전 삼성회장이 수집한 이건희컬렉션 중 하나이다. 한때는 서울 중구에 삼성문화재단이 소유했던 ‘로댕갤러리’에 전시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갤러리가 폐관되면서 소재가 불확실한 작품이다. 기자도 예전에 로댕갤러리를 방문해 작품을 봤던 기억이 있다. 이건희 전 회장이 이 작품을 수집한 것은 아마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늘 새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라고 해석한다면 억측일까.
  
베이조스의 지구 귀환을 막아달라는 청원, 그리고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과 관련해 문득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최근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 6900만원 대상에 선정되어 논란이 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 씨다. 문 씨가 지원금 심사를 받으면서 2차 면접은 이름을 밝히는 것으로 자신의 소개를 시작했다고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실이 밝혔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나마 ‘저는 대통령의 아들입니다’가 아니었기에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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