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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언의 문화방담(放談)

독보적 장르 ‘유리그림’ 개척자 황선태 화가를 만나다

감각적이고 명상적인 빛의 실내 풍경으로 관객들 사로잡아

전통 한지 창호에 깃든 실루엣 그림자 이미지 기억 되살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7-23 09:40:58

 
▲이재언 미술평론가
 새삼스럽게 빛에 관한 이야기, 아니 어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빛은 생명과 존재의 원천으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며, 미술도 결국은 ‘빛놀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빛의 위대함만 이야기할 뿐 그 반대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세계는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우리 인간도 빛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빛만큼의 어둠도 필요하다. 낮과 밤이 조화롭게 모든 생물을 성장시키지만, 밤의 중요성은 간과되고 있다. 밤을 밤으로 삼지 않고 낮처럼 환하게 밝히기만 했을 때, 생체는 리듬을 잃고 호르몬의 교란을 맞게 된다. 어둠은 빛을 돋보이게만 하는 조연이 아니다. 세계는 명과 암이 공동으로 주연을 맡은 무대이다.
 
이토록 평범하고도 진부한 진리를 우리는 화가 황선태의 화면에서 새롭게 떠올리게 된다. 그는 ‘빛의 화가’라 불리고 있다. 해가 낮게 기울어져 있는 시간대에 어스레하니 실내로 들어온 빛의 감흥을 속삭이듯 노래하고 있다. 빛을 사역하면서 또한 빛을 표현하는 작가다. 전성기 르네상스 작가들이 즐겨 구사한 선원근법에 의한 공간감에, 따스하게 들어오는 햇살의 포근하고 고즈넉한 연출이 결합되어 파라다이스 같은 실내풍경을 펼치고 있다. 정적인 고정적 화면이지만, 해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또한 공간은 현대적이지만, 양식적으로는 고전적이고 이상화된 질서 속에서 명상과 힐링의 감성공간을 창출함으로써 관객에게 널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빛이 드는 공간, 2020, 172x122x4cm, 아스텔아크릴, uv인쇄, 필름, LED2. [사진=필자 제공]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을 가서 유리공예를 공부한 작가가 두 장르를 융합하여 독특한 유리그림을 일구었다. 물론 그의 유리그림이란 서양의 고딕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큰 영감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빛이 드는 공간. 2020,218x62x4cm, 강화유리에 샌딩, 유리전사, LED.
  
 유리로 빛이 투과되는 필터링이 묘한 감흥을 유발하는 효과를 일찍부터 경험적으로 터득했을 것이다. 빛은 물이든 유리든, 종이든 투과되면서 약간의 굴절이나 분해가 이루어지면서 오묘한 아우라를 일으킨다는 점 말이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표현해내기 어려운 영화로운 천상계의 신령한 비밀을 표현하는 도구로써 세속의 무리들은 그 앞에서 무한한 찬사와 경탄을 바치고 있다. 작가에게서 시적인 빛의 감각을 신비적 심미성으로 표현해낸 17세기 얀 베르메르의 화풍도 엿보인다. 물론 빛의 드라마틱한 표현이야 이 밖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추구했던 사항이다.
 
▲빛이 드는 공간. 2020,218x62x4cm, 강화유리에 샌딩, 유리전사, LED.
  
한편 조명을 내장시킨 오늘의 전광판 내지 빌보드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방법을 응용한 것으로, 천상의 영화나 신령함을 제거하고 상업적 세뇌용 카피와 이미지를 운반하는 도구로 등장하였다. 물론 가공할 동영상이 구동되는 LED 패널에 의해 정적인 광고판이 위축되고는 있지만 도심 어디든 여전히 편재해 있다. 작가의 유리그림이 심미적으로는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기술적으로는 광고용 빌보드와 근친성을 갖는다. 그의 화면은 천상계로부터 세속으로, 그러면서도 상업적 광고의 흔적을 완전히 표백시켜 자율적이고 심미적인 감성의 세계를 가공해내는 것으로 특화시킨 것이다.
 
▲빛이 드는 공간. 2020,50x67x4cm, 강화유리에 샌딩, 유리전사, LED.
 
 
바로 여기에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그의 유리그림은 바로 우리 전통의 한지 창호에 드리워지는 실루엣 이미지가 자아내는 정서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통 한지 창호는 우리들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미친 스크린이다. 그것에 드리워진 실루엣 이미지들의 시각 효과는 우리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밖에서 비스듬히 방 안으로 들어오는 빛이 드리우는 그림자를 통해, 우리는 그윽하고 명상적인 아우라와 은유의 정서를 원형적으로 체득해 왔던 것이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수묵담채나 미니멀 내지는 모노톤 등에 친숙한 미의식을 지닌 것도 이에 기인하지 않나 생각된다. 담담하면서도 감칠맛 나고 신비감마저 감도는 이런 류의 미감을 구현하는 회화적 표현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감흥을 성공적으로 재현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매질을 투과하면서 나타나는 오묘한 감흥의 전달이 쉽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빛이 드는 공간. 2020,50x67x4cm, 강화유리에 샌딩, 유리전사, LED.
  
작가의 유니크한 유리그림은 회화와 유리의 융합 산물이다. 유리를 반투명 상태로 가공하는 샌딩과 재현 이미지 차입을 위한 전사(轉寫) 기법에 의해 유리면이 캔버스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작가는 인공적 빛을 이용하여 빛의 풍경을 그림으로써 빛의 화가라 불린다. 음과 양, 명과 암을 조화적으로 마술사처럼 조율해내는 작가이다. 오히려 빛의 화가라는 애칭은 어둠을 활용하여 유기적인 상호성을 절묘하게 조율해내는 데서 온 것이기도 하다. 그가 얼마나 섬세하고 자연스럽게 빛과 어둠의 조화를 연출해내는지, 관객들은 화면 앞에 서서 매혹적인 빛의 향연을 누리게 된다.
 
▲ 황선태 작가
  
보통 미디어 작업에서는 OFF 상태, 즉 전원이 차단된 상태에서는 사실상 진법상 ‘제로’ 혹은 ‘없음’이다. 하지만 작가의 것은 ON 상태만큼은 아니어도 오프 상태에서도 화면이 살아 있는 것을 추구한다. 사실 미디어 작업의 장점이면서도 전기적·전자적 메커니즘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한계가 많이 지적되고 있다. 그런데 작가의 화면은 제한적이지만 오프 상태에서도 작품 기능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이는 작가의 작업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로운 상호작용에 기반을 둔 것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이 독보적인 것은 역시 융합의 결정체라는 점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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