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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크메르루주(붉은 크메르) 집권 시절(1975~1979)의 집단학살 현장들(‘킬링필드’)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AP·AFP 통신에 따르면 유네스코가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를 열어 캄보디아 대량학살 유적지 3곳과 불교 사원 등 6개를 새로 선정했다. 무형유산으로는 캄보디아 수제 전통 스카프(크라마) 제작 기술, 캄보디아 새해 명절(송끄란) 및 전통혼례 등 3개가 이름을 올렸다.
캄보디아는 크메르루주의 캄푸치아민주공화국과 인민공화국을 거쳐 1993년 입헌군주제 왕국으로 거듭났다. 1992년 앙코르와트 등재 이래 프레아 비헤어(2008), 삼보 프레이 쿠크(2017) 코 케르(2023) 등 고대 사원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았으나 현대사의 비극이 담긴 고문·처형·매장 장소들을 신청해 인정되긴 처음이다. 올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급진 공산주의 세력 크메르루주 정권이 출범한 지 50주년이다. 이날의 의미가 출범일 4월17일 대신 유네스코 결정에 대한 입장 표명과 함께 언급됐다.
12일 훈마넷(47) 캄보디아 총리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유네스코 결정을 환영하며 “역사의 가장 어두운 장에서 인류를 위한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할 힘을 얻을 수 있다. 이번 등재가 평화를 항상 지켜야 한다는 것을 영원히 상기시켜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훈마넷은 2023년 약 40년 만에 물러난 훈센 총리의 아들이다. 그해 4월 그가 총리에 오르면서 과거와의 선긋기에 더욱 힘쓰는 모습이다. 크메르루즈였던 훈센이 킬링필드 와중에 탈출해 크메르루즈 정권 붕괴 후 38년을 집권하면서 후계자를 서방교육으로 길러냈다. 1977년생인 훈마넷은 미 육사 출신이자 뉴욕대 경제학 석사(2002) 영국 브리스톨대 경제학 박사(2009)다.
크메르루주는 노동자·농민의 유토피아를 내걸고 지식인과 부유층을 숙청해 인구 전체의 25%를 죽게 했다. 킬링필드 현장 중 수도 프놈펜의 초응엑 대량학살 센터가 가장 유명하다. 1만5000명이 수감돼 잔혹한 고문 끝에 다수가 죽어간 곳이다. 작년 4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선정 제출 시 서류에 따르면 1980년대 이곳에서 100개 이상의 집단무덤이 발견됐고 거기서 나온 시신은 6000구를 넘었다. 크메르루즈 시대에 실제 처형 당한 숫자가 20~50만 명이며 고문·강제노역·강제행군 등으로 죽어간 사람까지 아울러 150~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일련의 잔혹 행위를 현장에서 목격한 미 뉴욕타임스(NY) 특파원 시드니 쉴버그의 저서 ‘디트 프란의 생과 사(어느 캄보디아인 이야기’(1980)가 퓰리처상을 받았고 영화화됐다. 영화 ‘킬링필드’(1984)는 3개 부문 오스카상(영국 아카데미 8개 부문 수상)을 받으며 세계적 유명세를 탔다. 평단·관객 평가와 흥행 성적 모두 높았고 지금까지 영화평 사이트 로튼토마토 93%를 유지한다. 킬링필드라는 단어가 이념에 의한 대량살육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것도 이 영화 영향이다. 총알을 아끼고자 다양한 원시적 살인 방법이 동원된다든가 어린이들을 세뇌해 ‘반혁명분자’들을 비닐봉지 등으로 질식사 시키게 만드는 장면 모두 충격적이다.
한편 캄보디아특별재판소(공식 명칭 ‘크메르루즈 특별 법정’·ECCC)가 1997년부터 태동했다. 캄보디아 정부의 공식 협조 요청 아래 유엔이 나서 2004년 ECCC 설립법 을제정한 다음 내부 규칙 채택과 판사·검사 임명 완료 후 2007년부터 본격 가동했다. 2016년 11월 양민대학살 핵심 전범 2명에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이 확정됨으로써 크메르루주 정권 붕괴 37년 만에 주범 일부 단죄가 이뤄졌다.
정권 제2인자였던 누온 체아 전 공산당 부서기장과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 두 사람은 강제이주와 처형 등 반인륜 범죄로 2010년 기소됐으며 항소심에서 원심대로 종신형이 선고됐다. 이슬람 소수민족(참족) 대량학살 혐의가 인정된 누온 체아는 복역 중 2019년 사망했다. 또 2014년 종신형을 받은 카잉 구엑 에아브(투올슬렝 교도소 소장)의 병사(77) 소식이 2020년 9월 전해졌고, 캄보디아 내 베트남계에 대한 대량학살 주도 혐의인 삼판의 항소가 2022년 9월 기각됐다. 킬링필드 관련 국제사회의 심판이 16년 만에 마무리된 셈이다.
다만 정작 1인자 폴 포트(1925~98) 전 총리는 정권 붕괴 후 밀림에서 게릴라전을 계속하다가 1998년 사망해 법정에 세우지 못했다. 그는 히틀러·스탈린·마오쩌둥과 함께 20세기 4대 대량학살 주범이며 이념의 이름으로 자국민을 단기간 내 가장 많이 처단한 인물로 악명 높다. 폴포트란 ‘정치적 잠재력’을 의미하는 불어·영어의 머리글자로 상류층 느낌을 주는 본명(살로트 사르) 대신 평등주의 이상을 내세운 이름이었다. 조직 내에선 ‘형제1·2·3…’ 식으로 상호 호칭했다고 한다.
폴포트는 마오이즘이 융합된 급진적 농본주의 이상향을 추구하며 도시·지식인·서구문명을 타락의 상징으로 봤다. “도시 청산” 구호 아래 모든 도시 인구를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환자·노약자·어린이 등이 다수 사망했다. 자본주의 잔재로 몰려 처단된 계층은 주로 교사·의사·공무원, 심지어 안경 쓴 사람들이었다. 손이 고운 것 또한 처형의 이유가 됐다. 킬링필드는 지식인·종교인·소수민족 숙청, 화폐·교육·시장 제도 폐지, 가족 해체(집단화) 등 중국 문화혁명을 한층 극단화한 정치실험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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