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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13>

신라방(新羅坊)은 허구, 신라 두개 있다

김유신의 활동무대, 반도가 아니고 대륙이었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7-31 13:21:54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우리나라 교과서는 김유신(서기595~673)을 경주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사서(史書)에 의한 김유신(金庾信)은 반도에서 활동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지나(支那)의 25사(史)동이(東夷), 삼국사기(三國史記) 어디에도 김유신이 반도에서 활동했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우리나라 반도식민사관자들은 하나같이 일본이 조작한 ‘조선사’만을 맹신하며 김유신이 반도에서 활동한 것 같이 말하고 있으나 사서(史書)에 보면 그는 반도인(半島人)이 아니다. 반도인이 되려고 해도 될 수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역사연구원의 오재성 원장도 4가지로 말을 하고 있다. 첫째로 김유신은 가계의 체계상 반도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동이민족 국가체계상 반도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백제와 당(唐)과의 전쟁터 지명에 의해서 그가 반도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넷째는 김유신은 우리민족의 문명사에 의해서 반도인이 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사실로 김유신 활동무대가 반도가 아니다.
 
가계는 조작 될 수도 있고 묘(墓)도 가묘(家墓)를 만들 수 있으며 지명도 조작 할 수가 있다. 문제는 지나(支那)는 당(唐)나라 때부터는 노골적으로 지명과 지역을 반도로 밀어내어 왔음은 세계학자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吳在成,「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124~131참조, 인용하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지나 25사(史)동이(東夷) 기록에서 김유신에 대한 모든 것을 밝힐 수가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사서와 지나 사서(史書)를 인용해 고찰해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오늘은 신라가 서신라(斯盧新羅)와 서라벌의 동신라(東新羅)까지 삼국을 통일 했다는 김유신 장군에 대해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서신라, 동신라, 감추기 위한 신라방(新羅坊)은 허구다
 
먼저 신라는 대륙의 서신라와 서라벌의 동신라에 대하여는 이미 밝혔는데 이를 덮기 위해 일본은 1883년 대륙의 서신라는 반도에서 건너간 신라방(新羅坊)이라고 조작해 말하나 이는 허구이다.
 
지나와 일본은 우리 동이역사를 숨기고 덮기 위해 우리 역사를 뒤엎어놓으며 지명과 국가명도 제멋대로 지우고 조작해 왔다. 허나 요하문명을 비롯해 세계5대문명을 주도한 우리역사를 지울 수는 없다.
 
우리는 상고시대는 유라시아를 지배하고 삼국시대는 아시아를 지배한 역사는 21세기에 와서 더 분명히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의 진보와 발달은 이를 너무나도 잘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음에서다.
 
지금 우리나라는 장마가 오면 전라도와 경상도가 똑같이 오는데 고대 대륙의 삼국은 신라와 백제 고구려의 장마 때의 위치가 다 다르다. 제일 먼저 오는 나라는 양자강 이남의 왜부터 신라, 백제, 고구려로 된 것이 다 증명되기에서다.
 
지나의 기록에도 우리나라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왜(倭)가 반도가 아닌 대륙이었는데도 지나와 일본은 삼국도 반도역사로 꾸미며 신라도 반도에서 건너갔다고 신라방(新羅坊)을 1883년 던져주나 이는 명랑한 허구이다.
 
예컨대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도 상고시대 배달국과 삼국시대 백제, 신라, 왜(倭)의 영역이 모두 서화(西華)동쪽에 있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음에도 이를 부인하며 우리나라 역사가 반도를 중심으로 전개한 것은 역사무지에서이다.
 
우리의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도 모두 반도기록이 아니고 분명히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가 우리 영역임을 말하고 있고, 또한 9세기 이전 역사기록에도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가 하나의 민족으로 기록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서신라가 패망 이후 역사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해 지나와 일본의 역사숨기기에 동조해 요(遼)와 금(金)과 원(元)과 청(淸)이 우리 동이(東夷)의 후예이면서도 동이역사(東夷歷史)로 계승을 하지 못하고 있으나 이 요(遼), 금(金), 원(元), 청(淸)역사 한국사로 편입해야 한다.
 
이들은 동이의 후예이면서도 주(周), 진(秦), 한(漢)의 전통을 이어간다고 하나 이들이 우리 동이족으로 우리역사에 편입돼야 하며 이 진실을 숨길 수 없다. 신라방(新羅坊)도 일본이 던져준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심한 일이다
 
김유신 장군도 반도인이 아닌 대륙인이다
 
김유신에 대한 사서기록도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와 지나의 위서(魏書), 25사(史)를 보면 김유신은 반도인이 아님이 분명해 진다. 우리와 같은 대륙인이다. 그의 계보를 봐도 그는 반도와는 거리가 멀다.
 
먼저 김유신의 가계를 보면 김유신의 부친은 서현(舒玄;비(碑)에는 김도연(金道衍)이고, 조부는 무력(武力), 증조부(曾祖父)는 구해(九垓)이며, 12대 조상은 수로왕(首露王)으로, 헌원(軒轅)의 후예로 소호의 자손이다.
 
헌원(軒轅)은 곡부수구(曲阜壽丘)에서 제후(諸侯) 소전(少曲)의 아들로 태어나서 배달국 14대 자오지천황(慈烏支天黃;蚩尤天黃)과 73회 전투를 했으나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 무덤이 협서성(陜西省) 황릉현성(黃陵縣省) 교산(橋山)에 있다.
 
황릉(黃陵)도 치우천황(蚩尤天黃)이 5곳에 황릉이 있는 것과 같이 헌원軒轅)의 릉도 여러 곳에 황릉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서안(西安)으로부터 동북으로, 약 180Km 지점인 협서성(陜西省) 황릉현성(黃陵縣省) 교산(橋山)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나는 김유신의 조상인 헌원(軒轅)을 장안(長安)중심의 소위 한족(漢族)조상인양 삼황에 모시고 있는데 헌원은 우리 동이족(東夷族)으로 김유신의 선조다. 지나인(支那人)들이 말하는 한족(漢族)이 아니다.
 
김유신 조상인 소호(少昊) 금천씨(金天氏)도 헌원(軒轅)의 25자(子)중 하나이며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는 현효(玄囂)가 청양(靑陽)이고 청양(靑陽)이 현효(玄囂)라고 하고 있다. (玄囂卽 靑陽也, 玄囂靑陽 卽少昊也)-史記,
 
소호(少昊)는 강수(江水;양자강)에 살았다. (靑陽江居江水-史記), 강수(江水)는 촉(蜀)지역에 있는데, 이곳은 반도가 아니다. 따라서 김유신과 조상은 양자강유역에 있었음을 분명하게 하고 있어서 숨길 수도 이를 덮을 수도 없다.
 
만약 경주에 있는 김유신 묘가 실묘(實墓)라면, 김유신 선조 중에서 양자강지역에서 반도로 옮겨온 기록이 있던지 반도에서 소호금천씨나 헌원의 묘를 찾아내야 한다. 언제까지 반도사관으로 우리역사를 망가트리려고 하는지 한심하다.
 
또한 김유신은 서화(西華), 몽성(蒙城;安徽省)지역에 있던 신라의 장군으로서 서기503년에 반도의 신라장군이 아니다. 삼국지, 북사(北史), 양서(梁書)와, 구당서(舊唐書)에서 회계(會稽), 남월(南越)에 있던 왜(倭)와 서화(西華)동쪽인 강희(江淮)지역에 있던 신라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글을 맺으며
 
김유신에 관한 교과서도 반도의 공주가 웅진(熊津)이라 하고, 부여(夫餘)를 사비성(泗泌城)이라 하고 있는데, 이도 사서(史書)에서 밝혀진 것이 아니다. 또한 유적에 의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서를 가지고 따지도록 해야 한다.
 
부여에 있는 일명 부소산성(扶蘇山城)이라는 곳에서 내지성(奈祗城;일명 사택지적비)이라는 유적이 발굴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지역이 사비성(泗泌城)도 부소산성도 아닌 반도의 내지성(奈祗城)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익산미륵사를 창건한 사람이 백제 무강왕이라 하고 있는데, 삼국유사에서는 과부의 아들이라 하고 있고, 삼국지에서는 스스로 왕이라 했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할 것은 삼국시대 정통의 계승왕은 과부의 아들이라는 말도 스스로 왕이라는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조(始祖)이거나 제후(諸侯)로 총통 같은 지위에 있을 때도 왕(王)이라 일컬었던 것이다.
 
만약 시조라면 반도에 두개의 백제가 존재해야하며 총독일 때는 공주와 익산에 본 백제와 총독부가 존재해야 하는데 이 또한 타당성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반도에 백제가 있다는 것보다 총독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 공주가 백제의 웅진이 되려면 주위에 삼국유사, 삼국사기, 지나 25사에 의한 지명(地名)이 있어야하는데 의자왕 시대의 지명이 평원(平原), 항성(項城), 황산, 무산(茂山), 동성(桐城), 잠산(岑山), 독산(獨山), 동명(東明), 덕안(德(安), 백마하(白馬河), 박성(薄城), 제성(諸城)과 대산(大山)이 있어야 한다.
 
공주 주위에는 황산밖에 없다. 그라나 지나 서화(西華)동쪽 산동성 대산 주위에는 백제의 지명이 다 있다. 대산(大山)의 서쪽 황산(계백장군이 전사지역) 주위를 살펴보면 백제가 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었음을 입증되는 것이다.
 
황산북쪽에는 대산(大山), 박성(薄城), 제성(諸城), 역성(力城), 치(淄), 청(靑), 래(萊)가 있고, 남쪽에는 백마하(白馬河), 사비성(泗泌城), 항성(項城), 동성(桐城), 잠산(岑山), 독산(獨山), 동명(東明), 덕안(德(安)이 있으며, 서쪽에는 동명(東明), 진평(晉平二郡)이 있어서 사서(史書)에 의한 웅진(熊津)은 결코 반도로 옮겨 올 수가 없는 것이다.(오재성,「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106~131참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나와 일본이 가진 수단방법을 동원해 지명과 유적과 묘(墓)와 족보는 후예들의 손으로 위조할 수 있으나 문화사만큼은 위조가 거의 불가능 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금(錦;비단), 면(綿;목화), 자석(磁石)과 침(針;나침반), 노(弩;쇠뇌)에 의해서 서화(西華)동쪽의 서신라(西新羅)를 밝히고 있으며, 김유신 또한 반도에서 활동한 것이 없고 대륙에서 활동한 것이었음을 잘 알 수가 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만이 제대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지나와 일본이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조작한 역사를 따르는 반도식민사관자와 아직도 일본의 지원을 받으며 영혼을 파는 무리들도 역사는 지울 수 없는 것임을 제대로 알고 조상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학반도식민사관자는 지나와 일본이 우리 역사를 반도로 밀어내는데 맞추는 조작되고 왜곡한 것, 이는 역사가 아니다. 사실에 입각해 고증해 입증할 수 있는 진실만이 바른 역사다. 왜곡역사에 맞추지 말고 재현하는 역사로 밝혀야한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김세환, [고조선역사유적지답사기]‘. ‘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吳在成「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박종원[‘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반재원, [鴻史桓殷].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井上 淸, [日本の歷史]. .劉泳,海燕,‘赤蜂博物館’.‘各國別 [世界史の整理].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外 多數書冊,參照,本文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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