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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붉은벽돌거리 대학로의 맛깔스러운 식당들
사골칼국수 전통 맛집 ‘명륜손칼국수’·‘혜화칼국수’
프랜차이즈지만 손맛 괜찮은 ‘돌깨마을해물순두부’
역사성 담은 조선 지명 사용하는 중식당 ‘함춘원’
유성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8-13 10:46:53
맛있는 식당도 골목 구석구석 걸어 다녀야 잘 보인다. 무엇이든 발품을 팔아야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폭풍 검색이 발품을 대신하는 세상이 됐다. ‘웹품’(인터넷 서핑)만 잘 팔아도 좋은 것을 ‘득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빅 데이터 검색을 통해 가성비 좋은 식당을 찾고 당근마켓에서 합리적 소비를 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발품이 주는 감흥을 따를 수 없다고 본다. 을지로 골목 안에 작은 공장들과 함께 점점이 박혀 있는 수많은 노포를 찾아 골목을 헤매면 왠지 모를 정서적 평온을 찾을 수 있다. 물론 개인적 편력일 수 있지만 필자는 걷는 것, 특히 골목으로 스미어 오래도록 걷는 것을 좋아한다.
 
전통 있는 음식 노포들은 사실 대로변보다 골목에 더 오래도록 존재한다. 대로변은 재개발, 재건축과 임대료 상승 등 환경 변화에 따른 부침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건물주가 아닌 이상 꾸준하고 오래 버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큰길보다는 골목을 걷다가 만나는 노포가 많다. 발품 끝에 마주치는 ‘노포 맛집’은 공간이 담고 있는 역사적 이야기와 서사가 언제나 가슴 설레게 한다. 물론 미각을 기분 좋게 하는 맛있는 음식은 큰 덤이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도시 인문 콘텐츠·디지털 헤리티지 아카이빙 전문단체인 ‘문화 지평’이 ‘김중업과 김수근, 현대건축 1세대 궤적을 쫓아서’란 주제로 그들이 남긴 건축 유산을 찾아다니는 답사를 시작했다. 이들이 설계한 것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건축물들은 덩치가 커서 대부분 대로변에 있다. 그러나 이들 건축물에게 닿는 과정은 일부러 골목을 택하고 공간의 역사를 되짚으며 걷는다. 모든 길에는 역사가 존재한다. 그것을 알고 걸으면 길은 한참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문화지평은 지난해에도 건축문화 활성화 사업 수행기관으로 선정돼 서울의 첫 종교건축물에 대한 답사와 디지털 아카이빙을 수행했었다. 올해는 주제를 달리해 김중업과 김수근의 건축 유산을 쫓으면서 현장답사와 텍스트 아카이빙으로 기록을 남긴다.
 
첫 답사는 아르코미술관을 정점으로 하는 대학로 일대 김수근의 궤적과 일대 공간에 스미어 있는 역사문화 스토리를 찾아 나섰다. 코로나19 시기임에도 많은 답사 탐방객이 나와 현대건축 거장의 족적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번 답사는 6월 19일 이뤄졌다.
 
건축가 김수근과 그의 건축언어
 
▲ 건축가 김수근(1931~1986)과 대학로에 있는 그의 건축 유산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아르코미술관, 아르코예술극장, 샘터 사옥(현 샘터공공그라운드), 국제협력단 건물(서울대병원 부속건물), 서울대병원 연구동. [사진=필자 제공]
 
김수근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그의 삶과 건축 언어를 짧게나마 들춰본다. 김수근은 1931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다. 8세를 전후로 서울 북촌 지역으로 이주해 정착한다. 경기고를 나와 1950년 서울대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이 학교 교수로 있던 김중업과 인연이 여기서 맺어진다.
 
한국전쟁 발발로 학업은 중단됐고 인민군 징용을 피해 그는 일본으로 밀항했다. 1954년 동경예대 건축과에 입학한 김수근은 이곳에서 그의 첫 번째 스승 요시무라 준죠(1908~1997)를 만났다. 동경예대를 졸업한 김수근은 1958년 동경대 대학원의 단게 겐죠(1913~2005) 연구실 진학을 희망했지만 좌절됐다.
 
대신 같은 대학 다카야마 에이카의 연구실에 입학했다. 하지만 단게 겐죠의 건축기법이 이후 김수근 건축에 큰 영향을 줬다. 1960년 29세 약관의 건축가 김수근은 남산 국회의사당 현상설계 당선자로 금의환향해 자신의 건축사무소 문을 열었다. 현대건축 1세대의 첫발은 이렇게 뗐다.
 
1960년대 김수근 건축은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한 표현이었다. 노출콘크리트의 선구자인 르 꼬르뷔지에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김중업과는 달리 그는 일본이라는 필터를 통해 재해석했다. 이후 그는 한국 고유미를 나타내는 요소인 벽돌 사용이 강해진다. 물론 필자는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부정할 수 있는 건축적 해석 시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다만 일본 유학의 영향으로 발현된 부여박물관의 외관이 부정적 견해에 많이 개입했다.
 
김수근은 벽돌을 돌출시킴으로써 단조로운 벽체에 조형미를 입혔다. 대학로의 붉은 벽돌군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창의 입면 효과도 남다르다. 예술작품은 오래 들여다보면 뭔가 보인다는 게 필자 지론이다. 건축도 조형예술이기 때문에 요모조모 뜯어보면 볼거리가 풍성하다. 특히 왜 그곳에 그런 모양과 재료를 사용했는지 배경지식을 알게 되면 작품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수근의 벽돌 건축군은 대부분 층고가 낮다. 벽돌 쌓는 방식의 건축물은 횡력에 약하기 때문에 높이 지을 수 없다. 또한 내부에서도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두꺼운 벽돌 벽이 필요해서 공간 제약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는 벽돌을 쓰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근 콘크리트 라멘조에 치장 벽돌을 쌓는 방식으로 바꾼다.
 
어느 순간 그는 건축과 자연의 조화도 중요하게 취급했다. 지역과 주변의 관계를 고려하면서 건축은 환경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1960년대 그의 건축이 건축과 대지와의 관계였다면 70년대는 환경에 대한 관계로 외연을 확장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학로의 옛 샘터 파랑새극장 1층 공간의 비움, 중정(마당)과 내부 공간의 관계, 경동교회의 빛과 조경, 전통건축에서 가져온 벽돌로 지어진 건축물들의 담장을 타고 흐르는 넝쿨 등에서 그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대학로 김수근 건축물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벽돌로 된 외부 벽체를 입체적으로 쌓아 그림자 효과를 줌으로써 건축물을 평면에서 진일보시켰다. 또 벽돌을 반으로 잘라 쌓아서 벽체에 변화를 주고 장식으로 사용해 단조로움을 없앴다. 앞서도 말했지만 창 부분을 입체적으로 쌓아서 빛의 깊이를 더욱 부각시켰다.
 
김수근이 대학로에 붉은 벽돌을 사용해 지은 건축물로는 아르코미술관, 아르코예술극장, 샘터 사옥(현 샘터공공그라운드), 국제협력단건물(서울대병원 부속건물), 서울대병원 연구동이 있다. 마로니에공원과 건너편 일대가 김수근의 건축 전시장인 셈이다. 흔히들 ‘살아 있는 김수근 건축 갤러리’라고도 한다
 
이런저런 정보를 가지고 대학로를 다시 걸어 보자. 김수근이 벽돌을 예찬하는 속삭임이 들릴 것이다. “아무리 급해도 벽돌은 한꺼번에 쌓지 못합니다. 때문에 한 장 한 장 단정히 쌓지 않으면 무너지거나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벽돌이 지닌 조소성은 무한히 인간화되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대학로 북쪽 초입 칼국수 맛집들
 
▲ ‘명륜손칼국수’(위)와 ‘혜화칼국수’는 대학로 시작점에 있는 전통 있는 칼국수 식당이다. 사골육수를 쓰고 신김치를 내주는 것이 큰 특징이다. [사진=필자 제공]
 
건축물을 둘러봤으니 이제 맛집도 둘러보자. 대학로란 이름은 1985년부터 공식화됐다. 서울대가 위치해 있던 까닭이다. 서울대는 1975년 의과대를 제외한 모든 기관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했다. 그 빈 공간을 대학 캠퍼스 문화 거리로 새롭게 만들면서 대학로가 조성됐다. 마로니에공원은 조성 당시 심어져 있던 마로니에(가시칠엽수)란 나무 때문에 자연스레 붙은 이름이다. 마로니에공원을 정점으로 대학로는 청년문화와 문화예술이 급속히 성장했고 이에 따라 외식업도 번성했다.
 
대학로 제일 북쪽 끄트머리 흥덕동천 물길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명륜손칼국수와 혜화동로터리 혜화칼국수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국숫집이다. 성북구는 성북동에 국수거리가 있을 정도로 국수가 유명한 곳이다. 종류도 칼국수, 쌀국수, 멸치국수, 수제비 등 다양하다. 명륜손칼국수와 혜화칼국수는 사골육수를 쓴다.
 
조선시대 성균관 노비(반인)들에게는 현방(푸줏간)을 운영할 수 있는 특권을 줬다. 이들이 현방과 설렁탕집으로 번 돈을 갹출해서 배움의 한을 푼 것이 혜화초등학교(옛 숭정의숙)이다. 혜화동 칼국숫집에서 국수와 설렁탕을 파는 것은 그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혜화칼국수와 명륜손칼국수는 겉절이가 아닌 숙성 김치를 사용한다. 멸치 베이스 국수가 겉절이와 궁합이 맞는다면 사골육수는 신김치다. 신맛이 기름진 육수 맛을 시원하게 잡아주기 때문이다. 명륜손칼국수는 설렁탕을 하기 때문에 사골육수가 혜화칼국수보다 뽀얗고 농후하다.
 
사골 칼국수, 커다란 고기전, 문어숙회 등은 전형적인 경상도식 음식이다. 조선시대 성균관에서 수학하는 유생들 대부분이 경상도 지역 유력 가문의 자제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형성된 식문화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물론 필자 개인의 추측이고 이에 대한 연구는 지금껏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꽤 괜찮은 체인 음식과 역사적 지명 함춘원
 
‘돌깨마을해물순두부’(위)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이지만 꽤 괜찮은 음식을 선보인다. 서울대병원 함춘회관의 중식당 ‘함춘원’은 역사적 지명을 상호로 쓰고 있는 상징적 음식점이다. [사진:필자 제공]
 
혜화동로터리서 동성고 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동숭아트센터로 가는 길에 ‘돌깨마을해물순두부’란 식당을 만날 수 있다. 고등어구이, 떡갈비, 너비아니, LA갈비를 가마솥 밥과 함께 정식 메뉴로 만들어서 내온다. 정갈한 반찬에 특히 고등어구이가 맛있는 곳이다. 정식에 순두부찌개가 따라 나오기 때문에 따로 시키지 않아도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다.
 
프랜차이즈는 잘 소개하지 않는데, 이 식당 대표가 한식에 조예가 있다는 추천을 받고 간지라 기대가 컸다. 물론 대표가 누구인지 아는 척도 하지 않았고, 이미 몇 해 전 방문한 이야기다. 대학로 이야기를 쓰자니 그때 맛이 생각나 몇 자 적었다. 돌깨는 들깨가 땅에 떨어져 자연 발아해 자란 것을 말한다. 씨도 작을 뿐더러 많이 열리지 않는 특징이 있다. 식당 이름이 독특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국내에 40개 가까이 있고 베트남에도 한 곳 진출해 있다. ‘자연가득’이 프랜차이즈 본사다.
 
서울대연건캠퍼스엔 함춘회관이란 부속건물이 있고, 이 안에 함춘원이란 중국 음식점이 있다. 아주 오래전 병원약사회 회장(2005~2008)을 지낸 손인자 전 서울대병원 약제부장과 함께 갔던 곳이다. 병원에 근무할 때라 멀리는 못 가고 구내에 있는 곳을 택한 곳이었는데, 요리가 매우 정갈하고 맛이 유명한 곳이다.
 
함춘원은 조선시대의 창경궁의 후원으로 동쪽 구릉 지대인 지금의 서울대병원 일대다. 함춘원은 창경궁을 만들면서 풍수지리설에 의해 궁 동쪽 지세를 보강하기 위해 나무를 심고 잡인 출입을 금하면서 만들어졌다. 나중에는 태복시(사복시)에 땅을 나눠주면서 이후 140여년간 방마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함춘회관과 함춘원이란 중식당 이름으로 역사적 지명이 회자되니 그 또한 나쁘지 않다. 함춘원의 짜장면은 간이 세지 않다. 저염식을 권장하는 병원이란 특수성과 환자들이 나와서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인 듯하다. 양이 많지 않아 의과대와 병원 관계자들의 간식으로도 인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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