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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의 톡톡 클래식

발레를 사랑한 차이코프스키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9-23 10:13:36

 
▲이지영 피아니스트·음악학박사
/어릴 때부터 가족끼리 모이면 발레 추며 직접 작곡
/인물-상황 등 반복, 무용처럼 하나의 스토리 만들어
/코로나 속 브로드웨이 재개장하며 ‘백조의 호수’ 공연
/방구석 1열보다는 공연장 꼭대기라도 보는 날 오기를
 
코로나로 작년 3월부터 문을 닫았던 미국 브로드웨이 극장이 올해 9월 14일부터 모두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공연의 메카인 브로드웨이의 재개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코로나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당일 브로드웨이 공연들은 만석이었고 늦은 밤까지 관객과 구경꾼들로 교통이 마비되었다고 한다. 공연 문화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주는 결과다. 
우리나라 공연계도 공연장 폐쇄, 좌석거리두기 등으로 한동안 주춤했지만 티켓오픈과 동시에 매진이 되는 공연도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 공연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지만 공연장에서 직접 보는 감동이 랜선을 통해 전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떤 공연도 현장에서 라이브로 직접 감상하는 것 이상이 될 순 없다. 특히 뮤지컬, 발레, 오페라 같은 장르는 화려한 무대와 의상, 공연자들의 노래와 춤, 표정과 동작을 직접 보면서 감상할 때 공연에 몰입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보고 듣고 느끼는 재미와 눈과 귀의 호강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장르다.
 
‘발레’하면 어떤 작품이 생각나는가.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이 세 작품의 제목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모두가 차이코프스키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의 발레음악이다.
 
‘백조의 호수’는 가장 인기 있는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지만 초연될 당시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차이코프스키 이전의 발레음악은 춤을 추기 위한 반주였기 때문에 음악은 단순하면서 아름다운 선율의 수준에 머물렀다. 당시 발레 음악 작곡가는 안무자의 지시를 잘 따라주는 작곡가가 필요했고 그렇다보니 잘 나가는 작곡가는 발레 음악에 관심이 없었다. 안무가가 음악의 조성, 리듬, 마디수를 정해서 작곡가들에게 요청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면 차이코프스키는 왜 발레음악을 작곡했을까.
 
▲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리회의 <백조의 호수> [사진=국립발레단]
 
차이코프스키는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좋아했다. 친구들 앞에서 발레동작을 하기도 했다는 일화가 남아있을 정도다. 심지어 러시아에 방문한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와 차이코프스키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발레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생상스는 김연아 선수가 2009년 세계 피겨 선수권 쇼트 프로그램에서 세계 최고점을 기록했을 때 사용했던 음악, ‘죽음의 무도’를 작곡한 프랑스 작곡가다.
 
차이코프스키의 여동생 알렉산드라의 아이들이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재롱잔치 시간을 가졌는데 그 때 발레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조카들이 좀 더 신나고 재미있게 춤을 출 수 있게 음악을 작곡해 주었다.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성품을 가진 삼촌의 조카에 대한 사랑이 발레음악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때 작곡한 음악의 일부가 ‘백조의 호수’ 2막과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 사용되었다는 자료가 남아있다.
 
▲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가 초연되었을 때 안무와 무대 연출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았지만 음악도 ‘교향곡 같다’ ‘바그너적이다’라는 어렵다는 평을 받았다. 차이코프스키는 발레음악을 인물과 상황에 따라 주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무용처럼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되듯 작곡했다. 독일 작곡가 바그너의 라이트모티브(Leitmotiv) 작곡기법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이트모티브 작곡 기법은 오페라나 교향시에서 특정 인물이나 상황에 반복해서 사용하는 짧은 주제를 말한다. 예를 들면 A라는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같은 멜로디 주제가 흘러나오게 하는 기법이다.
 
‘백조의 호수’가 발레로 유명해지고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 된 데에는 상페테르부르크의 안무가 프티파(Marius Petipa, 1818~1910)의 역할이 컸다. 프티파가 아니었다면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음악의 위상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프티파는 상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의 무용수에서 안무가로 성장했다. 차이코프스키가 사망한 뒤, 프티파는 서재에서 먼지더미에 쌓여 있던 ‘백조의 호수’ 총보(모음악보: 연주하는 모든 악기의 악보를 하나로 종합해 놓은 악보집)를 찾아냈다. 대본의 일부를 수정하고 곡의 배치도 바꿔서 차이코프스키 사망 추도 공연에 올리게 되는데 이것이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차이코프스키가 발레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어릴 때부터 발레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가족 음악회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발레음악을 작곡해주는 따뜻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 같지만 오랜 경험과 노력이 축적되었을 때 불현듯 나온다. 좋은 작품을 알아보고 선택해서 더 빛나는 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것 또한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진다. 한 사람의 새로운 시도가 이미 존재하던 작품을 더욱 빛나게 만들고 세상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프티파도 차이코프스키도 그랬다.
 
공연계가 지난 1년 반 넘게 온라인 플랫폼 등의 형태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럼에도 공연장에서 직접 받는 감동을 뛰어넘는 기술은 아직 미지수다. 팬데믹의 종식은 문화예술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사람들의 심리적 정신적 안정감과 풍요로움이야말로 백신보다 더 빠른 안정감과 치유를 가져올 거라고 믿는다.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백조의 호수’를 방구석 1열이 아닌 공연장 제일 꼭대기에서 보더라도 말이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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