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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세종이 묻힐 뻔한 검단산 산행 후 찾은 맛집

등산로 초입 지리산 흑돼지구이 ‘광장’

가락시장 인근 추어숙회 ‘남원추어탕’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12-02 12:58:14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지난 주말 오랜만에 서울 근교 산행을 했다. 해발 657m의 검단산. 작지만 풍광이 좋은 서울 근교 명산이다. 지하철로 쉬 접근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찾는 이들이 많다. 특히 2019년 3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정국과 진이 검단산 정상 인증 사진을 올리면서 유명세를 탔다.
 
검단산은 한성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명산으로 손꼽혀 왔다. 특히 한성백제(기원전 18년~기원후 475년) 500년 도읍지인 하남 위례성을 지키는 영산이었다. 하남시청에 따르면 검단산의 ‘검’은 거룩하고 신성한 숭배의 대상을 일컫던 말로 ‘검단’이란 성스러운 제단을 의미한다. 산 곳곳에 백제 초·중기의 왕들이 국가의 번영과 태평을 빌던 제단 흔적이 남아있다.
 
검단산이란 명칭에는 몇 가지 설화가 전해진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백제 위덕왕(554~598) 때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은거해 그의 이름을 따서 검단산이 됐다는 설이다. 검단선사는 전북 고창 선운사를 창건했던 백제의 유명한 승려다. 검단선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깊은 산속 동굴에서 수도에 정진하는 검은 얼굴의 도승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의 검은 얼굴을 빗대 검단선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 하나는 신 또는 왕을 뜻하는 고대어 검[黔=儉=衿]과 곡(谷, 마을)을 뜻하는 고대어 단[丹=旦=屯=呑]의 합성어로 즉 신 또는 왕의 마을, 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검단(黔丹)’이라 칭했다는 설이다. 이는 인천 서구에 아직 남아 있는 검단이란 지명과 같은 해석이다. 대구 북구에도 검단이 있다. 오래전에 신당이 있어 ‘검댕이’ 또는 ‘검단’으로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다. 검단 토성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검단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
 
▲ 검단산에서 바라본 두물머리와 멀리 서울 북부 지역 풍경. [사진=필자제공]
 
이들의 공통점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영험한 곳으로 이는 곧 명당과 상통한다. 이와 관련 조선 태종 14년 3월 18일자 실록에 따르면 ‘납산에서 사냥을 구경하다. 내시 별감을 보내어 광주의 성황과 검단산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다’란 기사가 있다. 세종의 왕릉을 검단산에 쓰려고 터까지 닦았다는 이야기는 명당지란 방증이다. 예부터 왕릉은 지관을 통해 최고의 명당지를 찾아내고 정하기 때문이다.
 
5호선 지하철 동쪽 종착역인 하남 검단산 역에 내려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검단산 초입이 나온다. 유길준 묘를 지나서 정상을 오르고 하산은 현충탑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검단산은 북한산, 도봉산 등 심한 오르락내리락 산보다 월등히 수월한 산길을 가졌다. 바위보다 흙이 많아 이른바 육산이라고 부른다.
 
필자는 20여 년 만에 다시 올랐다. 그사이 수많은 등산객들로 인해 땅이 파이고 바위가 드러났다. 예전만 해도 진짜 폭신폭신한 느낌으로 올랐던 산이다. 등산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스틱 사용, 아이젠, 중량 등산화의 단단한 밑창 등으로 인해 토사가 조금씩 파여서 식물 뿌리가 서너 뼘 깊이만큼 드러나 있었다.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해 등산로에 광범위하게 야자 매트가 깔려 있다. 야자 매트는 땅이나 바위, 낙엽을 밟고 산을 오르는 묘미와는 사뭇 다르다. 자연과 인공의 차이다.
 
큰 굴곡 없이 꾸준히 오르다 보니 전망 바위가 나왔다. 바위 일대는 도시락을 먹는 산객 두 팀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어서 한 발 재겨 디딜 틈조차 없었다. 전망 바위는 전망을 바라볼 수 있도록 비워두는 예의가 필요해 보였다. 아뿔싸! 오르는 길에 유길준 묘를 지나쳐버렸다.
 
유길준은 서울 출신으로 호는 구당(矩堂)이다. 박규수(연암 박지원의 손자) 문하에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김윤식 등과 개화사상 수학했다. 박규수의 집은 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에 있었다. 1881년 어윤중 수행원으로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잔류했다. 우리나라 최초 일본 유학생이 됐다. 1883년에는 민영익의 수행원으로 보빙사로 미국에 갔다가 잔류해 최초 미국 유학생이 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1885년 귀국 후 갑신정변 주모자로 몰려 체포됐고 연금 생활 중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집필, 일본 출판사를 통해 출간했다. 1894년 청일전쟁 발발로 수립된 친일내각에 참여해 갑오개혁을 추진했다. 1895년 을미사변 후 내부대신이 되어 단발령을 강행했고 1896년 아관파천으로 친러내각이 수립되자 일본으로 망명했다. 망명 이유는 고종에 의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의 을미사(四)적(김홍집, 유길준, 정병하, 조희연)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후대 유길준은 친일 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독립운동에도 활발히 뛰어들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길준 묘역에는 그의 아버지와 두 아들이 2열로 안장돼 있는 가족묘 형태다. 아버지 유진수(1825-1898)는 ‘가선대부 동지중추원사’라는 높은 벼슬(종2품)을 지냈다. 큰아들 유만겸(1889-1944)은 도쿄제국대학을 나와 1920~30년대 조선총독부가 임명하는 문경군수, 충북도지사 등 지방관을 역임했다. 1940년대 각종 친일단체 임원 및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하는 등 친일 행적을 보였다. 작은아들 유억겸(1895-1947) 역시 도쿄제국대학을 나와 초기에는 각종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으나 1930년대 말부터 적극적인 친일파로 변신한 인물이다. 제5대 연희전문학교장(1945). 조선체육회장(1947) 등을 역임했다.
 
하산길서 마주친 현충탑
 
▲ 검단산 등산로 초입에 있는 현충탑. [사진=필자제공]
 
657m 비교적 완만한 산길을 가진 검단산 정상은 많은 것으로 보여줬다. 가까이는 두물머리 합수 지점과 팔당호가 내려다보인다. 코발트빛 물빛이 가을 하늘을 그대로 반사시켰다. 한강 맞은편으로 예봉산, 적갑산, 운길산이 첩첩이 보이고 멀리 북쪽으로 아스라하지만 힘차게 솟은 도봉산과 북한산을 조망할 수 있다. 강과 산, 그리고 도시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손꼽히는 서울 근교 산이다.
 
세종의 왕릉을 쓰고자 터를 닦아놨다는 곳이 아직 있다고는 하지만 과문한 탓에 어딘지 확인할 수 없었다. 웹 검색을 했지만 다를 ‘그렇다더라’는 말만 있지 위치를 특정한 정보가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진리다. 현충탑 인근 등산로 초입에 그럴듯한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 누군가 장소를 알려주면 좋겠다.
 
정상 부근에서 자리를 잡고 간단한 점심식사를 했다. 동행 한 분이 따끈한 어묵탕을 끓여와 몸을 데울 수 있었다. 내용물과 육수를 따로 담아서 8명이 먹을 분량을 싸왔으니 노고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게다가 디저트 가게에 따로 주문한 후식 과일까지 정성스레 싸 와서 많은 이들의 입을 즐겁게 했다. 입만 달고 간 필자는 맛나게 먹어주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 내려가자마자 식당을 갈 예정이어서 간단한 요기만 했다. 하산 길 말미에 만난 현충탑은 위압적이고 압도적이었다. 현충을 하란 건지 숭배를 하란 건지 모를 정도로 크고 높았다. 높이 20m, 9m의 대형 청동상으로 조각은 이일영, 글은 한운사가 썼고 이병태가 새겼다.
 
등산로 초입 몇 개 없는 식당
 
▲ ‘광장’은 풍천장어, 흑돼지·일반 돼지고기, 꼬치, 칼국수 등 메뉴가 다양해 한 곳에서 여러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다. [사진=필자제공]
 
검단산 등산로 초입에는 식당이 몇 개 없다. ‘창모루’란 칼국수 식당과 ‘광장’이란 풍천장어·흑돼지 전문점이 눈에 띌 뿐이다. 멀리 간판이 살짝 보이는 하남돼지 본점은 지금은 문을 닫았다고 일행 중 한 사람이 알려준다. 선택의 폭이 좁아 하는 수 없이 ‘광장’(네이버 검색은 광장풍천장어)을 선택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광장’ 뒤에 ‘만돈만리’라는 돼지 특수부위 전문점이 있었다. 만약 두 식당이 모두 한눈에 띄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그만큼 식당 입지의 중요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지점이다.
 
‘광장’은 메뉴가 다양하다. 풍천장어, 흑돼지·일반 돼지고기, 꼬치, 칼국수류가 주 메뉴다. 식당 한 곳에 웬만한 전문점 서 너 점포가 들어서 있는 형국이다. 그래도 주력 두 가지만 꼽으라면 장어구이와 지리산흑돼지다. 메뉴판은 건강을 중요시하는 등산객들 입맛에 맞고 영양 밸런스도 좋은 메뉴들로 가득 차 있다. 일행은 지리산흑돼지와 닭발, 모둠꼬치, 육개장칼국수, 닭칼국수를 주문했다.
 
매콤하고 불맛도 살짝 입힌 무뼈닭발이 애피타이저처럼 먼저 나왔다. 그래도 산행이라고 갈증이 있던 차 시원한 생맥주 한잔을 목 뒤로 넘기니 목젖이 환호한다. 안전한 산행을 자축하면서 건배를 했다. 육개장칼국수와 닭칼국수 모두 무리 없는 맛을 냈다. 흑돼지는 삼겹살, 목살, 가브리살이 적절히 섞여 나왔다. 삼겹살 껍데기에는 흑돼지를 증명하는 검은 털이 박혀있다. 메뉴가 많은 집을 피하는 데 주변에 식당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광장’, 모두가 맛이 괜찮다고 평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면서 주방을 담당하는 사장님을 뵈니 내공이 느껴졌다.
 
까칠한 통추어 뼈 씹는 맛 일품
 
▲ ‘남원추어탕’ 통추어 숙회와 뻑뻑한 추어탕 국물. [사진=필자제공]
 
1차로 가볍게 워밍업(?)을 하고 2차로 향했다. 2차 참여는 자유롭게 하다 보니 모두 집으로 향하고 필자를 포함 2명만 남았다. 전철을 타고 가락시장역 인근 풍천장어집을 가려다 추어탕을 전문하는 ‘남원추어탕’을 먼저 맞닥트렸다. 등산화를 신은 데다 좌식이라서 무조건 피할 곳이지만 은근히 추어에 끌렸다. 게다가 추어 숙회란 메뉴가 궁금하기도 했다.
  
추어 숙회가 시간이 좀 걸린다며 추어탕 국물을 먼저 내왔는데 매우 뻑뻑하고 진하다. 20년 넘게 한 자리서 추어탕을 팔았으니 이 식당 역시 내공으로는 밀리지 않는 곳이다. 다만 염도가 좀 있어서 뜨거운 물을 타서 숙회가 나오기 전 안주로 삼았다.
 
추어 숙회는 두 가지 요리법이 있다. 충청도식은 마늘, 생강, 청주를 넣어 끓인 물에 손질한 미꾸라지를 넣어 익힌 다음 건져낸 후 각종 채소를 넣어 끓인 채수에 익힌 미꾸라지를 넣고 한소끔 끓인 후 소금, 후춧가루로 간을 하는 방법이다. 전라도식은 굵은 소금으로 깨끗이 손질한 미꾸라지에 물을 붓고 살짝 찐 뒤 쪽파, 시금치, 어슷하게 썬 풋고추, 마늘 채를 넣고 소금 간으로 한소끔 끓으면 달걀 줄알을 친 후 상추, 쑥갓, 초고추장을 곁들여 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식당의 추어 숙회는 남다르다. 미꾸라지를 삶지 않고 기름에 지진 후 갖은 야채와 양념을 더해 내놓는다. 뼈가 아삭 씹히는 통추어와 갖은 야채를 골고루 담아 상추나 알배추에 싸 먹으니 제법 맛이 났다. 무엇보다 건강한 맛이 느껴졌는데 양념장의 풍미는 조금 더 대중적 입맛에 맞게 연구하면 좋을 듯하다. 오랜만에 산행 후 건강식까진 좋았으나 역시 과음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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