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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이의 군사이슈

북한 견인하는 선군 사상의 실체

군사주의 기반 통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는 ‘선군 사상’ 직시해야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1-06 09:27:34

 
▲ 박정이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예)육군대장.
이데올로기(Ideologie)는 집단 혹은 공동체의 신념, 생각, 태도, 특징의 집합체로서 뚜렷한 목표 정향성과 행동지향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이나 이론과는 구별된다. 이데올로기는 통일된 세계관을 부여함으로써 현실을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추구해야할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행동을 직접 동기화한다.
 
이데올로기는 단순히 세상을 보는 눈에서 벗어나 세상을 개조하려는 목표 설정과 행위 유발의 특징을 가진 탓에 대중에게 정당화와 동원의 기능을 하고, 대중에게 일관된 사고 체계를 제공함으로써 정치 리더십과 사회 체제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아울러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대중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의 기능은 특히 사회주의 체제에서 가장 극대화된다. 사회주의 체제의 공식 이데올로기는 대중에게 체제 정당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대중을 혁명과 건설에 동원한다. 혁명 이전에는 사회주의 혁명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혁명 성공 이후에는 사회주의 건설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제공하며, 체제 위기 상황에서는 이를 이겨내기 위한 위기관리의 정당화 담론을 부여한다.
 
사회주의 체제의 이데올로기는 관념과 행동의 연결체계가 간접적인가 혹은 직접적인가에 따라 순수 이데올로기와 실천 이데올로기로 구분한다. 순수 이데올로기는 ‘개인에게 일관되고 의식적인 세계관을 제공하는 사고체계’로 정의되며, 실천 이데올로기는 ‘개인에게 행동의 합리적 도구를 제공하는 사고체계’로 규정된다. 순수 이데올로기 없는 실천 이데올로기는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실천 이데올로기 없는 순수 이데올로기는 그 세계관을 일관된 행동으로 전환시킬 수 없다.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목표를 강조한 것이 순수 이데올로기라면, 실천 이데올로기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 원칙에 보다 강조점을 둔 것이다. 순수 이데올로기가 표방하고 목표하는 가치 실현을 위해 현실에서 요구되는 구체적 정책 방향과 행동 원칙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실천 이데올로기이다.
 
1990년대 체제 위기의 북한에서 고도로 추상화된 주체사상 대신 현실 대중에게 버팀과 인내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과 의지에로 동원하는 역할은 사회주의권 붕괴 시에 북한 체제를 정당화했던 ‘우리식 사회주의’나 권력승계 이후의 ‘선군 정치·강성 대국’ 담론 등 주체사상에 뿌리를 둔 하위 정치 담론들의 몫이었다.
 
김정일은 경제난과 대외적 고립이라는 체제 위기 상황에서 북한 사회주의 유지와 위기 극복의 실천적 방침과 정책 기조로서 선군 정치를 제시했는데, 이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체제 유지의 최후 보루인 군대를 앞세우고 군대에 의거해서 안보와 함께 경제도 추스르겠다는 북한식 위기 돌파 전략이다.
 
선군정치의 문제의식은 노동계급의 정당보다 인민군대가 위기극복의 핵심역량이라는 것인데, 이제 인민군대가 혁명의 주력군이며 나라의 기둥으로 규정됐고, 모든 분야에서 혁명적 군인 정신을 따라 배워야 했다. 사회주의 건설기 북한식 노선과 정책이 주체사상이라는 실천 이데올로기로 형성된 것이라면, 선군 정치는 사회주의 위기 시 북한 체제를 유지하고 지키기 위한 북한식 정치 노선과 정책 방향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선군 정치는 ‘군대이자(군대가 곧) 당, 국가, 인민’이라는 정치 철학과 ‘총대에도 사상이 있다는 총대 철학’을 사상적 기초로 ‘군사선행과 선군후로(先軍後勞)의 선군혁명원칙’을 내세워 고난의 행군 기간을 혁명적 군인 정신으로 극복해 내고, 군사선행의 선군 원칙에 따라 군수 공업을 강화하고 국방 공업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선군 시대 경제 건설에 매진하게 한 1990년대 북한의 실천 이데올로기였다.
 
위기 극복을 위한 정치 담론이었던 선군정치는 체계화 과정을 겪으며 김정일 시대의 실천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고, 2000년대 이후에는 선군 사상으로 격상됐다. 선군 사상으로 체계화하는 데는 혁명의 주력군 문제를 새롭게 밝히고 주체사상과의 관계를 논리적·이론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마르크스가 내놓은 혁명의 주력군 이론은 이제 시대에 맞지 않다고 비판하면서 선군 시대에 인민군대를 혁명의 핵심부 대 주력군으로 규정했다.
 
체제 위기 극복을 위한 선군정치가 점차 그 정당성과 논리성을 획득하면서 주체사상에 입각한 수령의 혁명방식을 계승·발전시킨 선군 사상으로 일반화되고 정당화됐는데, 주체사상이라는 순수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빌어 선군 사상이라는 실천이데올로기를 체계화했다. 선군 사상으로의 정립은 2010년 <우리당의 선군 사상>이 발간되면서 정점에 달했는바, 주체사상과 같은 사상, 이론, 체계의 전일적 사상 체계로서 틀을 갖췄으며, 김정일 시대의 선군 사상은 2009년 4월 헌법개정을 통해 주체사상에 더해 공화국의 지도지침이 됐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11일 제4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당 규약에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도 사상으로 하는 김일성-김정일주의 당,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라고 규정했다. “조선노동당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당 건설과 당 활동의 출발점으로, 당의 사상적 공고화의 기초로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는 데서 지도적 지침으로 한다”라고 김정은 체제에서의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김정일 시대에 이미 선군 사상을 주체사상과 결합시키며 김일성이 창시한 선군혁명사상을 김정일이 더욱 심화 발전시킨 것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주체사상과 선군 사상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통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당의 영원한 지도사상으로 규정한 것은 김정은이 시대와 인류앞에 쌓은 업적이라고 하면서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가 당의 최고 강령이라는 역사적 선언을 김정은이 했다. 북한은 김일성이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해 새로운 혁명의 길을 열었고,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체계화하고 선군 사상을 발전시키어 지도사상으로 뿌리내리게 했다는 주장에 근거를 두고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체계화했다. 김정일이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김일성주의를 당의 최고 강령으로 선포한 것과 같이, 김정은은 또한 자신의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이념으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내놓은 것이다.
 
북한은 당 규약 제46조에서 “조선인민군은 국가방위의 기본역량, 혁명의 주력군으로서 사회주의 조국과 당과 혁명을 무장으로 옹호보위하고 당의 령도를 앞장에서 받들어나가는 조선로동당의 혁명적 무장력”으로, 헌법(제59조)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장력의 사명은 당중앙위원회를 결사옹위하고 근로인민의 이익을 옹호하며 외래침략으로부터 사회주의제도와 혁명의 전취물, 조국의 자유와 독립, 평화를 지키는 데 있다”고 규정했다. 이를 통해 북한은 군의 존재목적이 대내적으로 ‘영도자’를 수호하며 대외적으로 ‘남조선혁명과 해방’을 통한 ‘전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무력수단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북한은 상시적으로 전쟁이 가능한 상태에 있는 무장국가로서 외부 공격으로부터의 방어나 예방적 전쟁을 위해 즉각적으로 인적·물적 자원동원이 가능하도록 이념적·제도적으로 완비된 상시전비국가(Nation-in-Arms)다. 상시전비국가는 군사와 전쟁관련 문제들을 전 국민적 사업으로 만들고, 그러한 문제들이 국가의 주요 관심사가 되도록 만드는 군사주의적 정치의 한 형태라고 규정할 수 있는데, 전민(全民)이 전쟁을 목적으로 하나의 전투국가(fighting nation)로 조직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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