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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왜의 힘을 빌어 석우로를 제거한 미추왕

왜는 부산동래 복천동고분군 조성세력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1-13 11:05:30

 
▲ 정재수 역사 작가.
신라 김씨왕조 미추왕은 재위 전반기에 강력한 경쟁자 한 사람을 제거했다. 그것도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외부세력(왜)의 힘을 빌어 전격적으로 처리했다.
 
왕이 되지 못한 군사영웅 석우로
 
그는 바로 석우로(昔于老)이다. 원래 석우로는 내해왕(10대)의 유일한 후계자로 뒤를 이어야 하나, 옥모(玉帽)가 낳은 조분왕(11대)과 첨해왕(12대)이 잇따라 왕위를 잇게 되며 왕위계승 서열에서 멀어진다. 대신 석우로는 석씨왕조 기반 다지기에 적극 나선다.
 
석우로는 서기 231년(조분왕 2년) 조분왕으로부터 이찬의 관등을 받고 대장군이 돼 감문국(甘文國·경북 김천)을 정벌하며, 233년(조분왕 4년)에는 왜인의 병선을 불태워 물리친다. 244년 서불한(국무총리)에 올라 지병마사를 겸임하며, 245년(조분왕 16년) 고구려의 공격을 직접 나서서 방어한다. 또한 첨해왕 시기에는 사량벌국(沙梁伐國·경북 상주)을 토벌한다.(『삼국사기』<열전>) 이처럼 석우로는 상당한 군사적 역량을 갖춘 당대 최고의 영웅이다. 그런데 석우로는 뜻밖의 사건에 휘말려 죽음을 맞는다.
 
석우로 제거는 미추왕의 작품
 
『삼국사기』<열전> 석우로 편에 상세한 내막이 나온다. 첨해왕 시기 왜 사신이 객관에 머무르고 있었다. 석우로는 사신을 찾아가 접대하는 과정에서 ‘왜왕을 염전의 노예로 만들고, 왕비는 부엌데기로 만들겠다(以汝王爲鹽奴 王妃爲爨婦)’며 농담을 건넨다. 이에 격분한 사신은 돌아가 석우로의 말을 왜왕에게 고하자, 왜왕은 군사를 보내 신라를 공격한다. 이로 인해 석우로는 책임을 지고 왜국을 찾아가 ‘전에 한 말은 농담일 뿐인데 어찌 군대를 보내 공격하느냐?(前日之言 戱之耳 豈意興師至於此耶)’며 되묻는다. 그러나 왜는 이를 무시하고 석우로를 아예 장작더미 위에 불태워 죽인다. 『삼국사기』<열전>이 전하는 석우로의 죽음이다.
 
그런데 『신라사초』는 사건의 발생시기를 첨해왕이 아닌 미추왕시기로 적고 있다. 또한 『삼국사기』 설명과는 다소 차이가 난다. 농담의 대상은 왜왕과 왜왕비가 맞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모두 미추왕과 왕비 아후(阿后·아이혜)를 노비에 빗대어 경모(輕侮·모욕하거나 업신여김)한 말로 설명한다(皆元上拂于尼今及阿后 視王后如奴婢而輕侮之心). 다시 말해 석우로의 농담은 미추왕과 아후에 대한 평소의 불만이 무의식중에 표출된 말이다. 그 불만은 왕위가 석씨에서 김씨 미추왕으로 넘어간 것과, 특히 석우로의 여동생인 아후가 이를 용인한 점이다.
 
또한 『신라사초』는 덧붙인다. ‘석우로는 용감하고 장병을 잘 다뤄 자긍심이 높았는데, 대중의 마음을 얻지 못해 반역하려는 불궤의 마음이 있었다. 왕(미추왕)이 왜와 더불어 밀통해 우로를 제거했다고 하고, 혹은 내홍을 염려해 왜의 힘을 빌려 우로를 친 것이라고 한다(于老勇而善將兵 然高尤好自矜 不得衆心 故悒 悒有反志 尼今之臣與倭使相通 而密謀制之云).’
 
결과적으로 석우로의 죽음은 미추왕의 작품이다. 미추왕은 왜의 힘을 빌려 전격적으로 석우로를 제거한다. 미추왕의 입장에서 보면 석우로는 반드시 죽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미추왕과 왜의 상관성
  
▲ 북천동 고분군 전경. [사진=필자 제공]
  
미추왕이 힘을 빌린 왜는 누구일까? 또한 미추왕은 왜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어 이용했을까? 부산 동래 북천동의 야트막한 구릉일대에 조성된 북천동 고분군은 부산일대 세력을 대표하는 무덤떼이다. 1969년부터 발굴 조사돼 지금까지 모두 190여기를 확인했다. 시기는 2세기부터 5세기까지이며 무덤양식은 널무덤(목관묘)→덧널무덤(목곽묘)→돌방무덤(석곽묘·석실묘) 등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 중 덧널무덤은 77기로 전체대비 과반수를 차지해 무덤떼의 조성시기는 주로 3~4세기에 집중된다.
 
출토 유물은 토기 3000여점, 철기를 포함한 금속류 3000여점, 유리를 비롯한 장신구 4000여점 등 1만여점에 이른다. 특히 금속류의 경우 철제갑옷이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갑옷(종장판갑)은 모두 33점인데 복천동에서만 22점(66%)이 확인된다. 찰갑(8점), 투구(27점), 목가리개(경갑·8점)을 합치면 65점에 이른다. 북천동은 고대의 갑주백화점이다. 또한 말머리갑옷, 말안장발걸이(鐙子), 재갈, 말띠드리개, 말종방울, 띠고리 등 철제 마구류도 상당수 출토됐다.
 
철제 갑옷과 철제 마구류는 북방기마족의 상징물이다. 이로 미뤄보건대 적어도 3~4세기에 이들 북방기마족이 부산 동래의 북천동 일대에 정착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미추왕이 석우로를 제거하는데 힘을 빌린 왜는 바로 북방기마족 출신이다. 이들은 위(魏)의 관구검(毌丘儉) 군대의 일원으로 245년 고구려를 침공한 오환족(烏丸族)의 수장 구루돈(寇婁敦)의 일파다. 이후 관구검이 패퇴할 때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남하해 신라 미추왕을 옹립한 장휜(長萱)집단과 같은 오환족이다. 이런 까닭으로 북천동 고분군의 덧널무덤 조성세력인 왜는 미추왕의 요구에 따라 석우로를 제거하는데 적극 나선다.
 
원래 부산 동래일대는 변한12국 중 하나인 독로국(瀆盧國)이 위치한 지역이다. 『일본서기』가 의부가라(딸린/업힌 가라)로 소개한 임나이며, 『삼국사기』가 시종일관 왜로 표기한 고대국가이다. 임나 역시 신라와 마찬가지로 3세기 중반 남하한 오환족에 의해 지배계층이 교체된다.
 
 
▲ 북천동 고분군 출토 철제 갑주와 어깨가리개. [사진=필자 제공]
  
미추왕은 석우로를 제거하는데 성공이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직계로 왕위를 잇지 못한다. 대신 유례왕(14대)이 즉위하면서 다시금 석씨왕조가 부활한다.
 
석우로는 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인물이다. 다만 역사는 석우로에게 철저히 보상한다. 석우로의 직계아들이 훗날 왕위를 승계한다. 석씨왕조 마지막 왕인 흘해왕(16대)이다.
 
석우로의 죽음에는 부산 동래를 점령한 북방유목민족 오환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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