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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경주 대릉원 미추왕릉의 실제성

전(傳) 미추왕릉과 추정(推定) 미추왕릉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1-20 09:55:56

 
▲ 정재수 역사 작가
경주 대릉원내 남쪽지역에 전(傳) 미추왕릉(106호분)이 있다. 봉분 직경은 56.7m, 높이는 12.4m로 경주시내 평지에 조성된 고분 중에서 비교적 규모가 크다. 무덤 앞에는 혼이 머무는 혼유석이 있으며, 무덤 전체는 담장(능장)을 둘러 보호하고 있다. 무덤 앞쪽에는 미추왕의 위패를 모신 숭례전도 있다.
 
경주 대릉원의 전(傳) 미추왕릉
 
대릉원은 서기 4세기 후반인 마립간시기부터 조성된 김씨왕조의 집단묘역이다. 따라서 3세기 후반의 미추왕과는 100여년이라는 시간 격차가 난다. 더구나 미추왕릉 내부는 마립간시기 조성된 돌무지넛널무덤(적석목곽분)으로 확인돼 미추왕릉의 실제성은 상당히 떨어진다.
 
다만 『삼국사기』<잡지>에 따르면, 신라 혜공왕(36대)때 오묘(五廟)의 제사를 지내고 이때 미추왕을 김씨 시조로 추증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오묘 중 하나를 고고학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미추왕릉으로 지정한다. 그래서 전(傳) 미추왕릉이다.
 
대릉원의 대릉은 미추왕릉에서 유래한다. 『삼국사기』 기록이다. ‘왕이 죽어 대릉에 장사지냈다(王薨 葬大陵).’ 미추왕을 대릉에 장사지내며 대릉의 명칭이 생기고, 이후 마립간시기 김씨 왕족들이 대릉 주변에 무덤을 추가하면서 김씨 왕조 집단묘역인 대릉원으로 확대된 것이다.
 
『신라사초』 기록의 화림(花林)
 
 
▲ 전(傳) 미추왕릉 전경(경주 대릉원). [사진=필자 제공]
    
그런데 『신라사초』는 미추왕릉을 다르게 설명한다. 『선지(仙志)』를 인용한 기록이다. ‘유례니금13년 신림(新林)에서 (미추왕이) 아후(阿侯·아이혜)를 따라 죽어, 이에 화궁(花宮)을 대릉(大陵)으로 하고 사당을 명당(明堂)이라 이름지었다(儒禮尼今十三年 殉崩于新林 仍花宮爲大陵 廟曰明堂).’
 
부연하면 미추왕은 생존시 유례왕(석씨·14대)에게 왕위를 넘기고 신림(新林)의 화궁(花宮)으로 물러나 살다가 왕후 아이혜(阿爾兮)가 사망하자 따라 죽는다. 이에 화궁의 건물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미추왕의 대릉을 조성한다. 대릉의 원래 의미는 특정장소가 아닌 ‘커다란 능’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다. 또한 명당이라 이름 지은 별도의 사당도 짓는다.
 
미추왕릉은 바로 신림의 화궁이 있던 자리다. 미추왕릉이 조성된 후 이 일대는 화림(花林·신림의 화궁)으로 명명된다. 화림은 미추왕이 묻힌 신라 김씨왕조의 성지라 할 수 있다.
 
미추왕릉, 경주향교 서북쪽의 쌍분이 유력
 
『삼국유사』는 미추왕릉이 흥륜사 동쪽에 있다고 설명한다(陵在興輪寺東). 흥륜사지(터)로 추정되는 장소는 두 곳이다. 하나는 경주공업고등학교 자리(㉮)이며 또 하나는 현재의 흥륜사(흥륜사지)를 포함한 주변일대(㉯)다. 둘 다 행정구역은 경주 사정동이며 ㉮가 북쪽이고 ㉯는 남쪽이다.
 
흥륜사의 위치를 ㉮라고 가정하면 『삼국유사』의 흥륜사 동쪽은 지금의 전(傳) 미추왕릉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라고 가정할 경우 흥륜사 동쪽은 지금의 경주향교 주변일대다. 향교 인근 서북쪽에 표주박 형태의 대형고분이 하나 있다. 왕과 왕비의 무덤을 붙여 만든 쌍분이다.
 
 
▲ 전(傳) 미추왕릉과 추정(推定) 미추왕릉. [사진=필자 제공]
    
대릉원내 전 미추왕릉이 실제 미추왕릉이 아니라면 경주향교 북쪽 인근의 쌍분이 미추왕릉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쌍분은 미추왕과 왕후 아이혜가 같이 사망한 점을 반영한다. 더구나 향교 동쪽은 김씨 왕조의 발상지(김알지)인 계림이 인접해 있으며 남쪽에는 신라 천년역사의 상징은 월성궁궐이 위치한다. 미추왕이 사망한 화궁(별궁) 역시 월성궁궐의 지근에 위치했다고 보면 쌍분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우리는 백제 무령왕릉을 제외하고 고대 삼국의 왕릉을 정확히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고구려의 경우 무덤떼가 집중된 중국 길림성 집안 일대와 북한 평양일대의 왕릉급 대형고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 신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대릉원을 포함한 경주 일대의 주요 왕릉급 고분의 무덤주인을 전혀 알지 못한다. 모두 명문(묘지명)이 새겨진 결정적인 유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까? 역설적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 어느 무덤이 어느 왕의 능인지는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왕릉만큼은 굳이 명문을 남길 필요가 없는 것이 당시의 지배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왕조가 바뀌고 세월이 많이 흐르며 이들 왕릉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도 점차 잊혀져 가며 일부 기록의 파편들만 남게 된다.
 
실제 미추왕릉은 전 미추왕릉일까, 추정 미추왕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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