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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우리 민족은 대륙을 호령했던 호랑이였다

대륙 지배라는 위대하고 찬란한 우리의 역사

역사적 자부심과 문화 긍지 높았던 우리 민족

식민사학계, 대륙 지배했던 우리의 역사 축소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2-03 13:47:37

▲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현재 동양사학계의 통설에 따르면 고대 중국의 영토는 대체로 북경 만리장성까지였다. 우리 고구려·발해의 땅은 만주의 일부와 한반도 북부였다가 고려·조선 때에는 한반도 내로 국한된다. 그러면서 일본의 전신인 왜(倭)는 예로부터 대대로 지금의 일본열도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해 우리 민족의 대륙지배의 위대하고 찬란했던 역사를 말살했다. 중점으로는 단군신화를 조작했고 조선왕조에서 정립한 반도사관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했다. 그렇게 조작된 망국의 역사가 이병도 박사를 통해 현재 강단사학계로 전해진 것이다.
 
식민사학계가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를 엄청나게 축소시킨 반도사관을 체계화한 첫째 이유는 일본의 피지배민족으로 전락한 조선인들이 자신의 조상들이 대륙을 지배했던 큰 호랑이였다는 사실을 모르도록 하여 스스로를 중국·일본의 애완용 고양이의 후손으로 느끼도록 조작했던 것이다.
 
그러했던 사실은 초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타게(寺內正毅)의 아래 ‘조선식민통치사’에서 엿볼 수 있다. “조선인들은 유구한 역사적 자부심과 문화에 대한 긍지가 높아 통치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대일본제국의 신민(臣民)을 만드는 방법으로 그들의 가장 큰 자긍심인 역사를 각색하여 피해의식을 심는 것이었다.
 
조선인을 뿌리 없는 민족으로 교육하여 그들의 민족을 부끄럽게 하라. 문화 역시 일본의 아류임을 강조하여 교육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고 스스로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 거듭나고 싶어 할 것이다. 창씨개명을 통해 먼저 조상 단군을 부정하게 하라. 그것이 식민지 국민을 식민지 국민답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일제식민사학자들은 조선왕조가 600년간 숭상하면서 이론화시켰던 기자조선에다가 위만조선과 한사군을 강조함으로써 “옛 조선의 역사는 이민족 지배의 역사로 시작했으므로 지금의 조선인들이 위대한 일본민족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지로 조선인들을 세뇌교육 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 이유는 고대시대부터 일본의 전신인 왜의 주 무대가 일본열도였다는 열도사관(列島史觀)을 확실하게 구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반도사관이 확실해져야 일본의 열도사관이 정립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삼국과 왜의 역사가 같은 축에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대륙 또는 한반도에서 도래한 야요이(弥生)인들이 열도에 살고 있던 원주민인 아이누족을 동북방으로 밀어내고 살다가 훗날 나라를 세웠다고 하는데 그게 언제였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 중국과 일본이 조작한 기자·위만조선과 한사군. [사진=필자 제공]
 
대방에 쳐들어온 왜의 실체는
 
과연 당시 왜국이 어디에 위치했었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비문징실>에 따르면 영락 10년(400)에 왜국이 나라를 들어 고구리에게 항복했고 13년에 호태왕이 새로운 왜왕으로 인덕(仁德)을 봉하니 그는 매우 기뻐하며 두 딸을 후궁으로 바치면서 충성을 맹세했다고 『고구리사초략』에 기록돼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호태왕비문에 “14년 갑진(404)에 왜가 법도를 어기고 대방의 경계를 침입해오자 평양군을 파견해 싸우게 하니 왜구가 패했는데 참살된 자가 수도 없이 많았다”고 새겨져있다. 깨어진 글자를 비문징실로 복원·해석해보니 고구리가 대방을 침공한 왜를 섬멸했다는 내용이다.
 
호태왕에게 충성맹세까지 했던 인덕왜왕의 군대가 이듬해 대방을 침공해 고구리와 전투를 벌였다는 내용이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만일 위 <비문징실>의 내용이 옳다면 『고구리사초략』에 있는 영락 13년의 인덕왜왕 책봉기록은 오류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고구리사초략』에 위 14년 비문과 비슷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영락 14년(404) 갑진 5월에 왜구가 대방에 쳐들어왔기에 붕련에게 군사를 움직여 왜선을 공격하게 했더니, 목 베고 사로잡은 수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이들 모두 해적떼인지라 인덕이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인덕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매, 상이 서구를 왜로 보내 그 진상을 알아보라 명했다.”
 
영락 14년(404)에 대방을 침공한 주체는 왜국의 정규군인 왜군이 아니라 그야말로 왜국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그야말로 해적떼인 왜구(倭寇)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호태왕이 명한 진상조사의 내용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다음 연재에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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