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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한국의 타지마할 ‘정릉’ 입구 맛집 ‘봉화묵집’

시어머니 이어 며느리 가업승계 ‘오래가게’

자가 제조 메밀묵·칼국수로 40년 사랑받아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3-31 11:20:42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유네스코는 1945년 창설된 유엔 전문 기구로 유엔 헌장에서 선언된 기본적 자유와 인권, 법의 지배, 더욱 보편적인 정의의 구현을 위해 국가 간 교육, 과학, 그리고 문화 교류를 통한 국제 사회의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한마디로 국제적 지적 연맹체다.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두고 있다. 단체 활동 중 하나가 세계 유산 등록과 보호다.
 
세계유산은 지구상에 널리 퍼져 있는 문화·자연유산 중 인류가 보존하고 후세에 물려줄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자산을 말한다. 2009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우리나라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조선왕릉은 27대에 이르는 조선 시대 왕과 왕비, 추존왕 무덤인 능(陵)이 44기, 왕세자, 세자비 무덤인 원(園)이 13기 있다. 이중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묘, 북한에 있는 제릉과 후릉을 빼고 40기가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필자가 만든 인문역사단체 문화지평은 올 한 해 조선왕릉 40기를 모두 탐방하는 것을 목표하고 답사를 이어가고 있다. 19일 태조가 묻힌 건원릉이 있는 동구릉에 이어 27일에는 태조비 신덕황후의 정릉을 둘러봤다.
 
동구릉에는 말 그대로 동쪽에 아홉 기의 왕릉을 함께 모신 곳이다. 이곳엔 독특하게 잔디가 아닌 청완(靑薍, 억새) 봉분을 한 태조의 건원릉을 비롯해 현릉(5대 문종과 현덕왕후), 목릉(14대 선조와 의인왕후·인목왕후), 휘릉(인조(16)비 인조비 장렬왕후), 숭릉(18대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 혜릉(경종(20)비 단의왕후), 원릉(21대 영조와 정순왕후), 수릉(추존 문조와 신정황후), 경릉(헌종과 효현황후·효정황후)이 있다.
 
영국대사관 자리에 처음 정릉 조영
  
▲ 정릉은 정동에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최초 정릉은 정동 덕수궁 궁역인 취현방(영국대사관 근처)에 조영했다. 사진의 장명등(위 오른쪽)은 고려시대 공민왕릉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능역의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이다. [사진=필자제공]
 
태조는 신덕왕후가 죽자 그를 지금의 정동 덕수궁 궁역인 취현방(영국대사관 근처)에 정릉을 조성했다. 태조는 죽어서 신덕왕후와 함께하길 원했기 때문에 훗날 자신이 묻힐 자리까지 함께 조성했다. 그러나 왕자의 난으로 아버지 태조와 계모 신덕왕후 두 사람과 사이가 틀어졌던 태종은 유언을 따르지 않고 태조의 능을 지금의 건원릉 자리에 조성했다.
 
태조와 신덕왕후의 러브스토리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우물가 버들잎 이야기다. 이들이 처음 만나 사랑을 싹틔우게 된 계기는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 어느 날 말 타고 사냥을 하다가 목이 말라 우물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마침 우물가에 있던 아름다운 처자에게 물을 청했는데, 그녀는 물을 담은 바가지에 버들잎 몇 개를 띄워 건넸다. 태조가 이유를 묻자 처자는 “갈증이 몹시 심해 급히 물을 마시다 체하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그리했다”고 답했다. 이에 태조는 마음 씀씀이와 지혜에 반해 부인으로 맞아들이게 됐다는 전설이다.
 
태조는 1차 왕자의 난(무인정사)으로 아들들의 권력 다툼이 심해지자 정치의 뜻을 버리고 정종에게 양위했다. 태종 즉위 후엔 태상왕이 됐고 1408년(태종 8)에 창덕궁 광연루 별전에서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건원릉 조성 이후 능이 하나둘 늘면서 동오릉, 동칠릉으로 불리다가 모두 9기가 모여 동구릉이 된 것이다.
 
태조 죽자 지금 정릉 자리로 천장
 
태조가 죽자 태종은 이듬해인 1409년(태종 9) 정동의 정릉을 푸대접하기 시작했다. 정릉 능역 100보 근처까지 집을 짓는 것을 허락했다. 영의정 하륜이 사위들을 앞세워 선점했다. 송금(松禁) 정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나무를 베어 사가를 지었다. ‘신의 정원 조선왕릉’의 저자 이창환 상지영서대 교수는 “하륜은 조선 시대 도성 안 최초의 부동산 투기자”라고 썼다.
 
급기야 정릉이 도성 안에 있다는 이유로 사을한(沙乙閑, 현 정릉) 산으로 천장 했다. 토교(土橋)였던 청계천 광통교가 홍수에 휩쓸리자 정릉 석물 중 병풍석과 난간석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했다. 지금도 광통교에 가면 씁쓸한(?) 유구 흔적을 볼 수 있다.
 
나머지 목재나 석재들도 태평관을 짓는 데 쓰게 하도록 했다. 이는 태종의 이복동생인 신덕왕후의 아들 방석을 세자로 삼으면서 벌어졌던 제1차 왕자의 난 때문에 벌어진 결과다. 태종 이후 거의 민묘(민가의 묘지)나 다름없었던 정릉은 260여 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에 이르러서야 왕릉의 상설을 갖추게 됐다. 판부사였던 송시열의 상소 덕이다.
 
정릉은 형식상 단릉 형식으로 능침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를 배치했다.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만이 조성 당시의 것이며 나머지 석물은 현종 대에 다시 조성했다. 장명등은 고려 시대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 시대 능역의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
 
능침 아래에는 홍살문, 정자각, 수복방, 수라간, 비각이 있고 일반 조선왕릉과 달리 직선 축이 아닌 자연 지형에 맞춰 절선 축으로 조성됐다. 진입공간에 금천교의 모습은 우리나라 자연형 석교의 조형 기술을 볼 수 있으며 재실 양옆으로 서 있는 느티나무의 보호수도 수령이 꽤나 오래된 역사 자연경관이다. 능을 바라봤을 때 좌측에 위치한 소전대는 2009년에 근처 약수터에서 발견했다. 소전대는 고려 영향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조선 초기 건원릉, 정릉, 헌릉 세 곳만 있어 유물적 가치가 높은 부재다.
 
궁궐서 가장 가까운 최초의 왕릉
 
조선왕릉은 관리와 참배 때문에 궁궐 반경 10리(성저십리) 밖 100리 이내에 풍수적으로 지형을 갖춘 적지, 즉 명당에 입지 했다. 이 반경은 왕이 하루에 참배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는 거리를 의미한다. 거리 면에서 봤을 때 정릉은 궁궐에서 가장 가깝게 조성됐다. 과거엔 도성 밖이었지만 지금은 서울의 거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궁역이 많이 훼손돼 줄어들었지만 접근이 쉬워 주민들에게 많이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정릉은 ‘조선 최초, 최대 왕릉’이다. 먼저 떠나보낸 부인을 애틋해하는 마음은 태조만이 아니었다. 인도 무굴제국 5대 왕인 샤자한이 뭄 타즈 마할 출신 왕비를 위해 타지마할을 조영한 것도 같은 의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부지정은 같은 모양새가 아닐까 싶다.
 
‘금강산도 식후경’ 시간이다. 정릉은 반세기 이상 서울살이를 한 필자도 이번이 초행이다. 2000년대 초 근처에 한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았지만 살아보지도 못한 채 팔아버려서 가볼 일이 없었다. 더욱이 조선왕릉에 대해선 7·80년대 소풍의 추억이 꼬리표처럼 따라 나와 그리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던 곳이다. 당시에도 소풍지로만 말했지 역사적 장소성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문화재와 역사에 대한 ‘흑역사’ 시대를 담고 있는 곳이었는데, 그래서 이번 조선왕릉 연중답사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지난번 동구릉 답사에서는 화상(華商)이 운영하는 ‘유래등’(有來燈)에서 짜장, 짬뽕, 탕수육을 맛봤다. 짜장, 짬뽕은 언급할 것이 별로 없지만 탕수육은 바삭한 것이 마치 과자 같은 식감이었다. 입맛에 맞았단 의미다. 다만 18년 만에 방문이었는데 옛 감흥을 느끼기엔 뭔가 아쉬움이 많았다.
 
‘봉제사접빈객’ 마음 느끼는 곳
 
▲ ‘봉화묵집’의 대표 메뉴인 메밀묵과 칼국수. [사진=필자제공]
 
이번에는 정릉 입구에 있는 묵밥 전문점 ‘봉화묵집’을 찾았다. 답사가 오후 1시부터여서 12시에 점심식사를 했다. 정릉 입구까지는 경전철 우이신설선 정릉역에서 하차해서 도보로 접근하면 되기 때문에 편했다. 경전철이 없었다면 지하철 성신여대 입구에서 내려 버스로 아리랑고개를 넘어야 했다. 점심시간 ‘봉화묵집’ 앞은 이미 가족 단위 손님들이 타고 온 자동차로 꽉 차 있었다.
 
오래된 이층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1층 식당 역시 손님들로 만원이다. 대기 세 번째 팀으로 십 여분 정도 기다리다가 입장했다. 옛 거실과 방 구획을 그대로 활용해 여전히 가정집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좁은 실내. 대부분 테이블을 입식으로 바꿨지만 안쪽 예닐곱 명이 넉넉히 들어갈 만한 방 하나는 추억처럼 좌식으로 남겼다. 비가 부슬거리는 오늘같은 날 스며들기 좋은 분위기다.
 
경북 봉화 출신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로 2대 가업 승계를 하면서 서울시의 ‘오래가게’ 인증을 받았다. 1982년 개업했으니 정확히 40년을 꽉 채웠다. ‘오래가게’ 인증서를 보고 필자는 무척 반가웠다.
 
서울시가 2017년 종로, 을지로 일대 ‘오래가게’ 39곳을 선정했다. 오래가게는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해오며 서울만의 정서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노포(老鋪, 오래된 가게)를 발굴해 브랜드를 붙인 것이다. 오래가게는 개업 후 30년 이상 운영했거나 2대 이상 전통을 계승하는 곳이다. 2017년 중구, 종로구를 시작으로 지역을 확산해가며 지정했다. 방앗간, 책방, 이발소 등 생활 분야, 칠기, 유기, 공방 등 전통공예 분야를 대상 했고 음식점은 선정에서 제외 시켰다.
 
2018년 필자는 “앞으로 식당 같은 곳은 서울미래유산보다는 오래가게로 지정해 관광인프라로 활용했으면 한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지정 요건을 지금보다 까다롭게 하면 된다. 시는 오래가게에 선정된 곳 주변 관광지, 오래된 맛집, 산책로 등을 엮어 코스 개발에 나섰다. 오래된 맛집을 ‘엮을’ 바에야 차라리 오래가게로 선정하면 그림이 깔끔해진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래서 ‘봉화묵집’ 같은 식당의 오래가게 선정이 반가웠던 것이다.
 
심심하지만 웅숭깊은 반가 음식 맛
  
▲ ‘오래가게’로 지정된 ‘봉화묵집’의 음식.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치, 조밥, 오래가게 액자, 배추전. [사진=필자제공]
 
‘봉화묵집’의 음식은 심심하나 맛이 웅숭깊고 차분하나 가볍지 않은 반가(班家)의 풍미를 느끼게 한다. 메밀묵은 매일 메밀을 직접 불려 껍질을 제거하고 갈아서 묵을 쒀서 만든다. 슴슴한 채수 육수에 신 김치 조금 썰어 넣고 으깬 깨소금과 김을 과하리만큼 뿌려서 내온다. 투박하게 썰어낸 메밀묵이 제법 많이 담겼는데, 양념이 전혀 안 돼 있어서 삭힌 고추 양념을 더하면 맛이 올라온다. 메밀묵에 조밥을 넣어 말아먹으면 일품이다. 조밥 한 그릇에 딸려 나오는 아련한 어릴 적 기억. 어머니는 늘 밥을 지으면서 조밥 한 줌 따로 쪄서 섞어 먹었다. 역시 음식은 기억이다.
 
특유의 얄팍하고 야들한 면발을 가진 칼국수 역시 싱겁한 채수에 애호박 고명 한 줌과 계란 지단을 올린 소박한 모습이다. 그러나 국수는 반가의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의 주연이었던 만큼 귀한 정성과 고결함이 깃든 음식이다. 그런 기풍이 ‘봉화묵집’ 칼국수에서 느껴진다. 이곳이 정릉 입구란 점에서 국수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특히 정성스레 썰어 가지런히 담겨 나오는 김치에서 ‘접빈객’ 하는 마음을 느껴진다면 나만의 과장일까.
 
가끔 주방에서 펑펑 불 쇼 소리를 내며 지져 나오는 배추전과 부추전은 옛날 외할머니가, 그리고 어머니가 해주던 그 맛이다. 필자의 외가는 경북 봉화 옆 춘양이다. 그래서 그 ‘고향의 맛’을 기억한다. 고소하면서 시원한. 만두 역시 속이 독특하지만 생강 향이 강하지 않아 모두에게 거부감 없이 먹힐 듯했다.
 
외관은 허름한 이층집을 개조해 식당으로 하고 있는 ‘봉화묵집’을 많은 식객들이 사랑하는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던 날이었다. 정릉 답사를 모두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러 다시 한번 들를 정도로 필자는 이 식당의 매력에 푹 빠졌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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