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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47>
동이역사 바로 알아야 역사 바로 설 수 있다
허구역사를 만드는 지나(支那) 역사는 믿을 것이 못 된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4-02 10:33:35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지나(支那)는 4000여년에 걸쳐서 한민족(漢民族)이야 말로 가장 우수하고 주변 민족은 늘 한민족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중화사상(中華思想)이 골수까지 오염되어 있다.
 
지나는 주(周), 진(秦), 한(漢)을 이어가는 장안(長安)·서안(西安))의 한족(漢族) 동쪽의 우리 민족을 동이(東夷)라 하고 있으나 따지고 보면 주와 진, 한의 나라를 세운 이들도 한족 아니고 모두 그들이 말하는 동이다.
 
지나는 우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역사를 가진데다 상고사도 없고 고대사도 우리 역사를 가져다가 자기들 역사라 해서 세계가 웃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지나 역사는 4000년밖에 안 되는 짧은 역사다.
 
지금 지나에는 55개의 소수민족이 있고 한족이 지나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고 하나 한족은 다른 민족이 아니라 우리와 피를 융합된 동족인데도 이를 숨기며 억지 역사를 조작한다. 
 
주, 진, 한을 세운 주인공이 어느 민족인가를 살펴보면 자명해 진다. 이들은 한족이 아님은 물론 동이 내지 서이족(西夷族)으로 모두 흉노족(匈奴族) 계열이다. 당(唐)을 세운 이연(李淵)도 선비족이고 징기스칸도 퉁구스족으로 동호족(東胡族)이지 한족은 아니이다.
 
또한 화북(華北)을 지배한 여진인(女眞人)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는 1115년에 금(金)을 건국해서 요(遼)를 멸망시키고 그 세를 몰아서 송(宋)을 멸망시켜 회수(淮水) 이북을 빼앗아 만주(滿洲)와 화북(華北)을 영토로 했다.
 
여진족(女眞族), 또는 여직족(女直族)은 원래 반수렵(半狩獵), 반유목민(半遊牧民)이었으나 요동반도에 700년간이나 세력을 확장했다. 그리고 또 고구려(高句麗)도 8세기에 건국한 만주평야까지 지배했다. 발해(渤海)는 고도한 농업기술을 갖고 있어서 여진족은 오랫동안 그들을 지배하였다.
 
이 후 100년 후에 유목 민족인 몽골의 징기스칸(1162년~1227년)이 출현한다.
 
오늘은 동이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우리역사가 바로 됨을 살펴보려 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百濟本紀)에서 보는 무령왕 기록
 
삼국사기에 나타난 무령왕(武寧王)은 공주(公州)에 백제 사마왕(斯摩王)이 확인되고 있는데 이참에 무령왕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그의 휘는 사마(斯摩)로 무대왕(무大王)의 제2자(子)이다. 그는 키가 8척이고, 용모가 그림과 같고 성품이 인자하고 관후(寬厚)하여 민심이 잘 귀부하였는데 무대왕 재위 23년(서기 501년)에 무대왕이 죽자 뒤를 이어 즉위한 왕이 무령왕이다.
 
그가 왕으로 즉위한 뒤 정월에 좌평(佐平) 백가(苩加)가 가림성(加林城)에서 웅거(雄據)하여 모반함으로 무령왕은 병마(兵馬)를 거느리고 우두성(牛頭城)에 이르러 한솔(扞率) 해명(解明)에게 명하여 이를 토벌하게 하였는데 백가(苩加)가 나와 항복하니 왕은 그를 참형하여 백강에 던져 버렸다.
 
이는 춘추(春秋)에 말하기를 ‘신하는 난을 일으키려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난을 일으키려하면 반드시 죽일 것이다’고 하였다. 백가(苩加)는 원래 악함이 큼으로 천지도 그를 용납하지 못하였지만, 곧 그를 죄로서 다스리지 않고 있다가 이때에 이르러 스스로 난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모반하자 그제서야 참형하였으니 늦은 것이다.
 
11월에 왕은 달솔(達率) 우영(優永)을 파견하여 군사 5000명을 거느리고 고구려 수곡성(水谷城)을 습격했다. 또한 2년(502년) 봄, 백성이 굶주리고 병이 유행했고, 겨울 11월에는 군사를 보내어 고구려의 변경을 침범했다.
 
무령왕 3년(503년) 9월 말갈(靺鞨)이 침구(侵寇)하여 마수책(馬首柵)을 불태우고 고목성(古木城)을 침공하여 왕은 군사 5000명을 파견하여 이를 격퇴시켰다. 그런데 겨울이 되었으나 이 해는 얼음이 얼지 않았다고 했다.
 
무령왕 6년(506년) 봄에 크게 병이 돌고 3월부터 5월에 이르기까지 비가 오지 않아 천택(川澤)이 모두 마르고 백성이 굶주림으로 왕은 창곡을 풀어 이를 구제했다. 가을 말갈이 침입하여 고목성을 치고 600여명을 참획했다. 이 무령왕이 대륙에서 활동하다 왜 반도로 왔는지 밝혀진 것이 없다.
 
무령왕 23년(522년) 봄 왕은 한성으로 행차하여 좌평 인우(因友), 달솔(達率), 사오(沙烏) 등에게 명하여 한북(漢北) 군민(群民) 나이 15세 이상을 징발하여 쌍현성(雙峴城)을 쌓고 한성(漢城)으로부터 수도(首都)에 돌아왔다.
 
이해 여름 5월에 왕이 돌아가심으로 무령(武寧)이라 시호(諡號)하였다 했다.
 
무령왕을 이은 성왕
 
무령왕의 장자인 성왕(聖王)은 지혜와 식견이 영특하고 사리를 잘 결단했다. 523년 5월 부왕인 무령왕이 사망하자 뒤를 이어 즉위하니 사람들이 성왕(聖王)이라 칭하였다. 이에 성왕에 대하여 참고로 당시 상황을 살펴본다.
 
그는 왕이 되자 8월에 고구려의 군사가 패수(浿水)에 이르므로 왕은 좌장(佐將) 지충(志忠)에게 명하여 보기병(步騎兵) 1만명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이를 격퇴시켰다. 성왕의 경역을 더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성왕 3년(525년) 봄 왕은 신라와 수교하였다. 그 이듬해 10월에는 운진성(熊津城)을 수리하고 사정책(沙井冊)을 세웠다. 성왕 16년(538년) 왕은 수도(首都)를 사비(泗沘)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南夫餘)라고 불렀다.
 
성왕 25년(547년) 정월 1일(양력 2월6일) 일식(日蝕)이 있었다. 그 이듬해 봄, 정월에 고구려왕 평성(平成)이 예(濊)와 공모(共謀)하여 한북(漢北)의 독산성(獨山城)을 침공함으로 왕은 사신을 신라에 파견하여 구원을 청하니 신라왕은 장군 주진(朱珍)에게 명하여 군사 3000명을 내주었다.
 
주진은 밤낮으로 행군하여 독산성 아래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와 싸워 이를 대파하였다. 성왕은 28년(550년) 봄 정월에 장군 달사(達巳)를 파견하여 군사 1만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도살성(道薩城)을 쳐 빼앗았다.
 
성왕 31년(553년) 가을 음력 7월에는 신라가 군사를 일으켜 동북면을 빼앗고 신주를 설치하였다. 겨울 음력 10월에 왕녀를 신라에 시집보냈다.
 
성왕 32년(554년) 음력 7월 신라를 습격하고자 친히 보병(步兵), 기병(騎兵) 5000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狗川)에 이르렀으나 신라가 복병(伏兵)을 내어 싸움으로 군사들이 혼란하게 되고 왕은 해(害)를 입어 사망했다.
 
성왕이 예기치 않게 갑자기 사망하니 시호(諡號)를 성왕(聖王)이라 하였다.(이상은 오재성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205~208면 참조)
 
글을 맺으며 - 동이역사는 지울 수 없는 역사이다.
 
동이란? 주, 진, 한의 전통을 이어가는 장안(長安)의 한족(漢族)이 동쪽의 우리 민족을 동이라고 기록한 데서 연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 민족에 대하여 비교적 자세히 기록한 것이 삼국지(三國志)와 후한서(後漢書)이다.
 
그런데 삼국지에 동이유숙신(東夷有肅愼)이라 하였다. 즉 숙신씨(肅愼氏)를 동이족이라 기록하였다. 또한 후한서 동이전(東夷傳)에 숙신래헌석노고시(肅愼來獻石砮楛矢)라 하였다. 그리고 진서(晋書)에도 숙신씨를 동이전에 기입하였다. 이상의 기록을 보면 숙신씨는 분명한 동이족인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고대 부족시대에 동이족도 여러 부족으로 분파, 분립한 것은 ‘관자(管子)'에 도하(屠何)가 동이의 선(先)이라 하고 진서각주(晋書斠注)에 동이가 100여국으로 분립하였다고 했다(晋書斠注 券三, 帝紀第三).
 
지나의 고사(古史)에 읍루(挹婁), 물길(勿吉), 말갈(靺鞨), 여진(女眞), 실위(室韋)도 동이족이라 기록하였다. 이는 동이족이 여러 부족으로 분립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동이족 중 4300여년 전에 지나 문헌에 나타난 것은 오직 숙신씨뿐으로 그 외 역사를 숨기는 게 지나다.
 
그러면 숙신씨는 모든 동이족의 시조(始祖)라 했는데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에 ‘근세 인류학자가 동북민족은 다 숙신에서 나왔다’고 하였다(渤海國志長編卷十六, 族俗考 第三). 이는 동이족의 시조가 숙신임을 가르킨 것이나, 우리 민족의 기원은 이보다 몇 천년 더 앞선다.
 
그런데 숙신씨에서 분파된 동이족 중 숙신의 전통을 계승한 자가 예맥(銳麥·濊貊)이다. 예맥은 동주시대부터 대륙을 천년이나 정벌하고 정복하며 지배한 예맥조선(銳麥朝鮮)인데 지나와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까지도 이런 자랑스러운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를 숨기고 있다.
 
서전여오장(書傳旅獒章(注))’은 주무왕(周武王) 당시 숙신씨의 화살을 수입하였다고, 동서(同書) 무성편(武成篇)에 주무왕 당시에 예맥과 한족(漢族)이 병칭(竝稱)되어 있다. 그러면 숙신씨와 예맥은 동일한 시대에 존재한 것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숙신씨 역시 동이족이요, 예맥은 동이족의 주체로 대륙을 호령한 역사를 제대로 복원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그 지류(支流)가 부여, 고구려에 합병되어 완전한 우리 민족으로 성장하였던 것이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崔仁, ‘韓國學講義’ 36~40면 참조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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