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보는 상권|빌딩|재건축 뉴스

뒤로 리스트 인쇄
news only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52>

대륙 지배한 동이역사 바로 알아야 한다

지나(支那) 조작 역사에 휘둘려져서는 아니 된다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5-14 14:00:06

▲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우리나라역사는 지나(支那)와 일본이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는 국민도 안다. 그런데 우리나라 지도층과 역사 가르치는 교수와 지금 7000여 초··고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왜곡 역사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인 1925년 6월 조선총독부가 칙령(勅令) 제285로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 관제(官制)에 따라 만들어진 ‘조선사편수회’에서 35권이 편찬되었는데 이 범주(範疇)를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상황이다.
 
이로 인하여 역사를 가르치는 우리나라 역사학자의 중진들도 지금까지도 우리 역사를 모르고 있다. 그 실례의 하나가 박 모 교수가 일본에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박 교수가 일본학자에게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고들 한국에서 말들을 하는데 이것을 일본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물었다. 이에 일본 학자는 책을 가져다가 펴 보이며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고 설명해 이를 듣고서야 알았다고 했다.
 
이같이 지금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들 중에도 아직도 우리 역사와 일본의 역사며 중공의 역사를 모르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실상이다. 이 같은 한심한 우리 학계 실상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번 칼럼에서 한(漢)나라는 건국 2년 후부터 우리 예맥조선의 제후국인 것을 말하였는데, 지나와 일본이 말하는 것처럼 광대하거나 강력한 나라가 결코 아니었다. 당시 대륙에는 예맥조선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예맥은 고조선시대도 지나에서는 흉노(匈奴)라 하지만 예맥은 상고시대부터 대륙을 정벌하고 정복하며 대륙을 지배한 자랑스러운 고조선의 일파였다.
 
오늘은 지나 나라들이 거의가 우리 동이족(東夷族)이었음을 밝히려 한다.
 
예맥은 중원을 1000년간 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하였다.
 
예맥은 한(漢)과의 싸움에서도 패하지 않았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은 건국하여 2년 후 32만 대군을 이끌고 산서성(山西省) 대동현(大同縣)까지 진군하였으나 그는 백등산(白登山)에서 포로가 될 만큼 예맥은 강대한 국가였다.
 
이후 묵돌선우(冒頓單于)는 한(漢)을 지배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강력한 기마군단(騎馬軍團)을 앞세워 돈황(敦煌)을 접수(接受)하고 고비사막을 넘어서 돌판분지(盆地)와 다그라마칸 사막을 넘어서 서역지방까지 원정(遠征)했다.
 
당시 서역(西域)에는 누란(樓蘭), 우전(于闐), 오손(烏孫), 호갈(呼擖)등 36개나 되는 오아시스 국가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 나라들이 예맥(濊貊)의 군문(軍門)에 들어 왔다.
 
이로서 예맥의 영토는 동(東)은 서만주(西滿洲)로부터 바이칼 호, 이에니세이강 오바강 상 유역까지, 서(西)는 다크라마칸 사막을 포함해서 파밀고원(高原)까지 이었고, 남(南)은 곤륜산맥(崑崙山脈)으로부터 스아이댐분지를 거쳐서 전한내(前漢內)의 난주(蘭州), 그리고 오르도스를 넘어서 만주(滿洲)까지 달하였다.
 
그 당시 양자강(揚子江) 중류역(中流域)에는 많은 이민족이 살고 있었으며 전한시대(前漢時代)에는 군현제도(郡縣制度)를 두어서 통치하였다고 했다.
 
이때 현재의 사천성(四川省)으로부터 운남성(雲南省)에는 당시 30개 이상의 이민족이 살고 있어 한(漢)은 처음 이러한 이민족의 장(長)에게 작위를 주어서 회유(懷柔)했고 후에는 한인(漢人) 죄인들을 보내 한화(漢化)하였다.
 
이래서 점차 군현제도(郡縣制度) 중에서 한화(漢化)하였다고 하고 있으나 한(漢)나라는 서안(西安)을 중심으로 섬서성 일대의 조그마한 도시국가에 불과 했는데 한(漢)이 각지에 군현(郡縣)을 설치하여 광활한 지나 대륙 전체를 통치한 것처럼 알려지게 한 것은 역사가의 붓끝에서 각색된 결과인 것이었다.
 
한(漢)은 예맥조선의 아주 작은 속방(屬邦)에 불과한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나의 사학자들도 환국시대(桓國時代) 유라시아의 80%가 우리 영토이었고, 삼국시대도 중원을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한 것을 말하고들 있다.
 
대륙을 무대로 활동한 우리 민족의 나라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반도를 주 무대로 활동한 것으로 우리나라 자학반도식민학계와 저명인사들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삼국사기남제서’ 등 수많은 역사 기록에 쓴 우리가 대륙을 지배한 것을 모르고 있다.
 
환국(桓國)시대와 배달국시대는 물론 삼국시대도 우리가 대륙을 지배한 것을 수차 밝힌 대로 지나는 진(秦)나라가 중원을 통일하였다고 말하나, 진왕(秦王)인 영정(嬴政)은 6국을 병합한 서이족(西夷族)으로 흉노 35족 중 하나이다.
 
지나에서는 진왕(秦王;영정(嬴政)을 진시황(秦始皇)이라 하는데 황제의 제도도 우리가 상고시대부터 있었음도 이미 밝힌 그대로이다. 그리고 진왕(秦王) 역시 흉노족계열의 오래(惡來)의 후손으로 한족(漢族)이 아닌 동이족인 것이다.
 
이 사실들은 지나의 역사를 아는 부사년(傳斯年)도 은(殷), 진(秦)도 한족(漢族)의 나라가 아니라 동이족 나라라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주(周)나라도 한족(漢族)이 세운 나라가 아니며 춘추전국시대의 나라들도 북방동이족(北方東夷族)의 역사라는 것을 우리도 바로 알고 말을 해야 한다. 우리는 대륙에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나라들은 지나인(支那人)이 말하는 흉노족(匈奴族)으로서 그 주체는 예맥조선(銳麥;濊貊)이었던 것이다.
 
예맥은 고조선의 일파로서 구국(舊國)이라 일컬어지는 나라이었고 지나인들은 자기들 나라라는 은(殷), 주(周)와 춘추전국시대 진(秦), 초(楚), 연(燕), 제(齊), 한(翰), 위(魏), 조(趙)와 금(金), 원(元), 청(淸) 등도 모두가 동이가 세운 나라다.
 
여기서 흉노의 시조(始祖)는 삭정(索靖)으로서 서기전 2177년경 고조선 제3대 가륵단군(嘉勒檀君) 당시 사람이고, 고조선(古朝鮮)의 구국(舊國)이라는 일파로 그 주축이 예맥조선이나, 지나와 일본은 예맥과 낙랑조선을 지워 덮었다.
 
예맥은 中原을 지배하고 황하유역을 휩쓸었던 강대한 나라였다.
 
유방(劉邦;서기전 256년~서기전 195년)은 진왕(秦王)이 수복(收復)한 만리장성(萬里長城)의 서북에서는 이미 묵돌선우(冒頓單于;서기전?~서기전174)가 기마민족 나라인 예맥조선이 강대한 제국(帝國)이 이미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한고조 유방(劉邦)은 건국 2년 후에 32만의 대군으로 예맥을 침공하였으나 묵돌선우(冒頓單于)가 이끄는 40만 기마군단에게 7일간 포위되어 예맥조선에 치욕적인 항복으로 한(漢) 건국 초부터 60년간 예맥의 속국인 것도 이미 밝혔다.
 
이 치욕적인 전쟁을 지나의 후세 사람들은 “평성(平城)의 수치(恥)”라 했다. 한왕실(漢王室)은 7대 무왕(武王)이, 이 수치를 씻기 위해 예맥소토(掃討)를 위해 의욕적으로 힘쓸 때 예맥은 내분(內紛)으로 중원에서 밀려난 것이었다.
 
글을 맺으며 - 사대사관 언제까지 가지고 갈 것인가
 
우리나라 사학계는 아직도 반도식민사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일제가 왜곡한 사대주의 사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함으로 지금도 고대사의 영역을 반도에 축소시켜 놓고 있는 현실은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경지다.
 
이로 인하여 우리의 현실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림으로 한심함을 금할 수 없다. 오늘도 KBS 역사스폐셜을 보면 김유신 장군이 반도에서 활약한 것 같이 소개하는 것을 보며 이를 해설하는 대학교수도 반도를 못 벗어난 것은 기가 찼다.
 
분명한 사실은 김유신의 전쟁터 14곳은 모두 대륙임에도 이를 모르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나라 사학계는 지나와 일본이 조작하고 왜곡한 거짓역사를 우리 역사로 보도할 건가 한심하며 우리국민의 혼(魂)까지 팔아먹는 사학계는 반성하고 이제는 그만 두기를 바라지는 것이다.
 
우리 학계가 조선조 이래의 사대주의 사관을 극복하지 못한 것도 문제려니와 일제의 식민사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 고대사의 영역을 반도에 심으며 축소시켜 8‧15 광복 후 70여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이 방치되고 있다.
 
우리 역사는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보다도 외국학자들이 더 연구해서 잘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 소위 강단학파라는 이들은 삼국사기도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있으며 더구나 뒤엎어진 역사를 바로 세우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조국과 조상(祖上)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죄로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21세기는 19세기 세계와 다른 세계이고 20세기는 고대지식이 150배나 팽배했고 21세기는 2015년 3월부터 78일 만에 배가 되는 세상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학계는 일제(日帝)의 ‘조선사편수회’의 왜곡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이들은 언제까지 우리 역사를 무지하게 방관만 할 것인지! 이제는 역사를 바로 세우고 우리 정체성을 바로 찾아서 우리는 세계로 웅비해 가야 할 때다.
 
세계적 사상가인 하이데커도 “문명의 발상지가 한국"이라 했다.
 
(다음에 계속)
<參考文獻>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 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한국상고사].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밝혀질 우리역사]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황순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 고대사].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자부심 문화열차]. 한동억, [인류시원(人類始原)의 역사이야기]. 정희철, [중국은 없다]. 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반재원, [鴻史桓殷]. [단군과 교웅],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智勝, [우리上古史]. 이명우, 최현호, [환단고기] 이을형, [법철학강의],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三浦一郞, 小倉芳彦, 樺山紘一 監修 [世界を変えた 戰爭, 革命, 反亂]. 井上 淸, [日本の歷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外3人 [‘ひとり で學べる日本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張金奎, [匈奴帝國].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 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후속기사원해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

<저작권자 ⓒ스카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야구계에 뛰어난 족적을 남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사는 동네의 명사들
구본능
희성그룹
김무연
GS안과
석영철
행정자치부
뒤로 리스트 인쇄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독자의견 총 0건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독서가 즐거운 색다른 세계로 초대합니다”
독서 장벽을 낮추는 ‘전자책 구독 플랫폼’ 전...

“정답 없는 음악 작업, 그래서 더 매력적이죠”
세상의 소리를 음악으로 만드는 사람들

미세먼지 (2022-05-22 23:00 기준)

  • 서울
  •  
(양호 : 38)
  • 부산
  •  
(최고 : 15)
  • 대구
  •  
(좋음 : 21)
  • 인천
  •  
(좋음 : 26)
  • 광주
  •  
(좋음 : 29)
  • 대전
  •  
(보통 :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