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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문학예술산책
혹평과 냉소 끝에 평단 인정받은 에두아르 마네
늦게 꽃핀 화가 마네가 살다간 파리 서부 뤼에유-말메종
나폴레옹 부인 조제핀이 만든 유럽 최고의 신비로운 정원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10 10:11:11
 
▲ 최인숙 문화칼럼니스트·정치학박사
 “일등석은 주어지지 않는다. 잡는 것이다.” 에두아르 마네가 남긴 말이다. 귀족에게도 주어지지 않는 일등석을 잡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던 마네. 그는 프랑스 예술혁명의 화신이자 근대미술의 아버지였다. 이런 마네를 프랑스의 지성 에밀 졸라와 미셸 푸코는 흠모했다.
 
1832년 파리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난 마네. 그의 부친은 법무부장관의 비서실장이었고, 모친은 외교관의 딸이었다. 근엄한 가문에서 자랐지만 별난 외삼촌 덕분에 일찍이 미술에 눈을 떴다. 함장이었던 외삼촌은 마네와 마네의 동생 외젠을 데리고 자주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대가들의 그림을 평가했다.
 
해군장교의 꿈을 포기하고 화가가 된 마네
 
청년시절 마네는 해군장교를 꿈꿔 해군사관학교 선발시험을 쳤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 후 견습 선원이 돼 리우데자네이루 행 배를 탔다. 7개월간의 여행 속에서 팀원들과 장교들을 스케치하며 그는 그림에서 한시도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만 매독에 걸려 프랑스로 돌아와야 했다. 이때 부모님의 뜻을 따라 다시 해군사관학교 시험을 쳤다. 결과는 또 탈락이었다. 두 번의 고배를 마신 아들에게 아버지는 미술공부를 허락했다. 하지만 마네는 미술대학 입학을 거부하고 당대 최고의 미술교수였던 토마 꾸튀르의 아틀리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6년간 미술의 기초를 연마했다.
 
초년생 시절 마네는 유명화가들의 그림을 카피해 연습했다. 친구인 외젠 들라크루아의 허락을 받아 그의 작품 ‘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즉, ‘단테의 작은배’를 카피해 그린 것은 유명하다. 한편, 마네는 파리 이탈리아가(街) 22번지에 있는 토르토니 카페를 자주 찾았다. 여기서 굵직한 정치인, 지식인, 신사, 사교계 여인, 예술가들을 만나 식견을 넓히며 네트워크를 만들어 갔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로 떠나 큰 미술관을 방문하며 견문을 넓히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네 미술의 원천은 이러한 경험의 결정체였다.
 
▲ 마네가 그린 ‘뤼에유의 집’
  
마네가 살롱전에 출품한 첫 작품은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차디찼다. 1862년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낙선전에 출품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전원 풍경 속에서 나체의 한 여인이 신사복을 입은 두 남자에 의해 둘러싸인 모습은 대중에겐 신선했지만 전문가들은 싫어했다. 비평가 알베르 볼프는 마네를 “유쾌하고 흥미로운 청년”이라며 “예술가의 눈은 가졌으되 영혼은 갖지 못했다”라고 혹평했다.” 이에 마네는 “사람들은 비평가들이 좋아하는 것을 얻으려고 서로 싸우지. 그게 무슨 십자가의 파편이나 되는 듯이. 10년만 지나면 아무도 주워 가려 하지 않을텐데”라며 초연히 응수했다.
 
1년 후인 1863년 그는 또 ‘올랭피아’를 전시했다. 이탈리아 화가 티티엥이 그린 ‘위르뱅(Urbin)의 비너스’에서 영감을 얻어 나체의 여인을 그렸다. 너무도 생생한 사실 묘사에 사회적 저항은 컸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올드보이’ 프랑스 아카데미가 ‘뉴보이’ 마네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그러던 중 마침내 행운이 찾아왔다. 문호 에밀 졸라가 그의 미술세계를 알아본 것이다. 졸라의 전폭적 지원과 화가 자신이 개발한 다양한 스타일 덕에 뒤늦게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마네가 아카데미로부터 인정받은 건 그의 나이 마흔 아홉에 그린 ‘앙리 로슈포르의 초상화’를 출품했을 때였다.
 
▲ 마네의 대작 ‘폴리베르제르 바’ [사진=위키피디아]
  
평생이 걸렸지만 마네는 결국 일등석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1년 후 다시 말하면 그가 죽기 직전 ‘폴리 베르제르의 바’를 내놓아 최고의 정점을 찍었다. 그의 나이 오십이었다.
 
 
뤼에유-말메종 나폴레옹 부부가 살다간 황제의 도시
 
마네가 말년을 보낸 뤼에유-말메종. 파리 서쪽 10km 지점에 위치한 이곳은 몽 발레리앙 구릉과 북쪽 센 강 연안으로 이어지는 뷔장발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센 강까지 뛰어난 경관의 자연공원 숲이 10km나 펼쳐져 있다. 마을 입구에는 강이 흐르고 쏟아지는 햇살 속의 풍광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인상파 화가들은 이 풍경을 화폭에 담고자 앞 다퉈 몰려들었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도 질세라 이곳의 경치를 포착했고 그 그림들은 지금까지 명화로 남아있다. 이곳의 강둑에는 멋들어진 선술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마네는 친구들과 드나들며 풍류를 즐겼다.
 
▲ 조제핀이 살았던 ‘말 메종 성’ [사진=뤼에유-말메종 관광청]
  
이 도시는 또한 역사적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다. 황제의 도시였기 때문이다. 1472ha의 평원이 펼쳐진 이곳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살았다. 집정 스타일의 세간을 위해 파리 외곽에 땅을 찾던 나폴레옹의 부인 조제핀은 1799년 말메종 성을 보고 반했다. 즉각 구입했고 여기서 황제부부는 함께 살았다. 하지만 이들은 1809년 이혼했고 조제핀은 여기서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았다. 그녀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정원을 이곳에 만들었다. 이 정원에 그녀는 200여종이 넘는 식물을 사들여 키웠다. 이 정원은 지금 수려하다. 말메종 성의 2층 조제핀 방에 가면 그녀의 아기자기한 자취를 느낄 수 있다. 파리에서 여유로운 시간이 있다면 말메종에 들러 이 모두를 즐겨보길 권한다. 자동차로 12분이면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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