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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장편소설]
초대받은 여자 <43회> 화영의 빛과 그림자2
그 사람이 나정이 약혼자인 거는 몰랐다
이경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26 09:20:22
몰랐어. 왜 내겐 말도 안 하고.”
 
화영은 선우의 시선을 애써 피했다. 그 따뜻한 눈을 보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나는 오화영이다. 어느 한구석도 무너져선 안 돼. 나는 한구석만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여자야. 그러니까 꼿꼿하게. 화영은 마음속으로 구호를 외치듯 다짐을 한다.
 
우리 엄마, 늙은 재벌한테 어린 핏덩이 팔아먹고 젊은 남자랑 도망간 여자야. 엄마 죽음이 내게 조금이라도 슬펐다면 그런 부재에 대한 상실감 그런 게 아니라 생의 비애가 느껴져서 일거야.”
 
선우는 화영의 입에서 나오는 젊은 남자, 도망 이런 단어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 가만히 화영을 쳐다보기만 했다. 이제부터 화영이 털어놓을 말을 듣게 되면 선우는 기절을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엄마를 닮아서 나정과 불화가 생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 화영은 생각한다.
 
엄마처럼 의도하거나 어떤 목적을 가진 게 아니었으니까.
 
그는 화영이 운영하는 마리안느 백화점에 상품을 납품하는 거래처 대표였다. 1년에 한두 번 납품업체 대표들과 의례적으로 하는 회의가 있어 화영도 참석했었다. 회의라고는 하지만 식사와 함께하는 자리라 거기서 그를 처음 만났다.
 
회의하러 오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눈물이 확 쏟아지더라구요.”
 
하필 화영의 테이블에 같이 앉게 된 그가 밥을 먹다 툭 말을 던졌다. 그런데 그 말이 갑자기 화영의 가슴에 화살로 박혀버렸다. 그때 화영의 마음이 바로 그랬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영은 날씨 때문은 아니었다.
 
 
 
 
회의 마치고 바로 회사 들어가세요? 아니요,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술이나 한 잔 할까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회사 일 소홀히 하는 그런 놈은 아닙니다.
 
그 말을 듣고 화영은 비서를 불렀다. 이 비서, 내 방에 와인 몇 병 있지? 가져와서 테이블마다 돌려요. 그날 그렇게 일이 시작되었다.
 
그 사람이 나정이 약혼자인 거는 몰랐겠지만 너는 아직 형석 씨 하고.”
 
선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영이 말을 잘랐다.
 
안형석? 그 자식 때문이었다니까?”
 
안형석, 화영의 남편 때문이라는 말에 선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선우는 속으로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건가 한심했을지도 몰랐다.
 
그날 아침 백화점 출근길에 봐서는 안 될 걸 보아버렸다. 정말 신문에 기사나 뜨면 잘 살고는 있구나 생각하면 되었을 일을 왜 손으로 터치까지 해가며 형석의 SNS를 찾아봤는지.
 
생의 가장 소중한 나의 분신, 이라 쓰인 문장 아래로 사진 한 장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나이 마흔이 되고서야 인생의 보물을 얻었다. 인생의 가치를 알게 됐다, 고 쓰여 있었다.
 
선우야,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아이 하나 낳아서 그냥 정붙이고 살아볼까. 남의 인생 살 듯 이렇게 둥둥 떠다니지 말고 마음 붙여 한번 살아볼까.”
 
 
[: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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