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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은 은행에 ‘마음’을 기대한다
물건으로 돈을 벌던 시대는 지났다. 21세기는 실용과 감성이 혼합된 기술과 제품, 비전을 사고파는 시대로 정착해 가고 있다. 기술력, 트렌드 따라잡기, 마케팅 전략 등에 앞서 기업의 철학과 마음을 살피고 정돈해야 하는 시점이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업종을 따지자면 은행은 금융 기업. 하지만 은행을 기업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은행은 그냥 ‘은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쉬울 때 친구나 친척보다 부담 없이 손 벌릴 수 있는 대상, 내 재산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의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객은 다른 업종에 대해서와 달리 유독 은행엔 ‘마음’을 기대한다. 분명 돈이 오가는 거래임에도 그 과정에 온기가 배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 소년이 있었다…
어릴 적 이름은 이희문. 경상북도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지만 공부를 잘했다. 그래서 당시 영남지역 명문 학교였던 대구사범학교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이후 서울로 올라가 잡일을 하며 지내던 그는 일본으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이름도 이희건으로 개명했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오사카의 쓰루하시(鶴橋)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 장사부터 시작해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성장했다.
‘오사카흥은’… 작지만 단단한 씨앗
당시 오사카는 물론 일본 전역의 재일교포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경제적 자립이었다. 이를 깨달은 이희건은 1955년 재일교포 상공인들을 모아 ‘오사카흥은(大阪興銀)’이란 이름의 신용조합을 설립한다. 이후 이사장에 취임해 1968년 총 예금고 100억 엔을 달성하는 등 오사카흥은의 눈부신 성장을 이끌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무허가 시장의 가난한 장돌뱅이가 아니었다. 성공한 사업가, 탁월한 금융 경영인이 된 그는 떠나온 고향, 모국 대한민국으로 눈을 돌렸다.
‘새로운 한국(新韓)’… 모국에 대한 충정
1970년대 들어 대한민국은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고도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며 이희건 당시 이사장은 모국에 순수 민간자본 은행을 세우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리고 1982년, 340여 명의 재일교포 유지들로부터 출자금을 모아 영업점 3개로 문을 연 미니은행의 개점 당일, 신한은행 주주가 된 재일교포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는 재일교포들의 강한 민족애와 모국 발전에 대한 염원의 결과물로, 은행의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6년간의 굴욕 견디고 리딩뱅크 탈환
신한은행은 창립 초기부터 국내 최초의 텔레뱅킹, 무인 점포 등 혁신적인 시스템을 도입해 소비자 밀착형 영업 전략을 펼치며 급성장, 1990년대 중반까지 업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엔 기업 부실 채권 문제로 위기를 겪는 등 작은 부침이 있었으나 2006년 조흥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대형 은행으로 거듭나며 합병 직후인 2007년 그룹 순이익이 2002년 대비 5.5배나 증가하는 성과를 냈다.
이어서 2018년에는 창립 이래 최대 순이익(3조1567억 원)을 달성하며 다시 업계 1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9년부터 2022년까지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에 리딩뱅크 자리를 내주며 2·3위로 내려앉았다. 2023년에는 4조3680억 원의 순이익을 냈음에도 하나금융그룹과 KB금융그룹에 뒤처지며 3위에 머물렀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다시 한번 4조5582억 원의 역대 최대 순이익을 달성하며 6년 만에 리딩뱅크 자리를 탈환했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의 현장 중심 헌신적 리더십이 이룬 성과였다.
35년 근속 ‘신한맨’… 진옥동 회장과의 관계는 변수
2023년 2월 신한은행장에 취임한 정상혁 은행장은 대구 출신으로 서울대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했다. 1990년 평행원으로 입사해 30년 넘게 전략·재무·인사·소비자보호 등 핵심 분야를 두루 거치며 풍부한 현장 경험과 함께 경영 능력을 쌓았다.
신한은행장에 취임한 후로는 신한금융그룹 산하의 은행·카드·증권·라이프(보험)·저축은행 등 5개사의 핵심 서비스를 하나의 앱으로 통합한 ‘슈퍼SOL’도입 등 디지털 혁신을 주도했고, 1970년대생 부서장급 인사를 임원으로 발탁하는 등 성과 기반의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과거 건설사 임원 겸직 등 논란의 중심에 있는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과의 관계는 정 은행장에게 특별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2019년 당시 신한은행장이었던 진옥동 현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비서실장으로 일하며 진 회장의 ‘오른팔’ ‘복심’으로 불렸고, 이후 경영기획그룹장(CFO), 자금시장그룹 부행장을 맡아 은행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등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 왔다. 진옥동 회장의 ‘복심’으로 통한다는 사실이 향후 정 은행장에게 이점으로 작용할지 약점이 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신한금융지주 차기 회장 후보
2024년 말, 관례를 깨고 2년 연임이 확정된 정 은행장은 신한금융지주 차기 회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최근 확정된 신한금융지주 회장 후보 명단에 정상혁 신한은행장, 진옥동 현 신한금융지주 회장, 이선훈 신한투자증권 사장 등 내부 인사 3명과 외부 인사 1명이 포함되었다.
현재 진옥동 회장이 연임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지만, 정상혁 은행장은 향후 회장직 승계 라인에서 핵심 변수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꾸준함’을 따를 수 있는 건 없다
혁신적 ‘전략통’으로 불리는 정상혁 신한은행장에겐 ‘꾸준함’이라는 또 다른 무기가 있다. 그는 직장도, 주거도 30년 이상 한자리를 지키며 성공적 삶을 이어 온 모범적 케이스다. 정 은행장은 오랫동안 거주해 온 신반포 1차 아파트(반포한신 1차)가 재건축되며 새로 들어선 반포 아크로리버파크(아리팍)에 입주했다. 30년 넘게 한곳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재건축 사업으로 시세가 급등하기 전 2012년 초, 신반포 1차 아파트의 매매가 평균은 33평형이 2억1750만 원, 53평형은 2억2500만 원 수준이었다. 이후 2012년 말 재건축 이슈가 본격화되며 거래가가 3.3㎡(1평)당 7411만 원에 달할 정도로 시세가 치솟았다.
아크로리버파크, 1·2차로 나누어 분양
신반포1차 아파트는 주민 일부가 재건축 방식, 지분 등의 문제로 조합과 이견을 빚으며 사업 추진이 지연되었다. 그러자 조합은 먼저 1~19동을 대상으로 2013년 11월 1차 분양을 진행하고, 이듬해 10월 나머지 물량에 대한 2차 분양을 진행했다.
1차 때는 3.3㎡(1평)당 3800만 원대였던 분양가가 2차 분양에선 4130만 원으로 오르고 특히 한강 조망 로열층 45평형은 3.3㎡당 5000만 원의 파격적 분양가가 책정되었지만 계약 시작 4일 만에 전 세대 완판을 기록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인프라·교통·학군 두루 갖춘 명품 아파트
아크로리버파크는 입주 당시 이미 4억 원의 프리미엄이 붙는 등 명품 아파트로 자리매김했다. 한강변의 입지, 교통·학군에 더해 층고를 일반 아파트보다 30cm 높여 천장 높이가 최고 2.6m에 달하고 우수디자인으로 발코니 30%의 인센티브를 받아 다른 아파트에 비해 실제 사용면적이 10~23㎡ 더 넓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의 주택은 11층 로열층에 분양면적 150.26㎡(45평), 전용면적 112.93㎡(34평)으로 이 평형은 현재 80억 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신반포 1차 아파트의 재건축 이슈가 본격화되기 전 2억2000만 원 수준이었고 1차 분양 당시 분양가가 17억6400만 원이던 것과 비교하면 가격 상승세가 놀랍다. 정 은행장은 부동산 투기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한자리를 꾸준히 지켰을 뿐인데 70억 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본 셈이다.
아크로리버파크에는 현재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비롯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관섭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정계 인사들과 뮤지컬 배우 홍광호 등 연예인이 살거나 집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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