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의 진정한 정치적 독립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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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야당, 공영방송 영구 장악하려 법 개정 추진 중
선진국처럼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 줄여야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2-14 11:07:00

유시춘 EBS 이사장의 자격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공영방송 이사장을 연임하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기도 하고, 솔직히 교육이나 방송 어느 분야와도 무관한 인사가 교육방송 이사장을 두 번씩 하는 경우도 매우 이례적이다. 그러니 지난 정권의 ‘핵 인싸’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던 동생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든든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추천 당시부터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혹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방송법에 정당에 소속되었거나 정치활동을 했던 인사를 공영방송 이사 결격 사유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증 주체인 방송통신위원회는 문제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임명하였다. 충분히 심증은 가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그냥 의구심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당시 여당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대충 넘어가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최근 유 이사장이 문재인의 대선후보 시절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했던 사진이 공개되면서 자격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솔직히 이 사진도 검증하기로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을 듯 싶다. 나아가 결격 사유를 위장하기 위해 이름(류시춘→유시춘)과 주민등록번호(500512~→510512~)까지 바꿨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물론 이번 사건은 결격사유가 될 만한 경력을 속이고 공영방송 이사장 자리를 차지한 개인의 부도덕성을 먼저 탓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본질은 현행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 방식이 가진 제도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현행 방송법에는 KBS와 MBC 방송문화진흥회 그리고 EBS 이사는 방송통신위원회가 공모 절차를 거쳐 독자적으로 선발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여·야가 내면적으로 합의한 안배 기준에 따라 선발하고 있다. 방송법 어디에도 없지만 KBS 7:4, MBC 6:3 그리고 EBS도 여·야 지분으로 나누어 추천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주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원자가 사실상 정당 추천을 받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공영방송 이사회가 정치적으로 독립되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무망한 일이다.

유 이사장의 자격 논란도 결국은 정치권에서 사실상 추천하는 아니, 나누어 먹게 되어 있는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 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각 정당에서 추천한 인물들을 안배하는데, 피추천자의 자격이나 검증과정은 그냥 요식 절차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구나 집권당이 수장과 위원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여당 추천 인사에 대한 검증은 더 허술할 것이라 충분히 예측해 볼 수 있다.

공영방송 이사회는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는 공영방송을 감독할 수 있는 유일한 견제 장치다. 구성 과정에서 국민 대표성과 사회적 다양성이 반영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독일이 수십 개나 되는 공영방송 방송평의회 추천 단체를 법에 일일이 규정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추천 단체를 법으로 정하는 것은 합의의 정치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도리어 정치적 갈등만 증폭시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추천 단체를 지정하는 대신 선발 과정에서 다양성을 보장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영국 BBC나 일본 NHK도 이사 선임 기구(혹은 부서)가 지역 대표성이나 분야별 대표성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안배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도 정치적 영향력이 개입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그렇지만 정치적 관행이나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정치문화가 이를 방어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공영방송은 선거에서 승리해 집권하면 저절로 따라오는 일종의 전리품처럼 인식되어 왔다. 공영방송 거버넌스를 집권 여당이 지배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한술 더 떠 선거에서 패배해 권력을 내준 야당이 집권 중에 장악했던 공영방송 이사회를 영원히 장악하려 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민추천제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해, 언론노조와 친민주당 단체들을 추천기관으로 법에 못 박아 공영방송을 영구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선진국들은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BBC는 기존의 트러스트를 폐지하고 이사회를 다시 부활했다. 규제는 우리의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오프콤(Ofcom)이 담당하고, BBC이사회는 경영책임만 지게 해 정치적 개입 여지를 대폭 줄였다. 독일은 2014년 연방헌법재판소가 “정부 및 정당 대표가 3분의 1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판결해, 정당 대표 12명을 없애버리고 연방정부 몫도 2인으로 줄였다. 정치적 개입 여지를 줄여 공영방송 독립성을 제고하는 추세가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정치가 공영방송 헤게모니를 내려놓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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