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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의 개인주의 시선
선택과 결과에 대한 책임지는 사회가 ‘민주주의’
어느 나라나 유령처럼 배회하는 집단주의적 유아심리
‘선택엔 비용 수반’… 인식 못하면 타락한 전체주의로
배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2-16 09:48:03
 
▲ 배민 숭의여고 역사교사·치과의사
 유아적인 사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를 꼽으라면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이 아닐까 한다. 2006년 일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면 주인공 소녀, 마코토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지게 된 후 사소한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임 리프를 행하게 된다. 주인공의 이모가 ‘마코토가 이득을 얻는 만큼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있지 않을까’라고 말해 주었을 때, 마코토는 잠시 고민에 빠지지만 쉽게 생각해버린다. ‘그럼 그 사람을 위해 또 시간을 돌리면 되지 뭐’라고.
 
사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1967년에 출간된 성장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마코토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 도중에 두 개의 갈림길이 나오는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선택의 기로에 서서 결국 그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마코토는 자신의 선택이 마음이 안들 때마다, 정확하게는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시간을 쉽게 되돌려 버린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들은 어른이 되면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한 선택에 대한 결과는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우리 자신은 회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성인들 중에도 결정 장애를 겪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결국 자신의 선택에 동반되는 책임의 무게를 회피하려는 사람들이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Time waits for no one).’ 자연은 시간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우리에게 직접 꾸짖거나 나무라기 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반성하도록 만든다.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본질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가 잘게 쪼개 놓은 현대의 모든 학문 분야 안에는 그 속에 저마다의 역사가, 그리고 역사학이 존재한다. 가령, 의학 분야에 의학사(the history of medicine)가 있고, 경제학에도 경제사 (economic history)가 있는 것처럼.
 
위에서 성장소설을 이야기했지만, 하나의 사회도 성장을 하고 성숙을 해간다. 그리고 한 사회의 정신적 유아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이 바로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결정한 선택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이다. 더 중요하게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마코토처럼, 자신의 선택에 어떤 비용(cost)이 초래되는 지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마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듯이, 당장의 근시안적인 만족과 편리에 이끌려 선택과 결정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유아적인 사회인 것이다.
 
경제학의 개념인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은 아마도 경제학이 일반인들의 인생의 결정에 가장 철학적으로 기여한 공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프랑스 철학자 바스티야의 우화를 통해 19세기에 어렴풋이 정립되기 시작한 이 개념의 본질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현명한 사람들, 즉 현인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지혜였다. 그들이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한 문장 속에는 우리가 욕망하는 것(인간이 그 욕망에 선하거나 악하다고 라벨을 부여하는 것과 상관없이)을 추구하는 행동에는 그에 뒤따르는 대가를 우리가 지불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는 잠언이 숨어 있다.
 
비용은 언제나 유아적인 인간이 가장 회피하려는 대상이다. 비용 따위는 생각지 않고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사실 이 마음은 어린 아이들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보면 어리석은 사회가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특성이다. 하늘에서 돈 비가 내리면, 우리가 욕망하는 사회 복지의 모든 것이 시원하게 해결될까? 묻혀 있던 지하자원 덕분에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나라들 중에 비극으로 치닫게 된 사례는 역사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로 하늘에서 돈이 비처럼 내리면, 현실적으로는 지옥이 초래된다. 그 돈을 가지려고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더 많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혈투가 이어지고...
 
‘돈이 비처럼 내린다면’이라는 비유를 들었지만, 이는 우화 속 이야기라기보다 현실의 지구 상에 펼쳐지는 모습과 더 유사하다. 단지 갑자기 소나기처럼 쏟아지지 않고 가랑비처럼 서서히 금리라는 간접적인 수단으로 그 물량이 방류되었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세계적인 양적 완화 정책의 기조 속에서 지난 20여년간 한국 사회는 지속적인 복지정책의 확대를 경험했다. 학교의 무상 급식이나 소득주도 성장 같은 주요 이슈들은 일반인들도 사회적 결정의 무게를 절감하게 만들었고 집단적 선택의 갈래길에 놓여져 있었음을 뒤늦게 인식하게 만들었다.
 
물론 좌파 지식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단기적인 불편함과 목전의 비극을 강조하며 비용에 눈 감는 정책을 선호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그들은 최근의 금리 인상 기조를 끝없이 비판하고 공격하며 다시금 돈을 풀어 비를 내리게 해야 한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인다. 어쩌면 그래서 그들이 혐오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궁극적으로는 허물어 버리려는 심리가 기저에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마르크시즘은, 그리고 사회주의적 시각은, 그 유전자 자체가 포퓰리즘이다. ‘내 고통의 원인은 내 자신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고 본다. 결국, 나보다 행복한 저들이 내 고통의 원인이며 나처럼 불행한 자들이 모두 연대하여 저들을 없애버리면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극도의 유아 심리가 그 대중 선동의 원동력이자 본질이다. 하지만, 21세기 현재에도 여전히 전세계에는 에릭 홉스봄의 경구가 적용된다. 집단주의적 유아심리는 어느 나라에나 유령처럼 배회한다.
 
바로 2,3년 전까지만 해도 높은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온갖 세금과 시장규제 정책을 동원했던 기억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낮은 금리와 시장규제 때문에 부동산 시장에 몰렸던 자본이 결국 금리가 높아지자 일거에 해결되어 버렸다. 물론 그 여파로 이미 시장에 풀렸던 자본이 이제야 소비재 상품 시장으로 몰려들어 가격을 높이고 있을 뿐이다. 결국 근본 원인은 자명하다. 저금리 정책을 가지고 가랑비처럼 계속적으로 돈을 하늘에서 뿌렸던 당시 ‘정부’가 진짜 범인이다.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득표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경기 부양의 방법인 돈을 더 많이 공급하는 가장 비열하고 말초적인 정책으로 화폐의 가치를 조롱해 왔다. 결국 개인들이 유아적인 심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생은 고통(struggling)이라는 것, 그리고 본질인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선택에는 비용이 수반된다는 점을 깨닫는 성인이 되지 않는 이상 민주주의는 그저 타락한 전체주의로 가는 폭주 기관차의 플랫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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