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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1993년 2월 25일 취임식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 취임사는 한완상 전 통일‧교육부총리가 작성하였다고 밝혔다.(한겨레, 2012.5.20.)
당시 대한민국 지식계급의 정신과 수준은 한심하였다. 낡은 이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들은 사회주의권 붕괴라는 세계사적 변화를 인정할 수 없었고, 국민들의 삶을 결정하는데 어떤 요인이 더 중요한지 몰랐다. 한반도 민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체제의 통일이 필요한지 모르면서, 민족이라는 선동으로 국민들의 공론만 어지럽힌 취임사였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고 국민의 삶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제도는 국가다. 민족은 정치적 선동과 내부 권력투쟁의 소재가 될 수는 있어도, 국민의 삶을 결정짓는 제도가 될 수는 없다. 국가를 보전하는 힘은 국민의 정신적·정치적·경제적 능력과 국가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과 맺은 동맹에서 나온다.
튀르키예 내륙지역과 이라크와 시리아 북부지역 등에 거주하는 쿠르드 민족은 인구가 3000만 명이 넘지만 유엔의 가맹 단위인 민족국가(nation state)를 건설하지 못했다. 로마에 나라가 망한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며 국가 없는 민족으로 꿋꿋이 존립하고 있지만, 지금은 튀르키예로부터 테러집단 취급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같은 범 슬라브 민족이지만, 러시아의 침략으로 우크라이나 국민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있다. 하나의 민족임을 내세우는 북한 공산당 정권이 6·25침략전쟁을 일으켜 대한민국 국민 수백만 명을 희생시킨 것과 같은 장면이다.
국가 없는 민족은 독립운동을 벌여도 자칫 테러활동으로 내몰리는 현실이다. 헌법에 규정된 국가의 정체성인 정치경제 체제가 개인적 삶의 행태를 결정하는 것이지, 민족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라는 제도가 민족 감성팔이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중 한 곳을 택해야 하는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다. 당장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 신청 여부부터 걱정이다. 초과이익 공유, 중국과 공동 연구 시 보조금 전액 반환 등 기업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 상당 부분 포함됐기 때문이다. 또 기술 노출 및 향후 사업 확장 제한 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업계는 보조금 신청 계획에 대해 ‘발표된 내용을 면밀히 검토 중이란 말 외엔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중앙일보, 2023.3.3.)
주지하듯이 미국은 작년에 ‘CHIPs와 과학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경제안보 3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입장은 명확하다. 경제발전을 이루면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며 미국이 지난 40년 동안 중국의 경제발전에 협력하였지만, 중국은 오히려 성장한 경제를 바탕으로 전체주의 독재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인공지능(AI) 등 자유주의 선진국에서 습득한 지식과 기술을 이용해 적대적 군사력을 강화하고 인민의 자유와 인권을 탄압하는데 악용하고 있다. 미국은 지식경제시대 경제적 가치의 원천인 지식·기술을 훔치거나 빼돌리는 전체주의 국가들의 행태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가치동맹을 중심으로 국제관계를 재편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때에 중국에 투자한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경제발전의 궁극적 목적은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더 많이 보장하는 것이다. 국가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장기적인 국민적 이익을 고려하여 대처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삼성과 SK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신속히 중국 공장을 폐쇄하고 인력만 챙겨 철수해야 한다. 지식경제시대의 핵심 자산은 지식이고, 지식은 사람이 구현한다. 공장은 그냥 남겨둬도 된다. 3나노 반도체가 일반적일 때 15나노 반도체 공장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또 중국 등 전체주의 국가에 투자하려는 한국의 다른 기업도 투자처를 자유주의 진영의 국가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국 다롄에 조선소를 지은 한국의 STX조선은 현지의 인건비가 오르는 등 채산성이 악화되어 더 이상 사업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사업을 접고 자산 청산을 위해 다롄 조선소 매각에 나섰으나, 입찰이 6차례 이상 유찰되었다고 한다. 입찰과정에 전체주의 권력이 개입하면 아무도 응찰할 자가 없다. 사유재산과 온전한 시장경제 제도를 보장하지 않는 나라에 투자해서는 안 된다.
우리 기업들이 선진 자유주의 진영 국가의 지식생산자들과 협업으로 얻은 지식과 기술의 유출통로가 되어서 안 된다. 미국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부분은 우리나라와 기업의 정체성 문제다. 이 문제만 분명히 한다면 미국의 경제안보 3법 시행과정에서 불거진 사소한 문제들은 미국 정부와 협의하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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