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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뒷골목에 마블링처럼 박혀 있는 소고기 맛집
960시간 숙성 원뿔 숙성 소고기 전문 ‘청담한우’
합리적 가격의 투뿔 한우 맛볼 수 있는 ‘고바우’
유성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3-17 11:27:51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조선의 통치이념은 ‘농자천하지대본’이다. 농업이 산업의 근간이었고 농사를 권면하기 위해 왕이 직접 나서서 친경례를 펼쳤다. 농경 국가에서 소는 노동력의 원천이었기에 도살이 엄격히 제한됐다. 이를 우금(牛禁) 정책이라고 하는 데, 소나무 벌목을 금하는 송금(松禁),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하는 금주(酒禁)와 함께 3금 정책으로 불렀다.
 
우금은 농업국가 조선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조선 전기부터 시행됐다. 소가 부족하면 쟁기질을 깊게 못 해 곡물 생산량이 줄었다. 농지에서 소출이 줄면 농민들은 땅을 버리고 떠나 유리걸식하게 되고 이는 농업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결국 세수 감소가 되고 국가재정에도 타격을 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고기에 대한 욕구는 일개 제도로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고기의 인문학’을 쓴 정혜경 전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조선 사람들은 소박한 식사를 권하는 유교적 규율과 우금령이라는 국가적 금지 사이에서 과연 고기 보기를 돌 같이 할 수 있었을까”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료는 그렇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고기 보기를 돌같이 하긴 어려워”
 
정 전 교수에 따르면 탐욕과 사치의 대명사로 알려진 많은 권력가들이 고기를 탐했다.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의 집에서는 고기가 마당에 쌓여 썩어갈 정도로 선물과 뇌물이 많았고 ‘어우야담‘에 기록된 김계우(중종의 재종 외삼촌)는 매달 소 한 마리를 잡아 삼시 세 끼를 소고기를 먹었다고 전해진다.
 
뭐니 뭐니 해도 소고기는 왕실을 특히 왕을 위한 식재료였다. 세종은 고기가 아니면 수라를 들지 못했다. 실록 등 기록물에도 고기와 관련된 언급이 505번으로 조선 국왕 중 가장 많았다. 세종의 아버지 태종은 자신이 죽으면 상중에 세종이 고기를 못 먹어 건강을 해칠까 염려해 신하들에게 고기를 먹게 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효자 세종은 태종의 유언을 지키지 않아 날로 수척해지자 이를 걱정했다는 기사가 세종실록에 전해진다.
 
연산군은 매일 소 10마리를 잡았을 정도로 세종에 비견되는 육식 애호가였다. 그는 소고기를 진상할 때 한양에서 가까운 곳에서는 생고기로, 먼 곳에서는 포로 진상케 했다. 소의 태를 즐겨 먹었고 백성들의 원성이 잦았다고 했다. 연산군은 또 갑자기 고기를 올릴 것을 명하고 이를 행하지 못할 경우 백성들의 소를 때려잡아 바치게 하는 등 악행이 전해진다.
 
세종·연산군은 육식 마니아
 
조선시대에는 소의 도축은 현방에서 행해졌다. 현방은 성균관의 공복인 반인들이 운영하는 요즘의 정육점이다. 그들은 소 도살과 판매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이외 함부로 소를 도축한 자는 살인죄에 준해 처벌했다. 우금은 연말연시 시기적으로 사회 분위기가 느슨해질 때나 제수용으로 소의 은밀한 도살 가능성이 높아질 때 강화됐다.
 
조정에서는 감사와 수령에게 소의 도축을 감시하도록 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암행어사의 임무 중에 불법 소 도축에 대한 단속 항목을 넣기도 했다. 우금은 조선시대 내내 지속적으로 시행됐지만 후기부터는 실효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감사나 수령의 단속이 느슨했고 부정부패와 연관돼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주요 교역품으로 떠오른 소가죽 수요 증가도 원인이 됐다. 전국 도처에 사설 푸줏간이 생기고 불법적 도축이 자행됐다. 19세기에 접어들어 지방 관청의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불법 도축을 단속 대신 세금을 매겨 재정을 보충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금 정책은 점차 힘을 잃었고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우금은 흐지부지 사라졌다. 민간 푸줏간이 생기고 소고기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음식 민주화 시대 소고기는 역시 ‘갑’
 
이를 일종의 ‘음식 민주화’라고 한다. 독일의 작가 난 멜링거는 저서 ‘FLEISCH(고기)’에서 ‘육류가 드물었던 당시 고기는 사회적으로 높은 계층의 사람이 자주 먹는 음식이었던 반면에, 이제는 돼지고기로 배를 불리는 것보다 고상한 미각의 사회적 논리와 더불어 오히려 소고기와 조류와 같은 기름기 적은 음식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점차 힘, 신체 크기와 그리고 육류 소비와의 상관관계가 와해됐다”며 “소고기, 과일과 신선한 채소 같이 살찌지 않는 식품은 자유업자와 높은 지도층의 기호식품이 되고 노동자층은 돼지고기 같은 소화 흡수가 잘 안되고 지방이 많은 음식을 선호하는 특징을 가지게 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소고기는 역시 고상한 미각을 가진 상류층의 식재료란 것이다. 그것은 맛도 맛이지만 소를 선호하는 인간의 욕망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연결되면서 만들어 낸 일종의 푸드 포르노 같은 현상이다. ‘푸드 포르노’는 현대인들의 소고기에 대한 갈망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소고기 맛집을 소개하려다가 서문이 어지간히 길었다. 소고기는 현대인 육식의 원초적 본능이다. 원시 사냥과 농경 가축 시대를 거치면서 소는 인간의 가장 중요하고 맛있는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그런 유전학적 ‘입맛’ 대물림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쉽게 대체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숙성도와 멋진 퍼포먼스가 인상적인 곳
 
▲ 성남 위례 뒷골목에 위치한 1+ 숙성우 전문 ‘청담한우’. (필자제공)
 
뒷골목 걷기를 좋아하는 필자의 습성을 아는 친구가 뒷골목에 숨어 있는 소고깃집을 한 곳 소개했다. 경기도 성남 위례에 있는 ‘청담한우’는 고기도 고기지만 퍼포먼스가 좋은 곳이다. 이곳은 40일(960시간) 숙성된 소고기를 사용한다.
 
새우살이 큼직하게 포함된 1+등심을 통째로 들고 와 눈앞에서 썬다. 그리곤 막힌 불판 위에서 직접 구워준다. 새우살, 등심, 근막 세 부위로 나눠 각각 소금, 고추냉이, 간장소스에 찍어 먹을 것을 가이드한다. 이런 가이드가 식당의 매력을 상승시키는 요인이 된다.
 
육회는 홍두깨 부위를 상당히 얇게 채 쳐서 양념한 후에 작은 대포알처럼 동그랗게 뭉쳐서 나온다. 서브 후 손님 앞에서 토치로 겉면을 지지는 데 맛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만 시뻘건 생육회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효과는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토치를 이용한 홀 서버의 퍼포먼스가 손님에게 참신함과 즐거움을 준다.
 
차돌박이는 불판 위에 커다란 모란꽃처럼 펼쳐서 굽는다. 마치 석류를 반 토막 해 놓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토치로 지지는 불쇼 타임이 있다. 굽는 사이 초대리를 한 밥이 약간 제공된다. 이는 차돌박이를 얹어 초밥을 해 먹는 재미를 주기 위함이다. 이 모든 과정을 식당 주인 부부가 직접 시연하면서 손님들에게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손님과의 유대감이 생기는 것을 느낀다. 단골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자 과정이다. 주변 개발이 완료되고 지하철역이 생기면 꽤 줄을 서야 할 듯싶다. 가격이 결코 싸다 할 수 없지만 재미가 있는 곳이다. 스토리텔링이 과해 보여도 그 또한 노력의 산물이다.
 
 
육회 먹으러 갔다가 등심까지 주문
  
▲ 종로구 숭인동 골목 초입에 위치한 1++ 한우전문점 ‘고바우’ (필자제공)
 
매주 월요일 창신동 일대서 노인 가정 도시락 배달 지원을 하던 때 일을 마치고 목이 말라 시원한 음료 한잔을 마시고 동묘 도깨비시장 쪽으로 걸었다. 이 지역은 사대문 안에서 쏟아지는 고물을 사고팔던 시장이 있었는데 1957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원조가 대폭 줄면서 중고 물품 유통 시장으로 자리매김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인근에 서양화가 박수근이 창신동 살던 집터가 있고 큰길 건너편 숭인동 골목 입구에 한우 전문 ‘고바우’가 있다. 길 가다 우연히 들른 식당인데 1++ 원육을 쓰는데 가성비가 참 좋다. 한우 투뿔 200g 기준 등심 3만5000원, 제비추리 4만 원, 토시살 4만5000원, 차돌박이와 꾸리살로 만든 육회가 2만8000원이다. 또 한우 듬뿍 넣은 된장찌개가 3000원인데 꼭 먹어야 한다.
 
생삼겹살, 가브리살, 갈매기살 등 돼지고기도 판매하는데 죄다 가격이 합리적이다. 마장동이 가까운 게 이유인듯 하다. 육회 먹으러 들렀다가 등심까지 먹고 나온 곳이다. 1984년 문을 열어 40년이 다된 업력을 가진 내공 깊은 곳이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소고기 마블링처럼 맛있게 박혀 있는 맛집이 있다. 언제 또 와보겠냐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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