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유권자들은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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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공공기관 2차 이전으로 소모적 국력 낭비
기존의 틀을 깨는 ‘담대한 지원’이 있어야
정치적 유혹 빨리 버리고 ‘제3의 길’ 찾자

홍찬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3-29 09:55:17

올해 상반기에는 전국적으로 치열한 쟁탈전이 예고되어 있다. 수도권 공공기관의 2차 지방 이전을 둘러싼 싸움이다. 1차 이전(153개 공공기관) 때보다 두 배 이상 많은 360개의 공공기관이 이번에 지방으로 옮기게 되는데 올 상반기에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일부는 연말부터 이전을 시작한다고 한다.

이 일이 서로 품위와 예의를 갖추며 진행될 리 없다. 지자체들은 벌써부터 수십 개에 달하는 유치 대상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일전을 벼르고 있다. ‘수량’이 한정되어 있는 탓에 입지 선정 과정에서 진흙탕 싸움이 벌어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역 정치인들의 ‘업적 다툼’은 파열음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다.

이러한 혼돈과 진통이 나라 전체가 나아지는 과정이라면 위안이 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대한 평가는 2004년부터 시작된 1차 이전을 통해 이미 내려져 있다. 당시 세종시를 건설하고 10개 혁신도시를 만들어 그 안에 수도권 공공기관들을 이전시켰다. 이 정책의 실패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2020년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보다 많아진 역전 현상이었다.

초기에는 수도권 인구의 지방 유입 효과가 잠시 나타나기는 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공공기관 입주가 막 이뤄지던 시기에 그쳤고, 이후부터는 인근 주민들이 주거 환경이 나은 혁신도시로 옮겨가는 일이 대세가 됐다. ‘구도심 쇠퇴’라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런 식이라면 지자체 입장에서는 하나를 얻는 대신 더 큰 것을 잃는 허망한 결과일 수 있다. 그나마 현재 혁신도시의 인구는 당초 계획했던 수치의 87.1%에 머물고 있다.

이런 낭패가 벌어진 이유는 해외의 실패 사례와 그 배경에 눈을 감은 채 오로지 정치적 의도로 밀어붙인 탓이다. 세종시 건설이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의 충청권 득표 전략으로 채택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윤석열정부의 지방선거 공약인 2차 공공기관 이전은 정권 주체는 달랐지만 역시 선거 승리를 노린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진다. 윤석열정부는 2차 공공기관 이전을 하겠다면서도 한편으로 전주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를 서울로 옮기겠다고 한다. 더 우스꽝스러운 것은 ‘균형 발전’을 그토록 외쳐온 민주당이 현 정권이 추진하는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에 반대하고 나선 점이다. ‘균형 발전’의 허구성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그림은 없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1990년대 이후 균형 발전의 정책 목표를 포기했다. 영국 런던은 1940년대부터, 프랑스 파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도권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자 공장과 사무실을 짓지 못하게 하는 등 강력한 규제 정책을 폈다. 한국의 수도권 규제도 여기서 배워온 것이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엄청난 예산과 노력을 투입했는데도 현실은 요지부동이었고, 거꾸로 국가경쟁력의 후퇴가 두드러졌다.

인구 집중은 무조건 나쁘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대도시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것은 다른 것은 몰라도 국가 경제를 위해서는 매우 생산적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집적과 집중은 혁신의 토양이었다. 더구나 저출산과 인구 감소라는 새로운 암초가 등장하면서 인구는 곳곳에서 줄어드는데 그 인구마저 분산시키겠다고 나서는 것은 스스로 힘을 빼는 일이었다.

문제의 본질은 인구 감소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한 지역 침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우리도 격차 해소라는 ‘형평성’보다는,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효율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중심 이동을 해야 한다.

공공기관 이전은 기계적 평등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정책이다. 다른 나라 정치인들도 이런 방법이 있다는 걸 모르진 않았지만 그 무모함 때문에 차마 못한 일이다. 지역마다 여건이 다르고 긍정적 의미에서 잠재력도 다르다. 지자체들이 각각의 특성을 살리도록 지원하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다. 선진국에는 상주하는 인구가 많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잘사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지자체들이 각자의 장점을 알아서 최대화할 수 있도록 중앙 정부의 권한을 과감하게 지방으로 이양해야 한다.

아울러 지방의 대도시에 있는 대학들을 획기적으로 육성해 기업 및 창업과 연계시키는 거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정부가 지방 대학에 5년간 한 곳당 1000억 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내놓았으나 이 정도로는 미흡하다. 기존의 틀을 깨는 ‘담대한 지원’이 있어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수도권 유권자들이 계속 가만히 있을 거라는 전제 아래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저것 서울을 떠나간다는 소식만 들리는 ‘상실의 시대’를 맞아 서울 유권자들도 이젠 정치적 맞대응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은 진정으로 국토 전체의 가치를 높이는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

홍찬식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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