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꽃’에 드는 회의감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기획

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민주주의의 꽃’에 드는 회의감

‘무조건 선거 승리’에서 비롯된 ‘정당 타락’
위기감 바탕으로 시민 각성해야 탈출 가능
유권자 시민의 각성에 마지막 기대를

홍찬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4-12 08:30:19

요즘 한국 정치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단연 ‘포퓰리즘’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도 이 말을 썼다. 지난 문재인 정권 때부터 주로 우파가 좌파를 공격하는 화두가 되고 있다.

포퓰리즘을 우리말로 바꾸면 ‘대중주의’가 되는데 그 의미가 막연해 바로 뇌리에 다가오지는 않는다. 국내에서는 나라의 장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의 인기를 노리는 정치적 행위나 전략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엄밀히 말하면 ‘포퓰리즘’이 아니라 ‘포퓰러리즘(popularism)’이다. 즉 ‘대중주의’가 아닌 ‘대중 인기 영합주의’라는 얘기다.

누구나 알다시피 포퓰리즘은 한국적 현상만은 아니다. 세계 정치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를 거듭 중이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어떤 것이라고 일률적으로 정의 내리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공통분모를 찾자면 ‘대의 민주주의’를 건너 뛴 ‘직접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점이다. 또한 나치즘이나 유럽의 민족주의처럼 내(內)집단과 외(外)집단을 구분하면서 외집단에 대한 혐오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는다. 반면에 포퓰러리즘은 표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불사하는 한국 정치의 행태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포퓰리즘은 정치를 누가 이끌어 가느냐를 놓고 겨루는 주도권 다툼의 문제다. 지배 엘리트와 다수 대중의 대결 구도를 만들면서 대중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그 폐해를 떠나 하나의 담론으로서 따져볼 가치는 있다.

이에 비해 포퓰러리즘은 노골적인 매표 행위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이와는 차원이 다른 ‘정당의 타락’이다. 두 단어가 혼용되는 한국에서 필자가 굳이 그 차이점에 주목하는 이유는 한국의 기득권 정당들이 그만큼 망가져 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을 보면 권력의 원초적 속성에 대해 만감이 교차한다. 우선 이들은 심각한 ‘권력 금단’ 증세를 보이고 있다. 마지막 남은 국회 권력을 부여잡고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 못하고 있는 걸 보면 그렇다.

힘들 때 사람의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고 ‘본 모습’을 새삼 확인하기도 한다. 그들의 ‘민주’나 ‘진보’는 소신이나 신념이 아니라, 원래부터 권력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 그쪽이 유리해 보여 그리로 간 것이다. 국회 다수당으로서 온갖 반민주적 수단들을 동원하면서 권력의 오기를 부리고 있는 것이나, 지난 정권 때 높은 자리를 차지한 인사들의 버티기 추태 등이 생생한 증거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점도 드러났다. 상대 정당이 실패하는 것만이 자신들이 사는 길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서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상대방이 잘못하고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합리적인 공론 정치는 설 자리가 없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선거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는 무슨 수를 쓰든 이겨야 되므로 민주당은 표가 될 모든 것을 싹싹 긁어모으는 중이다. 국민의힘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말과 정책을 갑자기 바꾸는 걸 보면 누구를 나무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최근 치러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반(反)대한민국 정당이었던 통합진보당의 뒤를 이은 진보당 후보가 당선된 것도 선거 제도의 맹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선거는 흔히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 다가가고 국가의 통합과 다양성을 조화시키는 제도적 장치라고 칭송해 왔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다르다. 한국뿐 아니라 선진국도 예외가 아니다. 공들여 쌓아 온 선거 제도가 ‘민주주의의 타락’이라는 허무한 결말로 치닫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는 유권자를 최대한 신뢰한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시민의 자격에 걸맞는 이성과 상식으로 옳고 그름을 구별하면서 꼭 필요한 공직자를 선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권력에 올인하는 정당의 선거 기술은 교활할 정도로 그보다 앞서가고 있다. 이들에게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단호한 각오는 이 시대 유권자들에게 필수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책임의 대부분은 정당의 몫이다. 포퓰러리즘을 스스로 자제하면서 민주주의의 게이트 키퍼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

최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언론에 ‘민주주의’라는 취재 영역이 새로 생겼다고 한다. 정치부·경제부 등 기존의 언론 부서와는 별개로 민주주의와 관련된 각종 이슈를 다룬다. 철저한 상호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것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민주주의도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도 민주화 이후 지금처럼 정치가 바닥에 추락한 적은 없었다.

역으로 보면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통로도 선거라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선거가 바로 서면 정치를 바꿀 수 있다. 유권자 시민의 각성에 마지막 기대를 건다.

홍찬식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정기 후원
일반 후원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스카이데일리는 온라인 판 스카이데일리닷컴과 32면 대판으로
매일 발행되는 일간종합신문 스카이데일리(조간)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후원자 분들께는 지면광고를 하고자 하실 경우
특별 할인가격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