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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어느 순간 딱 반짝이는 순간이 있어요. 자신만의 북극성이 나타나는 순간이죠.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예술가라면 그 순간을 붙잡을 줄 알아야 하고 만들 수도 있어야죠.”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에서 별별극장을 운영하는 석수정(45) 대표는 2010년대 초반부터 ‘존재적 움직임’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커뮤니티 댄스(Community Dance)를 주도해 온 실력 있는 안무가이자 예술기획자다.
1980년대 영국 등 유럽에서 주목받은 춤의 장르인 커뮤니티 댄스는 오로지 춤을 통해 만난 다양한 사람들이 춤으로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표현하며 삶의 즐거움을 나누는 활동이다.
사전에 서로 미리 약속해 놓고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약속된 춤을 추고 사라지는 집단 군무인 플래시몹(flashmob) 댄스도 커뮤니티 댄스의 한 유형이다. 석 대표는 무용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수업한 후에는 반드시 공연으로 마무리한다.
“존재적 움직임이란 어떻게 보면 창작무용을 조금 더 의미있게 말하는 건데요. 자신만의 감성에 집중해 스스로 만들어 낸 춤을 의미해요. 그게 본인이 생각하기에 ‘나라는 존재와 맞는 것 같아’라고 느껴지면 존재감이 생성되는 거죠. 현란하게 움직임을 배워 가는 과정만이 꼭 춤을 배우는 방법은 아니죠.”
이러한 수업이 처음엔 누구나 어색하지만 자꾸 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석 대표는 단언했다.
“분위기 파악하는 데 보통 3개월이고요. 어느 정도 따라가기 위해선 6개월 정도 시간이 필요해요. 이후 정말 자신만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더 긴 시간이 걸리죠. 3년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석 대표는 2011년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 실험센터에서 실시한 커뮤니티 댄스 공모작인 ‘햄릿 게임’을 무대에 올린 것을 시작으로 비전공자와 전공자 간 경계를 허물며 매년 다양한 주제로 공연을 펼치면서 국내 커뮤니티 댄스 활성화를 위해 힘써 왔다.
어렵게 도전한 무용의 길… 척박한 당시 공연계 현실에 실망
석수정 대표는 1979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다. 교통 요지인 영주에서 고등학교까지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철도 공무원이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덕분에 기차를 유난히 많이 탔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땐 학급 반장이자 기독교 서클 창립을 주도한 멤버였다. 동네에 양계장이 많았던 터라 달걀을 후원받아 전교생에게 부활절 달걀을 돌릴 정도로 학교 행사를 기획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 TV에 나오는 주말의 명화에서 ‘플래쉬 댄스’ ‘그리스’ ‘페임’을 보면 그 춤을 따라하고 싶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런 모습을 눈여겨본 할머니가 발레와 한국무용을 가르치는 학원에 등록시켜 주면서 처음 무용을 접했다.
“할머니는 멋쟁이였어요. 구두와 한복이 많아서 온 동네 애들을 불러 놓고 조선왕조 500년 놀이를 많이 했죠. 어르신들 말로는 제가 걸음마 떼면서부터 국자를 들고 춤추고 노래를 했다고 해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공부에 집중하겠다는 생각에 무용을 포기했다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2 무렵 무용을 다시 하고 싶다는 열정이 샘솟았다.
“연극·춤·뮤지컬이 마냥 좋았어요. 현대무용을 12살에 처음 보았는데 무척 마음이 끌렸어요. 그러다가 고2 때 5년 만에 무용을 다시 하려다 보니 몸이 굳은 상태라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죠.”
하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순탄치는 않았다. 설상가상 당시는 사회적으로도 총체적인 경제난국이었다.
“제가 IMF 세대인 98학번이에요. 처음에 숙대 무용과에 합격했는데 등록금이 없어서 국립인 안동대 체육학과(무용 전공) 장학생으로 입학했죠.”
지방 도시에서 살았던 그는 상대적으로 기회가 적은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동대와 한양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한양대에서 공부할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 그후 중앙대로 편입하면서 더욱 공부에 매진했다. 열심히 대학 생활을 한 그는 중앙대에서 과(科) 수석을 하면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교양과목에서도 A+를 받기 위해 모든 과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대학 생활은 학교를 옮겨 다니느라 좀 바빴어요. 대학생 때 독립예술인 축제인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등 대학연합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했어요. 한양대에 다녔던 대학 2학년 땐 블루사이공이란 창작 뮤지컬로 데뷔했죠.”
공연장 매표소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학업을 근근히 이어갔던 그는 꿈꿔 왔던 뮤지컬을 꼭 하고 싶어 학교 방학 기간을 활용해 블루사이공 공연에 참여했지만 열악한 한국 공연계의 현실에 낙담했다.
“6월부터 연습해서 8월에 공연이 시작됐고 9월에 딱 끝나더라고요. 3개월간 그렇게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습을 하고 공연까지 마쳤는데 그때 받은 돈이 모두 합쳐 불과 15만 원이었어요. 당시 우리 공연계의 현실이었죠.”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그는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 내고 대학을 졸업한 뒤 2003년 대구시립무용단에 들어갔다. 당시 대구시립무용단은 전국 유일의 현대무용단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그는 1년 반 동안 몸담았던 무용단을 그만두는 큰 결단을 내렸다. 그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에 들어가 자신만의 길을 걷기 위한 창작 안무 영역에 몰두했다.
열정적인 안무가였던 그는 2005년 독립예술인 축제인 프린지 페스티발에서 ‘야쿠르트팔이 소녀’ ‘구멍가게 소녀’ ‘바다엔 젖은 가방들이 떠다닌다’를 무대에 올렸다. 2006년엔 와우북 페스티발의 ‘책 속에 갇힌 라푼젤’ 공연, 2007년엔 제1회 서울공연예술제 댄스 컬렉션, CJ 영 페스티발 ‘오렌지 도마뱀’ 본선 공연 등 수많은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려 왔다.
어머니가 된 후 예술 교육자로 변신… 공감능력이 강점
2007년 결혼한 그는 육아로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지만 1남1녀를 둔 어머니 역할을 위해 공연을 주로 하던 안무가에서 벗어나 예술 교육자로 변신에 성공한다. 이를 위해 단체에 얽매이고 소속되는 대신 프리랜서의 길을 선택했다.
“출산 후 일과 육아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형을 바꾸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공연을 주로 하던 삶에서 예술 교육으로 전향했고 소속이 되기보단 프리랜서를 선택했죠. 그리고 함께 공부할 사람들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지금도 독서 모임을 하고 있죠.”
그는 예술 교육자로서 자신의 강점을 공감 능력이라고 꼽았다.
“공감 능력은 커뮤니티 아트를 하는 데 꼭 필요한 능력이죠. 대상에 따라 다르게 피드백하고 대화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동기부여를 잘해야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어요.”
석 대표는 무용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과 공연을 하는 바쁜 와중에 인생의 낙으로 삼는 것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큰 아이가 어느덧 중3이 되었어요. 두 아이가 잘 독립하고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고 건강한 공동체 속에서 살기를 바라죠.”
석 대표는 2020년 ‘빛나는 사람들의 별별이야기’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창작공간 겸 소규모 극장인 별별극장을 만들었다. 문화도시인 과천시의 민간극장 1호다. 그는 이곳에서 예술가와 시민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주선해 마을공동체를 위한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며 지역 사회 문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 모두가 특별한 존재인 별이라고 생각해요. 별별극장은 마을극장을 꿈꾸며 공연과 수업 그리고 창작과 실험을 하기 위해 출발한 곳이죠. 예술과 나·사람·마을이 함께하자고 하는 공간 이념을 갖고 있어요. 퀄리티 높은 마을공동체 기반 공연 및 문화기획 활동을 하면서 이웃들에게 지역의 특색을 갖춘 다양한 문화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요.”
[석수정 대표 프로필]
△1979년 경북 영주 출생 △2002년 중앙대 무용학과 수석졸업 △2003년 대구시립무용단 입사 △2005년 중앙대 연극영화과 강의 △2012년 SCF 서울국제 안무 페스티벌 ‘누가 호랑이의 꼬리를 보았는가’ 대극장 공연 등 다수 △2014년 창작집단 움스 대표 △201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전문사 졸업 △2017년 한동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공연영상전공 피지컬씨어터 강사 △2020년 별별극장 감독 △2020년 별별문화기획 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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