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85] 하늘의 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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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연재소설

‘하늘의 뜻’은 백성을 아끼는 것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5-08 08:50:02

“기탄없이 말해 보거라. 당시 궐의 분위기는 어떠했는가?”

고종이 독촉했다.

“전하, 소인네가 나이 많은 상궁들에게 들은 것은 있사옵니다. 정조 대왕 때까지 조선은 평화롭고 안정되었으나. 어린 나이로 즉위하신 순조 임금님 이래로 세도가가 위력을 떨치고 국왕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백성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엄 상궁은 입을 가렸다.

“전하, 소인의 입방정을 벌하여 주옵소서. 그만, 불경한 말씀을 올렸나이다.”

엄 상궁이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무엇 하는 게냐, 일어나거라.”

고종이 엄 상궁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대는 내게 들은 대로 말한 것 뿐 이니라. 그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조선은 예사 나라가 아니다. 하늘의 뜻(천명)을 받들어 태조대왕께서 만드신 나라니라.”

“도대체 하늘의 뜻이 무엇입니까?”

안정을 찾은 엄 상궁이 물었다.

“좋은 질문이니라. 우리는 단군임금님 이래로 백성을 돌보고 사랑하는 마음을 군주의 기본으로 삼았다. 고려에 와서 그 마음이 흐트러지고 신하들이 왕권을 넘보아 백성들이 힘들게 살게 되었다. 그래서 태조대왕께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세우신 나라가 조선이다. 조선은 단군께서 세우신 나라 이름인데, 다시금 조선이란 국호를 사용한 것은 ‘홍익인간’의 귀한 이념을 되새긴 뜻이 있다.”

“그렇다면 하늘의 뜻이 홍익인간이옵니까?”

고종이 호탕하게 웃었다.

“엄 상궁! 내가 자네를 총애하는 것은 총명함과 기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야. 그렇고말고! 예로부터 백성이 힘들어지면 하늘은 뜻을 바꾸어 백성을 돌볼 어진 이를 찾아 왕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그것을 가르친 분이 공자님이고, 그 ‘하늘의 뜻’은 다름 아닌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 바로 홍익인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전하, 소인네의 방정맞은 죄를 용서하시는 것입니까?”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그대가 잘못한 것이 없거늘!”

“그렇담 소인, 용기를 내어 전하께 하나 여쭈어도 되옵니까?”

“말해 보거라. 그대는 우등생이니라.”

고종이 기대에 차서 말했다. 엄 상궁은 용기도 있지만 이해력이 좋아 말이 잘 통했다.

“그런데 그 조선이 이렇게 허약해지고 백성들이 힘들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대는 정녕 총명하구나! 그것이야말로 과인이 매일매일 고민하는 문제이니라. 먼저 간 중전과도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를 나누었지.”

“중전마마는 참으로 지혜로운 분이셨습니다.”

엄 상궁이 뜻밖의 말을 했다. 자신을 죽이려 했고 내친 상전에 대해 객관적인 평을 내리고 있었다.

“너는 중전이 무섭고 싫지 않느냐?”

고종은 엄 상궁의 의외의 반응에 놀랐다.

“전하, 중전마마를 모시면서 저는 많은 것을 들었고 배웠습니다. 서책을 늘 가까이하시어 유학의 경전 뿐 아니라 중국과 조선 역사에 달통하셨고 들의 특징과 장단점을 모두 파악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정세와 조선을 향한 열강들의 움직임을 내다보고 계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