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91] 일본의 대조선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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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조선 국왕을 무능한 배신자로 만들려 합니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5-16 08:35:30

“공사님, 도쿄에 가시면 일본인들을 단호하게 대해 주십시오. 우리끼리 말이지만 히트로보 주일 공사는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슈페이예르가 베베르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호탕한 미소였다. 슈페이예르는 강경하고 베베르는 온화한 성격이었지만 고종의 망명을 겪으면서 두 사람의 마음은 하나로 화합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슈페이예르는 고종을 알현하고 일본으로 출발했다. 베베르 공사 와 슈페이예르 공사는 진한 포옹을 나누었다. 베베르의 아내 유제니와 슈페이예르의 아내 안나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짧은 이별의 정을 나누었다.

베베르는 그날 밤 여느 날처럼 고종과 대화를 나누고 집무실로 돌아왔다. 바쁜 하루였다. 본국에 보낼 보고서 작성이 급했다. 호랑이가 웅크린 스탠드 불을 밝히고 베베르는 로바노프 외상에게 보내는 글을 작성했다.

“국왕이 공사관으로 이어한 후 일본인의 거류지는 포위되었고 많은 일본인은 가족을 모국으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일본은 과거 자신들이 가졌던 조선에 대한 열정을 단념하면서 우리 러시아와 함께 조선 문제를 조정해야 함을 비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간 일본의 추잡한 행동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각국 언론에서 나왔습니다. ‘Japan Daily Mail’ ‘Kobe Chronicle’같은 언론에서는 조선 왕비시해의 폭력과 반법률적 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우리에게 적대적이었던 영국 언론조차도 최근 아무런 정치적 압력 없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이루어진 개혁은 합법적이라며 수차례에 걸쳐 강조했습니다.

일본의 대조선 정책이 지닌 특징, 즉 일본의 주요과제는 이렇습니다. 첫째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일본과 결탁한 대신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국왕을 무기력하고 무능한, 결국에는 신성한 권리와 백성들의 추종을 배신한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조선에 대한 간계로 가득한 일본 고관들의 위선적 성명만으로 일본의 정책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조선에서 강화된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일본과 조선 문제의 평화적 협약을 체결하려는 것이 러시아 외무성의 입장이었다. 러시아는 일본과 껄끄러운 마찰을 원하지 않았다. 베베르에게도 고종을 보호하고 그의 안전에 유념하면서 일본과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자제하라는 하명이 내려진 상태였다.

베베르는 보고서 작성을 마치고 펜을 놓았다. 어깨가 결려왔다. 국왕이 공사관으로 온 이후 베베르는 격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기존 공사관의 업무도 있는 데다 조선 국왕을 모시는 일과 조선 정부의 일이 보태졌다. 본국과 긴밀한 업무보고와 협조사항도 중요했다. 거기다가 한 지붕 두 가족 생활도 감당해야 했다. 슈페이예르가 일본으로 떠나고 나니 허전하기도 했지만 홀가분하기도 했다. 이인삼각의 보조를 맞추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부인 유제니가 손탁과 함께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베베르는 깜짝 놀라 깨어났다. 잠깐 동안 깊은 잠에 든 것이다. 그는 얼른 안경을 고쳐 쓰고 푸근한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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