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되어야 할 또 다른 적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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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뀌어도 정파적 행태 지속할 토대 마련돼
편파방송 호위하는 文 정권 인사들 퇴출 급선무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5-23 09:00:11

2008년 통합 규제 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 출범과 함께 방송·통신 두 영역의 심의기능도 통합되었다. (구)방송위원회의 방송 심의기능과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통합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출범한 것이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의 공익성이나 사회적 영향력을 중시하는 방송심의와 전송 내용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원칙으로 하는 통신 규제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방송과 통신 융합이 점점 가속화되고, 방송서비스가 온라인 네트워크로 이전하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서 심의규제 통합이 불가피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최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OTT 서비스들이 전통적인 방송매체를 추월해 미디어 시장 주도권을 쥐게 된 현실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잘 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방송·통신 내용심의를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독점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의견도 적지 않았다. 방송내용에 대한 심의를 민간 자율규제로 전환해 정치권력이나 정권에 의한 통제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에서였다. 하지만 민간 자율심의는 규제 효과 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현실적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은 정부·여당과 야당이 각각 6:3으로 추천해 구성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여·야 추천위원 3:2로 구성하는 방송통신위원회와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정파성이 내재되어 있는 기구다. 결국 다수결 구조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정권으로부터의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모든 분야에서 ‘다수의 폭력’을 거침없이 행사했던 지난 정권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정권의 충성스러운 방송통제 전위대 역할을 했다.

지난 정권 내내 연일 쏟아졌던 편파 방송들에 대한 심의 제재는 아예 없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친(親)정권 인사들이 진행하는 정권 호위 프로그램들이 보란 듯 창궐하였고, 거짓·막말 방송들이 거침없이 전파를 타는데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침묵하거나 의미 없는 솜방망이 제재를 내리는 데 그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최소한의 공정한 심의라도 이루어졌다면,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어찌 그렇게 활개 칠 수 있었을까 지극히 의문이다.

반면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보수성향의 종합편성채널들에 대해서는 심의·제재를 통해 강하게 압박했다. 문재인 정권 집권 초기에는 공정성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보수성향 정치 패널들을 대거 퇴출시키기도 했다. 또 심의 제재 결과를 재승인 점수에 반영하는 통제기제를 적극 이용했다. 아마도 최근 전모가 드러나고 있는 TV조선 재승인 점수 조작이 아니더라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결과들이 편파적 심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이용한 압박에 정권 친화적인 단체들과 공조 체제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는 위원회에서 직접 인지한 내용과 외부에서 신고된 내용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위원회가 가지고 있는 인력 등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후자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이용해 친정권 단체들이 조직적으로 정권 비판적인 방송들을 신고하고, 위원회가 이를 심의·제재하여 압박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공조 체제는 정권이 바뀌어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파적 행태들을 지속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다. 김어준은 퇴출되었지만 많은 편파적 시사 프로그램들이 여전히 방송가를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 공영방송은 근거 없는 허위보도를 이용해 정권을 흠집내기 위한 가짜뉴스의 숙주가 되고 있다. 최근 대통령 미국 순방 보도에서처럼,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친야당 성향의 패널들만 일방적으로 출연시키는 불공정 편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물론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의 임기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직접적 이유다. 하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법적 구조와 심의제도의 허점들도 또 다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2008년 출범 당시 우려되었던, 임기가 보장되는 정치적 안배 형태의 위원회 기구가 내재하고 있는 정치적 독립성 침해 가능성이 현실이 되고 있다.

당연히 굳건히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장악하고 편파방송을 호위하고 있는 지난 정권 인사들을 구축(驅逐)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은 맞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방송·통신 내용심의 기능을 민간 영역으로 대폭 이양하고, 국가권력의 영향력을 최소화해 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 아울러 정부 기구와 민간이 협력하는 공동규제(co-regulation) 방식을 통해 방송심의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제도적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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