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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업체 노동조합이 원청 사업자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 사용자의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소위 ‘노란봉투법’이 24일 국회 본회의 상정됐다. 하지만 본회의를 통과해도 양곡법, 간호법에 이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노사관계의 근간을 흔드는 내용이 있으나 충분한 논의 없이 급하게 통과된 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법도 얼마 전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처럼 원래 발의된 내용에서 상당 부분이 완화되기는 했다.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에는 근로자 개인을 상대로 아예 손해배상청구를 못하거나, 손해배상청구액의 상한을 못 박아 버리는 내용도 있었다.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면제해 주는 규정도 있었다. 사용자의 재산권이나 경영권을 침해할 소지도 크고 형사 면책으로 파업이 급증할 우려도 있어서 논의 과정에서 제외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통과된 조항들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파장이 만만치가 않다.
우선 손해배상 청구권 행사의 제한을 보자. 노조의 활동으로 손해를 입은 사용자가 노조나 근로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를 할 경우에 법원은 배상의무자가 배상할 금액을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정하게 한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이 말이 당연해 보일 수 있다. 각자의 책임만큼만 배상하는 것은 정의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행법상으로는 여러 사람이 관여한 ‘공동의 불법행위’의 경우에 피해자(즉 원고)가 청구하면 가해자(즉 피고)는 어느 1명이라도 손해 전부를 배상하게 되어 있다. 가해자 각자가 얼마씩 책임질지는 그들 내부에서 따로 정할 문제이다. 예컨대 가해자 중 1명이 손해 전부를 배상한 경우에 그 가해자는 자기 몫을 넘게 배상한 금액을 다른 가해자들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해서 받아내야 한다. 가해자는 소송을 두 번해야 할 수 있지만 피해자는 그만큼 손쉽게 배상받을 수 있다.
그런데 노란봉투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소송을 제기할 때 파업을 주도한 노조 간부별로 기여도를 일일이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개별 기여도를 입증하지 못하면 소송에서 패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조 내부자가 아닌 사용자로서는 간부들의 기여도를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 그래서 입증이 불가능할 수 있다. 사용자가 제시한 증거를 놓고 판사가 기여도를 공정하게 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도 환상에 가깝다. 판사가 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근로자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의 손해배상액을 부담시키는 것은 가혹하다는 반론이 있다. 노동조합의 정당한 활동마저 봉쇄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약점이 있는데 손해배상 청구의 원인은 어디까지나 불법파업 같은 불법행위이지 합법행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손해배상 소송ㆍ가압류 실태조사 결과 및 해외사례’(2022. 10)에는 손해배상청구 원인의 절반은 사업장 점거에 의한 생산라인 중단이고 이 과정에서 대부분 폭력이 수반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폭력·파괴행위나 생산시설 같은 주요 업무 시설을 점거하는 쟁의행위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법만 그런 것도 아니다.
작년 여름에 문제됐던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파업도 생산시설인 도크를 점거한 것이어서 엄연한 불법행위였다. 이 법의 상징인 ‘노란봉투’가 2009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쌍용차 파업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이 파업 역시 불법이었다. 생산시설을 점거했기 때문이다. 쌍용차 파업의 또 다른 쟁점은 파업의 대상도 불법이었다는 점이다. 회사의 정리해고를 반대했는데 구조조정처럼 고도의 경영판단에 속하는 사항은 파업의 대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물론 근로기준법은 경영상 이유로 인한 해고를 엄격하게 제한하여 근로자를 보호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개정안은 노동쟁의의 대상을 확 넓혀 버렸다. 현행법상 노동쟁의는 근로조건의 ‘결정’에 분쟁으로 정의되어 있는데 여기서 ‘결정’ 문구를 빼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 법대로라면 앞으로 근로조건에 관한 것이면 단체교섭을 거쳐서 결정된 것도 다시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단체교섭의 대상이 아닌 정리해고도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된다. 필자가 우려하는 점은 그동안 불법이던 정치파업(political strike)이나 동정파업(sympathetic strike)마저도 합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를 지지·지원하는 목적의 파업을 동정파업이라고 하고, 제도 개선이나 정치적 요구를 성취하기 위한 파업을 정치파업이라고 한다. 해당 사업장의 사용자가 교섭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닌 것을 쟁의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이런 파업은 현재는 불법이다.
그런데 노란봉투법이 제정되면 다른 회사의 단체교섭 결과가 자기 회사에서의 근로조건에도 영향 줄 수 있거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나 입법에 대한 찬반 파업도 가능할 수 있다. 예컨대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법안 통과를 주장하는 파업도 가능한데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파업이 늘어날 수 있다.
파업은 노동조합에게 인정된 헌법상 권리이지만 사용자의 재산권이나 경영권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무한정 인정될 수는 없다. 기업에는 노조원 아닌 직원과 협력업체의 생존권도 걸려 있기 때문에 단순히 사용자의 재산권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노란봉투법을 밀어붙인 민주당과 정의당이 이를 모를 리는 없는데도 하필 정권이 바뀐 뒤 밀어 붙이는 것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특히 과반이 넘는 의석을 갖고도 정권을 잃고 돈봉투 사건, 김남국 사태 등으로 위기에 처한 민주당이 이 법을 매개로 민주노총의 힘을 빌리려는 의도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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