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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6월14일 ‘법의 가면을 쓴 특권’이란 본지 칼럼을 통해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상임대표 장기표·최성해·박인환)가 추진 중인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을 소개한 바 있다. 186가지 국회의원 특권 중 정치자금법에 따른 특혜를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연간 1억5000만 원이 넘는 세비 외에 1억5000만 원의 정치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고, 총선과 대선·지방선거가 있는 해에는 후원금을 2배로 모금할 수 있다. 이를 법률로 허용해 준 것은 국회의원들만 몰래 누리는 ‘법의 가면을 쓴 특권’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법의 형식을 띤 특권을 폐지하는 방법은 그 법을 개정 또는 폐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이 특권의 주체이기 때문에 이들이 스스로 법을 개폐할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서 특권폐지운동 같은 국민운동으로 국회의원을 압박하거나 헌법소원을 제기해 위헌 판단을 구하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가능한데 마침내 이 두 가지가 현실화되고 있다.
우선 고위공직자 특권폐지 국민운동에 대한 호응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 운동의 상임대표를 맡은 이는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과 박인환 변호사다. 50년째 재야 운동을 이끌고 있는 장기표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최성해 전 총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씨가 재직했던 동양대 총장 시절 조국 씨 부부의 동양대 표창장 위조 행위를 비호하지 않고 위조된 것임을 밝혀 세상에 알려졌다. 총장직 사퇴라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진실을 밝힌 것이다. 박인환 변호사는 전직 검사이면서도 법조계 전관예우 철폐를 주장해 온 양심적 법조인이다.
이런 양심 인사들이 주도한 운동이 공식적으로 출범한 4월16일 광화문에서 열린 출범식에 1000명 시민이 호응했다. 5월31일에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수천 명 시민이 모였고 서로 손을 잡아 의사당 주변 2km를 ‘인간 띠’로 포위하여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압박하는 퍼포먼스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카이데일리를 제외한 주류 언론에는 이런 것이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특히 광화문 시위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사의 코앞에서 벌어진 일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지난달 14일 국회의원 특권의 핵심인 정치자금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된 이후 상황이 반전됐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2배로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게 한 정치자금법에 대한 헌법소원 제기로 주류 언론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조선일보가 7월18일 특권폐지운동본부의 장기표 상임대표를 인터뷰(‘많은 특권 가지고 정치도 일도 안 해, 불체포 등 186개 내려놔야’)하면서 장기표 대표의 입을 빌려 이 운동을 자세히 소개했다. 장기표 대표는 ‘특권 폐지 문제는 우리 사회 기득권의 카르텔을 깨는 사안으로, 특권을 폐지하는 것이 바로 민주화운동’이라고 강조했다.
3일에는 동아일보 이정민의 퍼스펙티브에 ‘파격적 특권 포기한 정당이 총선서 지지받을 것’이란 칼럼이 게재되었다. 조선일보가 인터뷰를 빌려 운동을 소개했다면 동아일보 칼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특권 폐지의 당위성을 역설한 셈이다. 칼럼은 국회부의장이 보좌진도 없이 손수 커피를 타서 방문객을 대접하는 나라 스웨덴에서 법인카드로 초콜릿을 샀다는 이유로 부총리가 퇴진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국회의원 특권을 비판했다. 또한 이번 헌법소원을 소개하면서 186개나 되는 특권을 누리고 국민소득 대비 세계 최고의 보수를 받으면서도 선거공영제라는 명분으로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액을 돌려받아 2배로 모금한 후원금까지 고스란히 남기는 부조리를 비판했다. 정당의 특권도 지적했는데, 선거 전에 미리 선거보조금을 받고 선거 후에는 비용을 또 보전받는 기막힌 ‘선거테크’로 정당은 선거를 치를 때마다 재산을 불린다는 것이다.
국회의원과 정당은 선거 때마다 특권 폐지를 외치지만 득표 전략에 그칠 뿐이었다. 특권 폐지의 단골 사례인 불체포특권이 그렇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공약이었지만 정작 체포영장이 청구되자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보란 듯이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 버렸다. 그러고는 민망했는지 혁신안이라면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서약했다. 그러나 ‘정당한’ 영장에 대해서만 포기하겠다는 황당한 단서를 달았다. 법원이 판단할 ‘영장의 정당성’을 국회의원들이 판단하겠다는 것은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반헌법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심부름꾼 임무를 망각한 특권 국회에 국민의 심판이 내려질 때가 되었다고 보고, 그런 의미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헌법소원에는 문병호·이희규 전 국회의원과 헌법연구관 출신인 황도수 건국대 교수 그리고 필자도 당사자로 참여하고 있다. 다른 정치인과 달리 현역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국회의원 총선거 시에 3억 원까지 후원금을 모금하고 또 선거 후 전액 보전을 받아서 후원금을 고스란히 남길 수 있게 한 정치자금법은 평등권 위반 소지가 매우 크다. 나아가 자신이 출마하지도 않는 대통령 선거와 전국동시지방선거 때에도 2배로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게 해 준 것 역시 과잉금지원칙 위반 소지가 크다.
헌법소원 인용을 낙관할 수는 없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제정한 법을 위헌 무효 선언하는 헌법소원은 요건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고 사법기구의 판단을 구하는 시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가 내년 총선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어 정치개혁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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