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세상] 왜곡과 선동만 있는 5·18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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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8-10 06:31:10

광주 5·18의 유공자 중 상당수가 가짜라는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사건의 실체에 대한 규명도 여전한 숙제다. 아직도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만 존재할 뿐 객관적인 성찰까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사건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증언 등을 밝히면 처벌하도록 하는 법까지 있다.

그러나 이 법은 비판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막지만 5·18을 신봉하는 쪽이 과장하고 왜곡하고 선동하는 것은 모른 척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맞고 네가 말하는 것은 틀린다는 것을 법으로 보장한다는 건가?

광주 사태가 영화로 재현되기 시작한 것은 ‘오! 꿈의 나라’(1989)에서부터다. 16mm 필름으로 제작된 90분짜리 이 영화는 사태가 진정되고 난 후 시위대의 한 명이었던 대학생이 광주를 떠나 경기도 동두천으로 흘러든 뒤 여러 일을 겪으며 ‘한국 속의 미국’을 체험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당시에는 이런 종류의 영화를 만들고 상영을 시도하는 행동 자체가 운동이었다. 5·18에 적대적인 세력 비판과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전면에 세운 첫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제도권 밖에서 만들어진 운동권 영화이면서 제도권을 흔드는 선봉 역할을 했다.

이에 비해 ‘부활의 노래’(1991)는 제도권 영화계에서 처음 만든 ‘5·18’ 영화인데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기보다는 운동권의 기억과 의식에 어떤 형태로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부분에 더 비중을 두었다.

북한에서도 5·18을 소재로 한 ‘님을 위한 교향시’(1991)를 내놓았다. 1·2부로 구성된 이 영화는 광주 시민 봉기를 찬양하고, 계엄군을 미(美)제국주의(미제)의 앞잡이로 매도하는 내용을 담았다. 시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는 공수부대원들에게 강제로 환각제를 먹여 미치게 만든다는 등의 장면도 나온다.

‘꽃잎’(1996)은 5·18 이후 종적을 감춘 한 여자아이를 찾아나서는 과정을 통해 그 사건이 얼마나 참혹했는가를 보여 준다. 시위 현장에 있던 무고한 시민이 일방적으로 희생되었다는 내용을 하이라이트로 강조한다.

‘박하사탕’(1999)은 광주 사태를 다룬 영화 중에서는 가장 사색적이고 성찰적이라고 할 만하지만, 계엄군은 무자비한 폭력 집단이고 광주 시민은 오롯이 선량하고 무고했다는 이분법적 설정은 다른 영화들과 다를 바 없다.

‘화려한 휴가’(2007)는 5·18 소재 영화 중에서 규모나 내용 면에서 대표작으로 꼽히지만 현장에 출동한 군인은 초법적 폭력집단이고 시위대의 행동은 선량한 사람들의 자위적 반응이었다며 극단적으로 양극화한다. 시위를 막던 군부대가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을 가하는 장면은 관객의 동의를 얻기 위한 의도적이며 악의적인 왜곡이다. 또 다른 눈속임은 주요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빠짐없이 지역어 대신 서울식 표준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아따 징한 거” “해 부러요” 같은 광주 지역어는 주연급 캐릭터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다. 언어 때문에 캐릭터가 희화화되는 것을 숨기려는 교묘한 장치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그 자체로 ‘화려한 거짓말’과 선동을 유도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26년’(2012)은 광주 5·18을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라 특정한 인물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사건으로 보고 그 책임자를 처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택시운전사’(2017)는 1980년 5·18 당시 외국 기자로서는 유일하게 현장에 잠입해 시위 과정을 촬영한 독일기자 유르겐 힌츠피터를 광주 현장으로 안내해 준 택시기사 김사복 씨를 모델로 삼았다. 영화 개봉 후에 독일 기자를 현장까지 태워 준 인물은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서민 택시운전사가 아니라 호텔에서 고급 손님을 상대하는 운송사업자였으며 이전부터 운동권과 교류가 있는 것이란 의심을 받았다. 독일 기자를 현장에 태워다 준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고 영화에서 밝혔지만 결국 설정 자체가 픽션인 것이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도 제작자나 감독 누구도 사실과 다르게 이야기를 과장한 것에 대해 사죄하지 않았다.

당시 현장을 취재했다고 해도 그곳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여 주지는 못한다. 일방적 시각에서 ‘내가 본 것’만이 전부이고 진실인 것처럼 생각한다면 객관적 사실과는 다른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조차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 선택적 입장만을 보여줄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까지 나온 5·18 소재 영화들은 선악의 극단적인 대립을 기본 구도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어느 하나 다를 게 없다. 5·18을 역사적 사건으로 보면서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건으로 재현하며, 군인들을 가해자로 설정하는 것을 넘어 잔혹한 악마 이미지를 조작하는 한 왜곡은 심해질 뿐이다. 새로 출발한 ‘민간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조희문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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