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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북한에서 관리하던 수출품 생산 공장 가운데 니트 제품을 만드는 남포편직공장이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원료와 전력 부족으로 그 공장도 멎어섰다. 어느 날 생산과장에게서 급히 좀 내려오라는 전화가 왔다. 나는 차를 타고 바로 공장으로 갔다. 정문에서 나를 맞이한 생산과장이 미안하다며 하는 소리가 자기네 생산과 당 세포비서인 송 동무의 아내가 이혼하겠다며 집을 나갔다는 것이었다.
송 세포비서의 아내는 나도 잘 아는 예의 밝고 반듯한 여자다. 공장에 갈 때마다 송 동무의 집에 가서 여러 번 술도 마셔서 안주인과도 잘 아는 사이인데 이혼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당시 북한을 휩쓴 식량난 때문이었다. 송 비서의 집은 시부모와 아이들 셋까지 7명이나 되는 대가족이었다.
당연히 다른 집보다 식량난이 더 무섭게 덮쳤다. 그러자 송 비서의 아내도 장마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편은 “세포비서의 아내가 장마당에 나가면 어쩌는가?”며 타박했다. 아내는 할 수 없이 조개잡이 배를 탔는데, 그때부터 외화벌이사업소에 있는 남자의 꼬임에 빠져서 가까이하며 도움을 좀 받았다고 한다.
그러자 인간들의 수군거리는 뒷소리가 공장 당위원회에까지 들어갔고, 송 비서는 당위원회에 불려가서 가정 혁명화를 못 했다고 비판을 받았다. 그날부터 송 비서는 아내를 쥐 잡듯 했다. 아내가 잘못했다고 빌었건만 사내의 구박은 도를 넘었다. 아내는 참다못해 아이들 셋은 자신이 책임을 지겠으니 이혼하자며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생산과장은 나를 보고 지금 송 비서의 아내를 자기 집에 데려다 놓았으니 만나서 좀 설득시켜 달라고 한다. 나는 설득시킬 자신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한번 만나나 보자며 과장 집으로 갔다. 송 비서의 아내는 나를 보는 순간 놀람과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며칠을 어디서 어떻게 지냈는지 지쳐서 금방 쓰러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뜸을 들이다가 “아주머니가 이러시면 어찌합니까?” 하고 설득을 시작했다. 울음을 그치고 설움이 분노로 변한 아주머니는 ‘다시는 꼴도 보기 싫은 남편’ 소리는 하지도 말라 했다.
아주머니는 다른 집들은 식량이 없어서 온 가족이 뿔뿔이 헤쳐졌지만 그래도 자신은 가정을 지키려고 별별 짓을 다 했다고 했다. 그런데 오직 당 세포비서라는 직위만 중시하며 아내를 무시하고 구박하는 그런 남편과는 절대로 같이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책임지도원 동지! 저를 설득시키려 하지 마십시오. 저는 저런 남편은 절대 필요 없습니다.”
이것이 그 아주머니의 마지막 답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노동당이 낳은 비극, 전체 북한 여인들의 피타는 절규였다. 능력 부족을 느끼고 밖으로 나온 나는 생산과장에게 송 비서의 부모님을 데려오라고 했다. 잠시 후에 송 비서의 부모님이 왔다. 그들은 나를 보고 인사도 못 하고 쩔쩔맸다. 내가 그들에게 “며느리를 버리려 하십니까?” 하고 물으니 “아니오!” 하며 펄쩍 뛰었다.
그래서 안에 며느리가 있으니 안정시켜서 꼭 데리고 가라고 당부하고는 송 비서는 어디에 있느냐 물었다. 그러자 부모님은 그가 집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있다며 하소연을 했다.
나는 송 비서의 집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야! 송○○, 집구석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하고 소리를 치자 그제야 푸시시 눈을 뜨고 알은 체를 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으나 꾹 참고는 일어나서 옷을 입고 가자고 했다.
“어딜 말입니까?”
“어딘 어디야? 당위원회에 가자우.”
“당위원회는 왜요?”
“야 이놈아, 네가 당 세포비서의 권위를 지킨다며 아내를 내쫓은 것이 옳은 처사인지 당위원회에 가서 밝혀 보잔 말이야.”
“싫습니다.”
“싫어? 그러면 지금 ○○ 엄마한테 잘못했다고 빌고 데려올 거야?”
“아니! 남편이 욕 좀 했다고 집 나가는 그따위 여자에게 내가 왜 빌어요? 갈 테면 콱 가라지요.”
입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저런 놈이 무슨 당 세포비서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며 기가 막혔다. 나는 홧김에 훌쩍 일어나 공장 당위원회로 갔다.
공장 당비서는 시당 회의에 가고 젊은 부비서만 자리에 있었다. 나는 부비서에게 찾아온 이유를 말하고 어쩌면 좋을지 물었다. 부비서는 “책임지도원 동지! 미안하지만 비서 동지가 돌아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했다. “부비서 동무, 그땐 늦습니다. 지금 송 동무의 아내를 생산과장네 집에 겨우 붙들어 놓았는데 아주머니는 자살까지 할 태도입니다. 시간을 끌면 위험합니다.”
나는 끝내 부비서를 설득해 함께 송 동무의 집으로 갔다. 그 사이에 생산과장이 송 동무의 집에 와 있었다. 부비서가 나타나자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부비서는 첫마디부터 엄한 틀을 세웠다.
“세포비서 동무! 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듭니까? 아주머니를 당장 데려오고 결과를 당위원회에 보고하시오.”
그러자 기세등등하던 송 동무는 한결 풀이 죽었고 그런 그를 생산과장이 데리고 나갔다.
나는 부비서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했고, 부비서는 나에게 안심하고 올라가라고 말했다. 친구인 송 동무를 당위원회에 고발한 것은 미안했지만 일은 순조롭게 풀렸다. 훗날 생산과장에게서 들으니 송 동무가 “그때 부비서가 집에 오지 않았으면 네편네를 다시는 집에 들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뻥을 친다고 해서 웃었다.
이것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의 가정들에서 일어난 많은 불행 중 하나일 뿐이다.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탄 나고, 부모 잃은 고아들이 굶어 죽고 얼어 죽었는지 역사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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