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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정강이 털 하나를 뽑아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중국 전국시대 때 이타주의자로 알려진 묵자의 한 제자가 위나라 철학자 양주(楊朱)에게 던진 질문이다. 양주는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평상시에 모든 게 오직 자기만을 위해야 한다는 개인주의를 주창했다.
양주는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사리사욕만을 구하는 이기주의자였기에 스승 노자도 그에 대해 “설령 그의 몸에 나 있는 털 한 오라기를 뽑아 천하의 사람들에게 득이 된다고 해도 그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할 정도였다. 여기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일모불발(一毛不拔)로, 지나친 이기주의를 대표하는 말이 됐다.
최근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는 문제가 우리 사회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의사 부족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부지기수라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대형 병원에서 5분 진료를 받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것은 이제 예삿일이 됐다. 의료 현장에선 의사 인력 부족으로 생긴 업무 공백을 다른 직종에 떠넘기는 불법 의료행위도 만연해 있다.
전문가들은 의료서비스 수요에 견줘볼 때 10여 년 뒤면 2만 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란 예상을 내놓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18년째 묶여 있는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를 공식화하고 나섰다.
하지만 의사들은 과중한 업무로 초죽음 상태라고 외치면서도 정작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에는 쌍심지를 켜며 반대하고 있다. 자신들의 희소성을 높이려면 동일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적을수록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규모 발표를 미루고 의료계와 다시 협의키로 하면서 의·정 간 정면충돌은 간신히 피했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다음 달 2일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양측의 생각 차이가 커 이날 회의에서도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은 낮다. 정부가 최소 1000명 이상 증원 방안을 제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자 의협은 정원의 10%인 350명을 마지노선으로 정했다가 다시 ‘증원 불가’로 맞서고 있다. 의협은 정부가 정원 확대 규모를 확정해서 발표하면 파업에 나설 수도 있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정강이 털 하나도 뽑지 않겠다는 현대판 일모불발의 행태가 바로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 의사들의 평균 연봉은 2억4000만 원으로 경제협력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의사 연봉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 의사 수가 유난히 적기 때문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OECD 평균 3.7명이지만, 우리나라는 2.5명에 불과하다. 칠레가 2.4명으로 가장 낮고 그다음이 대한민국이다.
부족한 의사 수와는 반대로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연간 15.7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병원을 찾는 횟수는 많지만 의사 수가 적다 보니 희소성 때문에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공공의료기관에선 3억 원이 넘는 연봉에 사택 제공까지 내걸어도 지원하는 의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우리나라 의사들의 고액 연봉을 문제 삼을 생각은 전혀 없다. 능력이 있으면 많이 버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의사가 부족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 국민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불상사를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결국 해법 중 하나는 의대 정원 확대다. 여기에 곁들여 지방 의대 개설과 지방 병원 의무 근무 기간, 그리고 취약 진료과의 의료수가 인상 등도 뒤따라야 한다.
대한의사협회가 제정한 ‘의사 윤리강령’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의사 윤리지침’이란 게 있다. 의사가 신뢰와 존경을 받으면서 윤리적인 의료를 펼치자며 스스로 만든 직업 지침서다. 해당 지침에는 ‘의료자원의 편성과 배분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보건의료체계를 유지·발전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법과 제도를 개선해 바람직한 의료환경과 사회체계를 확립하는 데 이바지한다는 내용도 있다.
의사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은 의사 자신들이 윤리지침에 입각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문제다. 사실 이 문제는 과거 문재인정부 때도 시도했지만 의사들의 단체행동에 막혀 손을 쓰지 못했다.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투쟁 아닌 투쟁을 하다 보니 정부도 그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이젠 의협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가장 먼저 염두에 둬야 한다. 의사 윤리지침에도 언급돼 있듯이 국민의 생명과 인류애를 중히 생각한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기득권만 고수하려 해선 안 된다. 정부와 함께 의대 정원 늘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 그것만이 고액 연봉과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길이다. 물론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이공계 인재의 의대 편중 문제도 간과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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