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희의 작가노트] 여윳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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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희의 작가노트] 여윳돈

임요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1-01 06:30:31

최근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잘 알고 지내던 후배 하나가 알고 보니 영리치라는 사실이었다.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 성공해서 서른 초반에 막대한 재산을 모아놓았다고 한다. 그동안 말을 안 해서 몰랐던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친구를 그럭저럭 오래 만났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자가용을 모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택시만 이용했다. 심지어 공항에 올 때도 그 먼 거리를 택시를 타고 와서 다른 사람들이 월급을 다 택시요금에 쓰는 거 아니냐고 물을 정도였다.

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단순했다.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이 집에서 멀다는 것이다. 아무리 멀어도 무슨 산 속에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서울 시내에 사는데 큰길로 조금 걸어 나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싶었다. 택시 승차를 월례 행사로 생각하는 나로선 그의 행동이 기이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택시를 타는 것 외엔 그가 따로 사치를 즐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깔끔하지만 수수한 차림이었고 이렇다 할 명품을 착용하지도 않았다. 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길바닥에 술값을 뿌리고 다니는 수준은 아니었다. 서울 택시를 자가용처럼 이용한다는 걸 제외하곤 평범한 30대 커리어우먼이었다.

사람이 여윳돈이 생기면 사치라는 것을 부릴 수 있게 된다. 돈이 없는 데도 낭비를 한다면 문제겠지만 여윳돈으로는 택시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뭘 하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여유가 있는 데도 구두쇠 노릇을 하는 사람이 어리석게 느껴질 때가 많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살 수 있을 때 빨리 사는 게 좋다.

나에게 여윳돈이 생긴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문득 떠오른 것은 외국으로 한달살이를 떠나는 것이었다. 그냥 잠깐 다녀오는 여행 말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한 달씩 살아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낯선 환경이 주는 두려움이고,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몸과 마음이 구태해지는 것이다. 여행지라는 두려움을 한껏 누린 뒤 그것이 구태로 변할 즈음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 그런 정도의 사치는 누려보고 싶다. 돈으로 여행이라는 즐거운 두려움을 살 수 있다면, 돈으로 구태에서 멀어질 수 있다면 나는 아낌없이 여윳돈을 쓰리라.

문제는 여윳돈이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런 게 나에게 주어질 날이 올까? 글쎄,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까.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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