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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5시 조금 지난 무렵.
전날 비가 뿌린 뒤인데다 입동(立冬)을 지나 해질녁 날씨가 뚝 떨어진 때문인지, 강변역을 빠져나와 동서울종합터미널로 향하는 행인들은 잔뜩 움츠린 채 종종걸음 일색이었다.
어둠이 살며시 내려앉은 터라 터미널은 을씨년스러워보였지만 지방으로 내려가려는 승객들로 부산하기는 여느날 못지 않았다.
60대 후반 아주머니 한 분이 강변역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 황급히 대합실로 들어오더니 장호원행 표를 창구에서 구입한다. 그리고는 목이 탄 듯 출발장 매점으로 가서 얼른 물 한 병을 집어든다.
이어 계산대에서 계산을 마치고는 잰걸음으로 15번 시외버스 홈에 대기 중이던 직행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기다렸다는 듯 금새 출발했다. 하마터면 다음 버스를 탈 뻔했다.
요즘 일 평균 1만 명 안팎, 주말과 휴일이면 2만 명 가까운 승객들이 이용하며 여전히 서민 이용객들의 발이 되고 있는 시외·고속버스 종합터미널.
112개 노선에 하루 1000대 이상의 시외·고속버스가 운행하는 서울종합터미널의 어제와 오늘이다.
연건평 4만7000㎡로 1987년 문을 열어 지금은 시설 노후화와 주변 교통체증의 주범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여전히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못지 않은 승객을 자랑하는 터미널이다.
50여 개 점포들이 임대차보호기간을 넘겨 퇴거당하고 남은 점포 몇곳이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터미널 안팎으로 당시 호황을 누리던 점포들마다 대부분 합판으로 차폐된 채 오가는 승객, 터미널 이용객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그런가 하면 내부 점포는 물론 승객 대합실도 우중충할 뿐더러 이용객 편의시설이라고는 한심스럽다. 승객 대기석 의자도 넉넉지 못하거니와 어두운 조명, 불쾌한 냄새 가득한 화장실, 승차장 대기석 등이 여느 시골 종합정류장 수준만큼도 안될 정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곳이 인구 1000만 명 수도 서울의 동부관문이라니 닉네임이 낯부끄러울 지경이다. 혹자는 이런 곳을 “흡사‘ 70~80년대 초반’ 서울의 모습을 보는 것같다”고 말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야심찬 100년 서울 대개조의 모델 케이스 격으로 도심 입체 복합·고밀개발이라고 하는 ‘서울판’ 허드슨 야드를 말하지만 그때까지는 아주 먼, 먼나라 얘기로 들린다.
HJ중공업과 신세계프라퍼티 인수조건과 그럴싸한 ‘현대화 프로젝트’ 이름아래 50~60개 가량의 내부 점포들을 몰아낸 뒤 인근 포차들 7~8곳이 성업인 것이 흡사 그렇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나마 동서울종합터미널 내부에 건물주와 계약관계상 남아 있는 식당 매점 카페 등 점포 몇 곳이 이용객 편의와 먹거리·쉼터 역할을 해주고 있는 현실이 전부다.
대합실에서 만난,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여성 이용객은 “매주 이곳을 이용해 시골로 오르내리지만 쾌적하지 못한 느낌을 늘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남아있는 점포는 본건물 1층 시외버스 대합실쪽 동편 소재 약국 식당 그리고 편의점 2곳, 카페 등 5개가 이용객 편의시설로서 전부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해당 건물주 격인 HJ중공업 측은 자신들의 건물인도 계약조건에 따라 잔금수수를 위한 건물 명도에만 골몰하는 느낌이다. 수많은 이용객 편의는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한진중공업을 인수한 동부건설 대주주의 HJ중공업이 따가운 눈총을 받는 이유다.
고객 편의를 헤아리는 대신에 인도 잔금수수 목적 외엔 안보이고, 건물 인수자 신세계프라퍼티는 ‘아직 인수완료되지 않은 상태라 나설 수 없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이용객의 편의를 생각지 못하는 이러한 민간 기업들의 잘못된 경영방식을 바로잡고 이끌어가야 할 서울시 역시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동서울종합터미널의 마스터플랜을 그려내야 하는 서울시는 앵무새같이 ‘공공기여’를 최대한 높여 시민들과 시에 이익이 더 많이 돌아오도록 하겠다고 외칠 뿐, 당장에 이용객 불편을 지켜주고 불만을 해소해 줄 궁리는 안한다. “과거와 달리 민간기업에 대한 ‘갑질’로 비칠 수 있어 조심스럽다”는 반응이다.
더 나아가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의 임기 내 ‘첫삽’을 뜨도록 한다는 계획에 치중한 나머지 밑그림 그리는 데만 골몰한다. 관련 부서 공무원들이 현장을 제대로 한번 살펴봤을지 의문시된다. 현장에서 답을 찾지 못하는 행정은 공허할 뿐이다.
이쯤 되면 HJ중공업·신세계프라퍼티 그리고 서울시가 ‘동상삼(三)몽’이라 아니할 수 없다.
건축심의 후 건물철거와 착공까지는 먼 일. 현재 남은 일부 점포마저 명도에만 관심있을 뿐 이용객 불편과 서비스 제고에는 별무관심으로 보인다. 서울시 또한 이에 대한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대비책이라도 마련해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다.
더욱이 스카이데일리 취재 결과 현재 남은 점포들 중에는 3년여 전 점포 명도와 관련해 서울시의 중재 과정에서 ‘장밋빛 공약’아래 적지 않은 회유와 협박의 정황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10일 현재 서울시는 최근 마친 사전협상조정협의회 결과에 따라 실질 토지에 대한 감정평가 등의 절차를 거쳐 최종 협상을 마무리짓게 되면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지구단위계획심의 절차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협상조정협의회는 2022년 구성해 그해 10월6일 1차 회의를 가진 이래 올 9월8일까지 모두 5차례 회의를 진행, 공공기여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본 골격을 도출해냈다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본격적인 건축심의와 인허가 절차는 내년 4월 이후에나 시작해 철거 및 재건축 착수는 2025년 중반에 들어서서야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이것도 사실상의 인수자인 신세계 이마트의 자금 사정 등이 원만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 상황에 따라서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로 바뀔 수 있는 문제라는 게 관가 안팎의 얘기다.
그럼에도 서울시를 비롯한 해당 업체 등은 인수 계약조건만을 내세우며 밀어부치는 등 무리한 교통행정정책으로 일관하는 듯해 세간으로부터 ‘거꾸로 가는 행정’에, ‘시민 이용객 불편 외면하는 경영’이란 비난을 양측 공히 받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동서울터미널’은 과거 광나루터를 오갔던 돛단배를 형상화해 한강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극대화한 건축 입면으로 조성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 시장의 임기는 2026년 6월 말이다. 오 시장의 구상대로, 수변 중심의 도심복합개발단지 완성을 통한 도시공간 대개조의 신호탄으로 쏘아올리려는 야심찬 계획에 앞서 시민 이용객들의 이용 서비스 만족도를 더 이상 훼손하지 않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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