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땅] 굿바이 에바 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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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땅] 굿바이 에바 페론

박선옥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2-01 06:30:30

‘거룩한 악녀이자 천한 성녀’. 이 모순적인 단어들로 조합된 평가를 받는 아르헨티나의 전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 그녀는 아르헨티나 노동자와 빈민계급에게는 성스런 국모였으며 가진 자와 기득권층에게는 냉혹한 악녀였다.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에바는 남편 페론과 함께 ‘페론주의’를 실천했다.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을 바탕으로 한 페론주의 이면에는 가난의 고통과 사생아라는 조소를 견뎌야 했던 에바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에바는 서민을 위해 봉사와 헌신을 아끼지 않는 영부인으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대중이 있는 곳이면 직접 다가가 그들의 손을 잡고 작은 하소연에도 귀를 기울여 즉각적으로 고충을 해결해 줬다. 이런 점이 노동자와 가난한 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는 페론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굳건히 다지는 토대가 됐다.

대중의 사랑 속에 민중의 성모로 불렸던 에바는 암으로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생애를 그린 뮤지컬과 영화가 만들어졌고,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 “아르헨티나여, 날 위해 울지 말아요(Don't cry for me, Argentina)”는 영화 OST로 아르헨티나 국민의 가슴에 두고두고 메아리쳤다.

하지만 에바의 신화는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 에바와 페론이 주도했던 정치·사회·경제를 뒤흔든 개혁 ‘페론주의’가 그 자체 모순과 한계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론주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체계적인 이념에 의해 진행된 것이 아니라 눈앞의 사탕발림 처방에 의한 선동적 복지정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더욱이 페론은 민주적 질서와 법치 대신 민중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모든 반대자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자행했다. 친인척들로 채워진 측근의 부정부패에는 눈 감고, 에바 자신은 도를 넘는 사치에 빠져들었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경제적으로는 국가 재정파탄을 가져왔다.

최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아르헨티나 국민은 ‘반페론주의’를 외친 야당 후보 하비에르 밀레이를 선택했다. 이는 이제 그들이 에바의 신화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아르헨티나는 더 이상 감상적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고, 더 이상 에바를 위해서도 울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선옥 논설실장

박선옥 기자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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