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 출신 5선의 이상민 의원은 그동안 산더미 같은 사법리스크를 짊어지고도 당권독재를 강화해 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입바른 소리를 해 오다 개딸의 희생자가 됐다. 그가 겉으로는 웃는 표정으로 결별사(訣別辭)를 했으나 속으로는 통곡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나마 그 진영에서는 가장 온건하고 합리적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아 왔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연상케 하는 그의 결별사는 구구절절 옳다. “이재명 대표 체제 이후 오히려 나아지기는커녕 이재명 사당(私黨)·개딸당으로 변질돼 딱 잡아떼고 버티며 우기는 반상식적이고 파렴치하기까지 한 행태가 상습적으로 만연됐다” “내로남불과 위선·후안무치·약속 뒤집기·방패 정당·집단 폭력적 언동·혐오와 차별·배제·무능과 무기력·맹종 등 온갖 흠이 쌓이고 쌓여 도저히 고쳐 쓰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통탄했다. 그러면서 “너무나 부끄럽고 양심의 가책이 무겁게 짓누른다”며 “더 이상의 기대와 노력은 무망하고 무용할 따름”이라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에서 이런 독한 말이 나온 것은 처음이고 국민의힘 김기현·윤재옥이 하는 말보다 센 말이다.

 

현역의원 중에서 흔치 않게 한 지역구에서 내리 5선을 한 중량급 정치인인 이상민의 탈당은 민주당과 이재명의 뼈까지 가격한 강펀치로서 여러 모로 영향을 줄 것이다. 여기에 이재명의 대안으로 주목을 받아 온 이낙연 전 총리도 오랜 침묵을 깨고 포문을 열었다. “국민 평균에도 못 미치는 정직성”이라는 등, 유난히 입이 무거웠던 그의 공격적 어조는 이재명 퇴진 운동과 신당의 추진 등 결단이 가까워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 대표 최측근이 법정에서 징역 5년형을 받고 법정구속된 것도 이 대표의 입지를 흔들고 있다. 그는 지금 대표 취임 이후 가장 안전하지 않은 국면으로 접어든 것 같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같은 원죄는 없지만 지금 위기다. 국민적 인기가 높은 인요한 혁신위원회와의 대립으로 결국 ‘혁신 의지가 없음’만 만천하에 드러냈다. 2개월 전의 강서구 보궐선거 참패 때 곧바로 물러났어야 함에도 ‘전권 부여 혁신위’ 출범을 내세워 시간만 끌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순박한 시골의사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실수를 침소봉대하고 여러 핑계를 대면서 난처한 국면을 피해 가려는 형국이다. “이준석에게 도덕이 없다·부모 책임이다·차라리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겨 달라”고 한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인가. 설령 그것이 큰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지도부 퇴진 등 혁신 요구를  상쇄하려는 것은 얼토당토 말이 안 되는 착란 현상이다.

 

김 대표 등 지도부와 이른바 윤심의 대리인들은 불과 1년 전의 전국 지방선거 대승의 흐름을 이어 가지 못하고 정권 지지율을 겨우 30%대에서 허덕이게 만든 책임을 져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고 해서 그들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집권 책임을 분담한 자로서 합당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마땅히 했어야 할 헌신도 하지 못했다. 총선 결과가 100석 이하로 내려갈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이 나돌고 있는 것을 보고도 ‘행동’이 없다.

 

윤 대통령의 지도력과 코드 인사도 문제다. 장관감은 많다. 친소(親疏)나 인정에 집착하지 말고 지지율 떨어뜨리는 장관은 갈아야 한다.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여론을 알고 있는가. 주변의 정권 참모들은 뭘 하고 있는가. 자책골로 선거에 지고 나서 그 후유증을 감당할 자신이 있나. 역대의 모든 정권이 불행의 징조를 보고도 설마설마 하면서 쓴소리를 외면하다가 안 좋은 일을 당했다. 민심을 당할 자는 없다. 윤 대통령도 국민은 항상 옳다고 단언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불통(不通)의 소리가 높다. 윤 대통령 앞에 놓인 당장의 급한 문제는 해외 출장이 아니라 가까운 주변 참모와 여당, 그리고 부인과 처가 쪽을 잘 관리·통제하는 일이다. 가까운 곳·쉬운 것부터 잘해야 한다. 시험 볼 때도 쉬운 것부터 풀어야지 어려운 문제부터 매달리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약삭빠른 정치인들은 벌써부터 내 보따리 챙기려고 꾀를 부릴 것이다. 윤 대통령의 반골(反骨) 저항 영웅 신화도 그동안의 효용체감(效用遞減)으로 약발이 떨어졌다. 공천 작업을 둘러싸고 여권 내의 이해관계 충돌이 일어날 것이고 공천파동 수준이 되면 그것이 곧 총선 악재가 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준석의 공세가 먹혀들면 들수록 국힘의 힘은 빠지고 신당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진다. 민주당이 과반수 의석 획득에 실패하더라도 제3세력들이 그들과 연대하는 사태가 난다면 윤 정권의 운명은 풍전등화가 된다. 이런 위기를 사전에 예방할 사람은 바로 윤 대통령이다. 김기현 지도부에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영광도 책임도 그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