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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명소산책] 십자군의 전사 성 루이 왕과 에그모르트
십자군 원정 위해 성 루이 왕이 만든 왕립 항구
매년 8월 성 루이 축제에 중세 마을로 변장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2-14 10:30:16
▲ 최인숙 문화칼럼니스트·정치학박사
프랑스의 위대한 왕 생 루이(루이 9세). 1214425일에 태어난 그는 43년간 프랑스를 통치했다. 최초의 병원과 대학을 건립했고, 무죄추정의 원칙 등 법 제도를 마련했다. 또한 파리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생트샤펠을 건설하는 등 프랑스를 유럽 최고의 국가 반열에 올렸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열두 살에 중병에 걸려 오랜 동안 사경을 헤매야 했다. 어느 날 고열에 시달리던 왕은 만약 병이 낫는다면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는 기도를 했다. 하늘이 감복한 것일까? 그는 기적처럼 회생했다. 그의 나이 서른 살 때 일이었다
서른 살이 되어 어머니의 섭정에서 벗어난 생 루이 왕은 마침내 프랑스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됐다. 그는 신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십자군 원정을 떠날 것을 결심했다. 예루살렘을 이교도들로부터 해방시키고 그리스도의 무덤을 탈환하기 위해서였다. 이게 바로 그가 이끈 제7차 십자군 원정이다.
 
예루살렘으로! 사라센인들이여, 여러분을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서 영원히 몰아내기 위해 십자군이 출동합니다. 내가 살아남는다면 성지를 구하러 가겠습니다.” 1248825일 생 루이 왕은 2500명의 기사와 남작·시종·1만 명의 보병·5000명의 석궁병으로 구성된 십자군 함대를 이끌고 프랑스 옥시탄 지방 에그모르트(Aigues-Mortes) 항구로 떠났다. 생 루이 왕은 이곳을 프랑스에서 지중해로 나가는 관문으로 건설 중이었다.
 
에그모르트는 지중해 가장자리에 있는 물고기가 가득한 커다란 습지로 오크어로 죽은 물이라는 뜻이다. 그 즈음 이 항구는 베네딕트 수도원이 소유하고 있었다. 어부들은 이 습지에 오두막을 짓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단지 한 시즌 동안만으로 기간이 한정돼 있었다. 십자군 원정을 위해 출항할 항구를 찾던 생 루이는 이곳을 주목했다. 그는 마르세유와 툴롱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던 신성로마제국의 선의에 의존하기보다는 이곳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자 했다.
 
▲ 에그모르트에서 배를 타고 십자군 원정을 떠나는 생 루이와 기사단. 프랑스 국립도서관
 
에그모르트를 출발한 생 루이의 십자군은 124966일 키프로스에 기항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다미에타 시를 점령한 후 술탄이 거주하는 카이로를 향해 진격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라센의 공격을 받고 만수라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기근과 이질로 군대는 더욱 어려움에 처했다. 왕의 동생 로베르 다르투아와 많은 기사가 전사했다. 게다가 왕은 그만 포로로 잡히는 신세가 됐다. 생 루이 왕은 협상 끝에 40만 파운드라는 거액의 몸값을 주고 간신히 풀려났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주로 교회 개혁과 정의 구현에 전념했다. 그는 사법제도를 개혁하고 고문을 폐지했으며 사법권을 행사하던 지방 영주들을 대체할 왕실 법원을 설립했다.
 
세월이 흘러 1267325일 성모 대축일. 52세가 된 생 루이 왕은 국가 통치의 절정기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7차 십자군 원정의 실패라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이윽고 그는 제8차 십자군 원정을 시도할 것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남작들과 동료들이 그를 따르기를 꺼려했다. 절친인 샹파뉴의 판관 주엥빌(Joinville) 경도 자신의 영토를 지킨다는 핑계로 동행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생 루이 왕은 1270711만5000명의 병사와 함께 에그모르트 항구를 떠나 이번에는 이슬람국의 원수를 개종시킨다며 튀니스로 향했다. 1270718일 땡볕이 내려 쪼이는 여름날, 8차 십자군은 튀니스 인근 라굴레트에 상륙했다. 그러나 발진티푸스와 이질 등의 전염병이 곧 군대를 강타했다왕의 막내아들 장 트리스탕은 사망했고 장남 필리프와 왕도 감염됐다
 
왕은 끝내 1270825일 지중해 연안의 카르타고에서 죽음을 맞았다. 임종하기 전 그는 후계자인 필리프(필리프 3세)에게 말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왕이 된다면 왕으로서의 자질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정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해라. 그리고 가난한 사람과 부자 사이에 분쟁이 있으면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서고, 진실이 밝혀지면 정의를 행하도록 해라. 다른 사람과 다툼이 있을 때는 평의회 앞에서 상대방의 편에 서도록 해라….
 
그의 시신은 1271522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철야 기도회를 마친 후 왕실의 무덤인 생드니에 묻혔다. 성 루이 왕의 장례식 모든 경로엔 기념비적인 십자가를 세워 왕의 유해가 안치된 장소를 표시했다.
 
▲ 에그모르트의 성벽과 콩스탕스 탑. 위키피디아 
 
생 루이 왕은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오늘날 그는 생생히 기억되고 있다. 그가 2회에 걸쳐 십자군 원정을 떠났던 왕립 항구 에그모르트에서는 생 루이 축제가 벌어진다. 매년 826일과 27일 이 도시는 중세풍으로 단장한다. 거리에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공국의 국장과 깃발이 휘날리고 상점들은 에그모르트가 프랑스 왕국의 유일한 항구였던 시절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생 루이 축제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상점 주인들이 만든 축제다. 그러나 인기가 높아지자 시립 축제로 자리 잡았다. 수많은 행사로 요새 안에는 1~2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즐기고 성벽과 소금 습지 등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곳을 관광한다.
 
에그모르트는 현재 육지와 습지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프랑스 왕국 시절에 강력한 방어 무기이자 웅장한 건축물이었던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성벽에는 오늘날에도 생 루이 왕이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하기 위해 세운 콩스탕스 탑이 늠름히 서 있고 그 한쪽에는 왕의 동상이 건장하게 버티고 있다
 
에그모르트에서 가장 오래된 유산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노트르담 데 사블롱(Notre-Dame-des-Sablons) 성당이다. 이 성당은 생 루이 왕이 십자군 원정을 떠나기 전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지은 것이다. 성당 건물에는 생 루이 왕의 상징인 스테인드글라스가 햇빛을 받아 찬란히 반짝인다. 이 지역 출신 예술가 클로드 비알라가 만든 작품이다
 
프랑스 전역에서, 심지어 해외에서도 많은 생 루이 축제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에그모르트만큼 중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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