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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의 전지적 시점] 이런 게 민주주의라면 난 싫다
박혜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17 06:31:10
 
▲ 박혜수 시인·번역작가
“역시 그만두는 게 좋겠어. 아무리 애써 봐도 당신 어머니랑 같이 요리하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어. 시골 어머니라 입맛도 까다로울 것 같고,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파. 물론 내 쪽에서도 사양이지. 이런 사람을 아들의 애인이라고 소개받고 기뻐할 부모가 있을까? 부모란 존재는 역시 자기 아들이 사랑스러운 신부를 만나 귀여운 아이들을 낳아 주길 바라지 않겠냐고. 난 사양할래. 나한텐 당신을 당신 집안 최후의 아들로 만들 권리도, 책임도 없으니까….”
 
일본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최후의 아들에서 엠마라 불리는 동성 애인이 주인공을 떠나며 남긴 편지 내용이다. 동성애자인 주인공과 가족·주변 사람들을 그린 이 소설은 요시다 슈이치의 데뷔작이자 작가 스스로 가장 애착을 갖는다고 밝힌 작품이다.
 
그의 소설을 좋아해서 거의 빼놓지 않고 읽는데 신기한 것은 작품 하나하나가 다 다르면서도 주인공들이 일관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주인공들은 성소수자를 비롯해 어딘가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시선에 풍경을 담고 있는 사람들…. 그 서정성을 통해 그는 다수가 꼭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 다수의 의견이나 가치관이 반드시 따라야 할 최선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요즘 사람들은 아쉬움을 맛보는 데서 오는 멋을 몰라. 뭐든 그저 눈에 불을 켜고 쫓아다니려 한다니까. 그리고 그게 미덕이 됐어. 부족함은 곧 불완전이라고 여기면서, 그러니 추구하는 거지. 하지만 추구하면 반드시 모순이 생기기 마련이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수 의견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른바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세상이다. 법안도 정책도 모두 다수결로 결정하고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다수결로 선출한다. 왕정을 비롯해 여러 체제를 거치며 그것이 나름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대중이 선동에 휘말릴 경우 국가·사회를 아무도 바라지 않는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가게 된다. 이번 4.10 국회의원 선거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점이다.
 
▲ 요시다 슈이치의 데뷔작 ‘최후의 아들’ 표지. 요시다는 이 작품으로 문학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해 이후 ‘파크 라이프’로 제127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선거 결과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고 여권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사퇴하고 대통령실과 정부에서 줄사표를 내는 등 초상집 분위기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누가 뭘 잘못했는지 따지기 시작했다. “윤통이 시류를 못 읽는 바람에 산통을 깼다, 한동훈이 공천을 잘못해서 집토끼를 잃었다.”
 
심지어 비대위원장이 자기 정치하느라 바빴다고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민주당에서 주장하는 특검을 수용해야 한다는 당선자에, 바로 그 30대  당선자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자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중이다. 민주당에서 오메, 조거 예쁜 거할 내부 총질식 자아비판이요 난장판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의 전체 득표수를 보면 약 45%의 국민이 여당을 지지했음을, 국힘이 5%p가량의 표차로 민주당에 밀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보수는 주특기인 서툴고 섣부른 반성 좀 삼가자는 얘기다. 민주당은 어땠나. 재판받는 당 대표에 사기 대출·불법 증여·입에 담지 못할 막말들. 그 숱한 문제점들에도 한목소리로 정권 심판을 외치며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당당하다. 그런 다수가 존재하는 한 우리나라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돌아갈 것이다.
 
여권에서 뜯어고쳐야 할 것이 있다면 첫째는 위기다 싶으면 서로 잘난 척 깎아내리기 바쁜 분열의 유전자이고 둘째는 민주당이 내건 프레임을 자진해서 뒤집어쓰는 아둔함’, 그리고 일단 버텨 보는 만만디유전자다. 비판 여론이 실망감으로 바뀔 때까지 잠자코 있다가 결국 대세에 따르는 걸 반복해 온 대통령이나 여권과 달리 문제가 생겼다 싶으면 냉큼 납작 엎드렸다가 발딱 일어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좀 보라. 그 기민함은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여권에서 꼭 배워야 할 점이다.
 
그럼에도 약점을 커버할 더 많은 덕목이 보수와 여권에 있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상대를 가둘 프레임을 만들어 내고 그 프레임을 사실인 양 믿게 하는 선전선동에 여권 지지자들마저 넘어가 자충수를 두게 된다면 정말 비극이다. 그런데 지금 그러고 있지 않은가. 간악한 무리가 다수를 선동한다면, 그래서 그 다수가 정도에서 빗나간 이념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이런 게 민주주의라면 난 싫다. 승냥이와 하이에나가 함께 사자를 노리는 흉흉한 밤, 이 현실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게 뭔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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