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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디지털 쓰나미에 일감 ‘뚝’… ‘600년 역사’ 충무로 인쇄골목 존폐 기로
명함·교과서도 디지털로 나오는 세상… 인쇄공장 줄폐업
“부가세도 못 낼 정도로 어렵다… 공장 언제 접을지 고민”
김기찬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5-27 14:41:31
▲ 충무로에 위치한 인쇄 골목. ⓒ스카이데일리
 
충무로 역에서 5분여 걸어 나오면 대한극장이 보이고 그 맞은 편에 허름한 종합상가가 보인다. 그 상가 양 옆으로 기분 좋은 종이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고 도무송(정해진 틀에 맞춰 인쇄물을 자르는 공정) 기계 철커덩거리는 소리가 귀를 찌르는 충무로 인쇄 공장들이 즐비해 있는 골목이 나온다.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인쇄 산업의 터전, 충무로 인쇄골목이다.
 
충무로 인쇄 골목은 1900년대 민간 출판인쇄업체가 충무로 일대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부터 인쇄물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인쇄 업체 집적지가 됐다.
 
인쇄 수요가 늘어 공장이 활기를 보였던 것과 달리 최근엔 명함마저도 휴대폰으로 주고 받는 세상이 도래하면서 충무로 인쇄 골목을 떠난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교육부에 따르면 종이 없는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가 보급되는데, 이같은 디지털화에 인쇄 수요는 점점 줄어 존폐 위기에 놓였다.
 
도무송 기계를 돌리고 있던 한 업체 대표를 붙잡고 요새 인쇄공장 상황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부가세도 못 낼 정도로 일이 없어요라며 다들 어려우니까 수금도 안 되고라고 짧게 답했다. 이후 곧 갈 길이 바쁘다며 추가 질문들에 대해 답해주진 못했다.
 
최근까지 이 곳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사장과도 연락이 닿았다. 그는 인쇄업이 사양산업이라고 평가하며 손님들이 줄면서 식당 운영이 어려워졌고, 수년 전 식당을 그만두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같이 알고 지내던 인쇄공장을 운영하던 사람들 대부분도 자신처럼 충무로를 떠난 지 오래라고 말했다.
 
기자에게 이곳은 익숙한 곳이다. 10여년 전 부모님이 이곳에서 합지(종이를 붙이는 것) 공장을 했다. 자주 갔던 곳이라 풍경이 달라져 있어도 몸이 기억하고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10여년 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도무송·합지·인쇄·디자인 등 인쇄 업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던 것과 달리 인쇄 공장들이 가장 많았던 곳엔 웬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일하시는 분들의 웃음소리·싸우는 소리 등 정겨운 소리도 듣기 어려웠다.
 
인쇄물을 차량에 싣고 있던 한 업체 대표는 요새 인쇄공장 상황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어렵죠라고 짧게 말했다. 처음엔 기자를 경계하던 그도 부모님도 합지 공장을 하셨다는 것에 반색하며 그렇다면 잘 아시겠네요. 예전보다 공장 숫자도 많이 줄었고, 일도 많이 줄었고 거의 생존의 기로에 서 있죠라고 말했다.
 
▲ 불이 꺼진 한 인쇄 공장. 도무송 등 인쇄물 관련 기계는 없고 인쇄물만 소량 쌓여 있다. ⓒ스카이데일리
 
그의 말대로 공장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서울시 등에 따르면 충무로에는 5000여 개 인쇄 공장이 있었으나, 지금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장이 확연히 적어졌다. 골목을 지나다 발견한 한 공장은 간판도 멀쩡하게 달려 있었지만 기계와 인쇄물로 가득 차야 할 공장은 없고, 공용 창고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향후 이런 공장들은 늘어나고, 10년여 시간이 흐른다면 충무로 인쇄 골목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AI와 디지털 환경의 성장세가 빠르면 빠를수록 충무로 인쇄업의 쇠퇴도 가속화될 것이다.
 
2017년에 서울시와 중구 등은 충무로·을지로 일대를 중구 인쇄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정하고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 시행하고 있다. 당시 시는 개발진흥지구 지정으로 인쇄 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들 생업을 조금 연장해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한 인쇄공장 직원은 국가에서 받는 지원 같은 건 없느냐는 질문에 지원을 왜 해줘. 10원 한 개라도 받아 본 적도 없고, 언제 접어야 하나 이런 생각 뿐이지라고 쓸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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