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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권과 언론 현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이 연이어 소환되고 있다. “정치가 법 위에 있지 않다”는 2007년 노 전 대통령이 남긴 메시지 때문이다. 선거라는 정치 행위가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범법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으며, 법의 위에 있을 수 없다는 이 발언은 사실상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말이 ‘귀를 솔깃’하게 하는 건 우리의 현실이 이 상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최근 MBC ‘100분 토론’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해당 발언이 인용됐다는 것이 알려지자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지지자들의 항의와 반발이 컸다고 한다. ‘노무현 영상 틀기’를 놓고 진영 간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 정신을 가장 가까이서 계승해야 할 민주당이야말로 이 발언 앞에서 가장 불편한 진실과 마주서게 됐다는 걸 보여준다.
국회에서 불거진 이른바 ‘대통령 재판 정지법’ 논의는 그 대표적 사례다. 유죄 취지의 대법원 파기환송을 앞두고 대선 후보자 신분 보호를 이유로 재판을 일정 기간 정지하자는 발상은 입법권을 특정 개인의 이해에 종속시키려는 ‘위인설법(爲人設法)’ 그 자체다. 이런 법안이 발의되는 순간 ‘정치가 법 위에 있다’는 말이 더는 여권의 일방적 공세로 치부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자승자박이요, 노무현 정신에 대한 정면 배반이 아닌지 민주당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를 소집하고 ‘조희대 특검법’을 발의해 통과시키는 등 사실상 ‘탄압’하듯 몰아세운 행태는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에 대한 강한 반발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만일 사법부의 판단에 정치가 개입하는 것이라면 이는 삼권분립의 헌법 정신을 모독하는 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과거 문재인정부 시절에도 ‘사법농단’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하에서 법원행정처가 정치적 사안에 개입한다는 비판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특정 정당이 다수의 힘으로 대법원장을 압박하고, 특정 정치인의 유불리에 따라 재판 일정에까지 개입하려는 시도는 그 도를 넘은 ‘사법 길들이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정옥임 전 의원이 MBC ‘100분 토론’에서 노 전 대통령의 음성을 직접 인용하며 “정치가 성역인가”라고 묻는 장면은 많은 국민에게 묵직한 경종으로 다가왔다. 사실상 그 말은 오늘 한국 정치가 헌법의 기초적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를 묻는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발언에 항의하고 문제 삼는 이들이 다름 아닌 이재명 후보 지지자라는 사실은 무얼 말하는 것인가.
더구나 노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인공지능(AI) 딥페이크로 조작해, 마치 고인이 이재명을 지지하는 것처럼 만든 과거의 사례는 이번 사태를 더욱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정통성은 선언이나 연기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천으로 입증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노무현의 철학을 계승하고 싶다면 법의 지배라는 헌법적 질서를 훼손하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검찰 수뇌부가 정치적 압박 속에서 줄줄이 사의를 표하는 가운데, 심우정 검찰총장은 “검찰은 흔들림 없이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 말했다. 이 말이 그대로 사법부와 입법부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사법부가 정치에 휘둘리고, 입법부가 정치인을 위해 법을 만드는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법치주의 국가라 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기초는 삼권분립이고, 그 근간은 법 앞의 평등이다. 정치가 법 위에 올라선 순간 자유민주주의는 추락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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