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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가 20~23일 베이징에서 열렸다.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된 상황인데다, 마침 이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와 시진핑 회동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회의는 예년처럼 베이징 서쪽 징시(京西)호텔에서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다. 중앙군사위원회 산하 기관이 운영하는 당정 최고위층 회의 전용시설인 징시호텔에 “관례보다 훨씬 많은 경찰·차량·도로 통제”가 이뤄진 모습이 AP와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포착됐다.
관영 신화통신과 중국 정부망에 따르면 시진핑 국가주석 겸 총서기가 중앙정치국을 대표해 업무보고를 진행하고 ‘제15차 5개년 규획 2026~2030’ 기본방향을 설명했다. 중국어 ‘규획(規劃)’은 한국어·일본어의 ‘기획’보다 훨씬 행정적·공학적 의미가 강하다. 국토·산업·기술을 포괄한 국가 차원의 종합 설계에 가까운 개념이다. 중국에선 이 문건 제목을 줄여 ‘15·5’라고 부르며 향후 5년간의 국가 전략 청사진으로 받아들여진다. 회의 폐막 직후(24~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이어져 법률 개정안과 정책 보고가 진행될 예정이다.
신화사 사설이나 논평은 15·5에 대해 “고품질 발전” “과학기술 자립자강” “실물경제와 신흥산업의 융합”을 핵심 기조로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기술자립·안보 중심·생산성 제고가 15·5의 핵심 축이며 민생·소비·부동산 리스크 완충이 보완 축이라는 게 전체적 요약이다. 폐막하면서 발표된 공보(코뮈니케)도 이번 회의가 ‘15·5의 초안 윤곽 제시’임을 확인했다. 세부 목표와 수치는 내년 3월 전인대에서 최종 승인된다.
시진핑 지도부가 이번 4중전회를 통해 경제·기술 패권의 방향성만 제시하고 구체적 수단을 내년 봄으로 유보한 전략을 구사했다고 주요 서방 외신들이 전문가 견해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들 모두 이번 회의가 명목상 ‘4중전회’지만 내용상 ‘5중전회’ 급 중량감을 지닌 점을 중요하게 여긴다. 통상 5중전회에서 다뤄지는 차기 5개년 논의가 1년 앞당겨 수행됐기 때문이다.
로이터·파이낸셜타임스(FT)·니혼게이자이신문과 미 유명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 등에선 이를 경제 회복 지연과 대외압력 심화 속에 시장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조기 대응 신호로 해석했다. 특히 브루킹스는 “시 지도부가 전통적 당 회의 리듬을 깨뜨렸다”며 “경제 불안정과 내부 권력 재조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짚었다. 미·중 정상 회동 가시화 국면 속에서 중국 측이 구체적 수치보다 일단 ‘방향성’을 던졌다며, 이를 시 체제가 ‘정치 안정’ ‘기술 패권’을 축으로 2030년을 설계하려는 조기 신호탄이자 체제 신뢰와 정책 집행력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한다고 봤다.
4중전회 키워드로 첨단 제조·기술 자립·산업구조 재편이 꼽힌다. FT와 로이터는 반도체·인공지능(AI)·양자기술·신에너지·신소재 등 전략 산업에 대한 국가 주도형 투자와 공급망 방어 강화가 핵심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동시에 소비 진작, 부동산·지방채 리스크 관리가 병행 과제로 부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중국이 이제 서방 기술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혁신했다”는 관영 매체의 수사를 “정책 의지에 가까운 정치적 언어일 뿐” “최첨단 반도체 장비·EDA(반도체 설계 자동화) ·GPU (그래픽처리장치)등 핵심 병목 분야의 기술 자립은 여전히 요원하다” 등 회의론이 일반적이다.
워싱턴포스트(WP)의 경우 이번 회의를 경제 전반의 ‘구조적 병목’ 속에서 풀이했다. 3분기 성장 둔화와 청년 실업, 장기화된 부동산 침체, 미국의 고율 관세·수출 통제가 겹치며 성장률 5% 달성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NHK와 니혼게이자이신문 역시 중국이 기술 자립과 안보를 강조하더라도 내수·고용·부동산의 구조 개선이 병행되지 않으면 ‘저성장 함정’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봤다.
SCMP와 대만 매체들은 이번 회의를 ‘15·5’의 AI·반도체·양자 중점화로 요약하면서 군 숙정과 향후 상징적 인사 교체의 연계를 비중 있게 다뤘다. 4중전회 목전(17일)에 발표된 고위 군 간부 9명의 제명(당적 박탈)도 큰 정치 신호로 해석된다. 중앙기율검사위원회와 국가감찰위원회가 허웨이둥 중앙군사위 부주석, 먀오화 정치공작부 주임 등 핵심 장성의 ‘당적 박탈’을 공표해 충격을 줬다.
제명이란 단순 면직이 아니라 정치적 사망선고이자 형사 수사로 이어질 최고 수위의 징계다. 로이터와 AP는 최소 11명의 중앙위원 교체 가능성과 군사위 결원 보강을 전망했고, 포린폴리시는 이를 “더 큰 인사 변동의 서막”이라 분석했다. 군 보급·로켓군 라인의 부패 수사, 민간 부문 인사 교체 등 시진핑식 권력 재편이 다시 가동되는 분위기다.
공산당 최고지도기구인 전국당대표대회는 5년마다 약 2000명의 대표가 모여 중앙위원회를 선출한다. 이것의 전체회의 즉 ‘중전회’ 횟수는 중국 정치 상황과 직결된다. 건국 이전 1~3회 개최되던 중전회가 항일전쟁기이자 중공의 실질적 체계 확립기인 6기(1928~1945) 때 모스크바·옌안 등에서 총13차례 열린 바 있다. 건국 이후 평균 7~8번이었던 중전회는 8기(1956~1969) 때 12차례의 기록을 세웠다. 8기 11중전회가 바로 ‘문화혁명 개시 선언’이었다. 후진타오 시절인 16기(2002~2007) 이래 6차례로 줄어들어 안정 기조로 이해돼 왔으나 현 시진핑3기 들어 벌써 4중전회다. 이 횟수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을 주요 외신들이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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